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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Dec 09. 2020

공주의 자질

 당신은 진짜 공주인가요?

"엄마, 지아가 나보고 공주가 될 수 없대요."

"왜 공주가 될 수 없대?"

"공주 옷이 없어서 공주가 될 수 없대요."


다섯 살 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친구가 자기더러 공주가 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없기에 어떻게 대답해주면 좋을까 아주 잠시 생각했다.


"음... 은동아, 공주 옷만 입는다고 공주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공주 옷을 입지 않아도 엘사처럼 용감하고 씩씩하고 나쁜 사람들을 물리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진짜 공주인 거야. 마음은 그런 공주가 아닌데 옷만 예쁘게 입는다고 공주가 되지는 않는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친구가 왜 자기에게 공주가 될 수 없다고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던 은동이는 금세 반짝이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곱씹어 봐도 꽤 적절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겉모습의 자율권을 충분히 실천하고 있는 편이기에 공주 옷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하고 딸에게 내면의 공주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내면의 공주인가? 외면의 공주인가? 겉과 속 모두 공주이면 좋겠지만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말이다.


아이에게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한 편으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더 신경 쓰는 것만 같다.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명품 가방이나 옷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상담을 가거나 모임에 나갈 때 있어 보이게 들고 가야 한다는 이유다. 

내가 명품 가방을 사지 않는 것은  정말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필수품처럼 이야기하는 통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법인데 사람들은 사회에 널리 통용되는 관습처럼 명품 가방 소비를 은연중에 강요한다.

우리들은 왜 이렇게 보이는 것에 열광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공주 옷을 입지 않았다고 공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른들이 번지르르한 차에 명품 가방을 든 겉모습만 화려한 사람을 동경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인다.


동화 '신데렐라'에서 어머니를 여읜 신데렐라는 이복 언니들의 시중을 들며 하녀처럼 살았다. 하지만 천성이 착한 신데렐라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쥐와 가축들마저 포용하며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신데렐라는 계모와 이복 언니들의 악행을 이겨내고 차밍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 화려한 치장으로 왕자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은 이복 언니들이었지만 진정한 공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데렐라였다.

누구나 다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지만 딸의 고민을 듣고 난 후에 새롭게 다가왔다. 원래 공주가 될 사람은 똥 구덩이에서 굴러도 결국 공주인 것이다.


딸에게 진정한 공주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해주고, 나는 엘사 공주 옷을 주문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시크릿 쥬쥬 셀카폰 보다 공주 옷이 가지고 싶다는 다섯 살 딸의 눈빛을 거절할 수 없어서 말이다. 내 손으로 처음 사주는 공주 옷인 셈이다. 부디 딸이 내면의 공주가 될 수 있도록, 아들이 내면의 왕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나저나 당신은 어떤 공주인가요?


-엘사 옷에 굴복한 어느 날.


언젠가 상상놀이터에서 입어본 공주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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