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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Jan 02. 2021

흔한 나이 타령은 거절합니다

올해는 특별히 무계획!

연말과 새해가 교차하는 즈음에는 타령이 심하다. 흔한 '나이 타령' 말이다. 커뮤니티에서는 마지막 20대, 마지막 30대를 잘 보내는 방법을 묻는 질문들이 난무하고 지인들은 내 나이를 두고 입을 댄다.


내가 서른이 되던 때에 후배가 웃으며 말했다.

"선배, 이제 서른 살이네요. 나이 들어서 어쩔 거예요."

뭐 장난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크게 후회되는 일이 없어. 너도 서른이 됐을 때 후회 없는 삶을 살길 바란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이나 서른 살이나 내 삶은 그대로 이어지는 거니까. 서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어."

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휴, 내가 그 나이 때면 못할 일이 없겠어. 부럽다. 부러워!"

그때도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였다.

"지금 내가 00살일 뿐이. 저도 똑같이 나이를 먹을 거예요."

이럴 때는 모 개그맨이 외쳤던 말이 생각난다.

"오는 데는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똑같기 때문이다. 이 순간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많다고 해서 시간의 고유한 가치가 서로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시간의 질인데, 시간의 질은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무언가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다른 때보다 좀 더 따뜻한 순간을 보내야 한다고 여기고, 새해가 되면 새로운 다짐과 계획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여긴다.


인류는 편의를 위해 시간의 단위를 부여해 달력을 만들고 해를 나며 사는 생물에 나이라는 가치를 만들었다. 생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쭉 살아간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아갈 것인지 단위를 정해 살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매일매일이 마지막이다. 연속되는 시간의 가치에는 경계가 없기 때문에 매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내가 막연한 나이 타령을 거절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 마나 한 타령이라는 말이다.


시간과 나이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올해는 특별히 무계획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나이 먹는 것에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않지만 해마다 좀 더 나은 나를 꿈꾸며 최소한의 계획을 세웠었다. 책을 몇 권 읽겠다거나 몸무게를 몇 킬로그램 감량하겠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다짐들 말이다.


올해는 그런 다짐을 하지 않았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져 보자 싶어서 말이다.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아 불안한데 육아만 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그랬다. 여유로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심각한 걱정거리가 없음에 감사하고 여유를 충분히 누려볼 필요도 있겠구나 싶다.

곁에는 손을 뻗으면 볼 수 있는 책들도 충분하니 굳이 수치를 정하거나 채워야 할 할당량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고, 나름 건강을 챙기는 타입이니 몸무게로 일방적인 감량을 시도하지도 않을 테다. 그냥 지금의 나로서 잘 살기. 그거면 됐다.


흔한 나이 타령과 새해 다짐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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