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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Nov 13. 2020

나의 미래보다 전혀 다른 남편과 막창을

나, 미래, 남편 그리고 막창:::이것이 바로 의식의 흐름대로 막 쓴 글

"오늘 막창 안 먹을래?"

"오, 나도 딱 그거 먹고 싶었는데. 콜!"

웬일로 남편이 막창이 먹고 싶다고 신호를 보냈다. 어젯밤 sns를 보다 동네 막창집 사진이 올라온 것을 보면서 먹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짜증 많은 나를 묵묵히 받아주는 서로 다른 남편과 통하는 순간이었다.


부부가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산다는 것은 오산이다. 얼마나 많이 이해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참아주느냐의 질문이 좀 더 답하기 편할지도 모른다. 나와 남편을 저 멀리 툭 던져두고 이리저리 비교해보지 않아도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르다. 함께 살기를 결심하면서부터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사실을 먼저 인정한 것은 바로 남편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짜증이 많고 화가 많은 나인지라 과연 결혼이나 하고 살까 싶었다.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준 남편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남편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편이다.

"도대체 왜 그러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머리로는 '서로 다르다'라고 알면서 운명 공동체로 묶여버린 남편에게 자꾸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다.

                 

참 어리석은 짓이다. 수 십 년을 살아온 두 남녀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수년이 흘렀다. 나는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남편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많은 사람들을 사귀지 않은 고양이 같은 성격에 실없이 허허 거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면을 중요하게 여기고 냉철한 남편. 두루두루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강아지 같은 성격에 상당히 현실적이고 냉철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상적이고 희망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비슷한 우리는 부부다. 


요즘 들어 나는 무척 궁금하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아니면 정말 허황된 꿈일 뿐인 건지 말이다. 배울만큼 배우고 일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육아 중인 전업주부다. 못 견디겠다고 때려치우고 나올 수도 없고 내 안의 욕망을 꾹꾹 누르고 지금의 허울로 계속 살아가기에도 아쉬운 그런 지점.


가장 먼저 나와 타협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 편과의 타협 지점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인생 명언이라 믿고 큰 힘을 얻었는데, 지금은 정말 그런 것인지 모호하다. 정말 하고 싶다면, 죽을 만큼 하고 싶은 무언가라면 죽기보다 그 무언가를 선택할 텐데. 나의 고민은 어째 진전이 없다.


그런 고민 중에 남편의 막창 제안은 고민의 빈도와 중함과 상관없이 반갑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내 모습을 떠올리기보다 지글지글 굽히는 막창을 앞에 둔 내 모습을 상상하기 더 쉬우니까. 일단 막창이나 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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