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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an 13. 2023

엄마는 직장인이다

본격적인 논리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여기 아무런 관련이 없는 두 단어가 있다.

‘엄마’와 ‘직장인’. 


인간은 ‘직장인’이라는 단어와 ‘엄마’라는 단어를 연결할 수 있다. 동물은 이런 연결을 못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다’라는 문장의 논리적인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를 주어와 술어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 ‘엄마’는 주어이며 술어는 ‘직장인’이다. ‘엄마’라는 주어만 있을 때에는, “그래서 뭐?”라는 질문에 응답할 게 없다.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술어를 연결하고 보니, 드디어 엄마에 대해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엄마는 직장인이다>


이것이 연결의 힘이고, 이것이 논리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느낌표를 보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 아저씨, 느낌표 두 개나 붙이네. 하나도 버거워요.”라고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이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강아지에게 ‘엄마는 직장인’이라는 문장을 가르쳐 보세요.” 강아지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가르치지 못할 것이다. “갓난아기 인간에게 <엄마는 직장인이다>라는 문장을 가르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엄마’라는 단어를 암만 요리조리 분석해 봐도 ‘직장인’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우주적인 시간을 주고 기다려도 엄마라는 단어에서 직장인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 불가능한 일을 인간의 머릿속에서 해낸 것이 바로 <엄마는 직장인이다>라는 연결이다. 그리고 심지어 십 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우리 인간은, 갓난아기에게, 이런 두 단어의 연결을 가르칠 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게는 불가능한 이런 연결을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머릿속에서 생기는 이런 창조적인 연결이 바로 논리다. 어떤 인간은 이런 연결도 한다.


<엄마는 소설가다>

<엄마는 대통령이다>

<엄마는 인플루언서다>

<엄마는 엔지니어다>

<엄마는 의사다>

<엄마는 디자이너다>

<엄마는 가수다>

<엄마는 미국인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연결해 보자. 이런 간단한 연결조차 강아지에게는 하나같이 넘볼 수 없는 일이다. <엄마는 산에 있다>, <엄마는 요리를 한다>, <엄마는 아빠를 쫓아냈다>, <엄마는 사람들을 웃긴다>, 이런 식으로 연결을 계속하다 보면 인류의 온갖 지식을 이해할 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할 수 없는 이런 연결을 우리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이런 연결이 바로 논리의 세계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실은 엄마는 아프다. 우리 엄마는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마신 후 혼자 거실에서 춤을 추다가 그만 창문을 열어놓은 채 잠을 잤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몸살을 앓는다. 이 순간 수많았던 연결이 사라진다. 그 다양한 술어가 주어에 붙으면서 만들었던 우주가, 천지창조가, 탄생이 삭제된다. 다 거짓말이었구나. 


그러자 이제 인간은 단순히 연결에 만족하지 않고, 이런 연결이 참이냐 거짓이냐, 사실에 맞느냐 아니냐,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어떤 연결이 가장 타당한가 등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됐다. 서로 다른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는 논리가 이제는 진리 문제까지 펼쳐놓는 것이다.  이렇게 연결해서 연결의 타당성까지 논리가 발전하게 되는 까닭은 한편으로는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함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함이다. 


지식 때문이든 의사소통이라는 목적 때문이든 인간은 주어와 술어의 연결을 자유롭게 방치하기보다는 연결을 검증하겠다고 나선다. 논리학이라는 건물 안에서 행해지는 작업의 대부분은 연결의 검증이다. 제대로 연결하는 사람은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제대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머릿속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논리 교훈:
서로 관련없는 두 단어를 연결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그걸 인간이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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