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생기는 논리적인 연결에 대하여
우리가 엄마를 생각할 때, ‘엄마’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들어오기보다는, 엄마라는 단어가 갖는 관념과 이미지가 다발로 들어온다. 과거의 엄마부터 지금의 엄마까지, 엄마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 성격, 관계, 평가 등이 개인의 숱한 경험과 얽혀서 다발로 들어온다. 우리 엄마뿐 아니라, 이웃집 엄마,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엄마, 드라마에 등장하는 엄마가 만들어 내는 관념과 이미지는 그 수효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것을 ‘연결 다발’이라고 한다.
엄마는 직장인이다
‘엄마’라는 단어 하나에도 다양한 연결에 있음은 앞에서 간단히 살펴봤다. 마찬가지로 ‘직장인’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많은 관념과 이미지가 들어있고 그런 것들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연결 다발을 만든다. 정보는 수많은 연결 다발로 이루어진다. <엄마는 직장인>이라는 문장에는 주어에 관한 연결 다발과 술어에 관한 연결 다발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문장에 여러 문장이 연결되어 단락을 구성할 때, 연결 다발은 양적으로 더욱 복잡하게 얽힌다. 그럼에도 연결 다발이 만들어 낸 정보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처리된다. 어째서 복잡하고 수많은 연결 덩어리들이 머릿속에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순식간에 해석되는 것일까?
“엄마는 직장인이다. 올해 근속 연수 21년, 부장으로 7년째 일한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 커리어를 쌓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엄마가 일본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4개의 문장이 이어져 하나의 단락을 만들었다.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단락으로 이어짐으로써 관념과 이미지의 연견 다발은 매우 복잡해졌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단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머리는 이러한 연결 다발을 시간적으로 배열하고, 공간적으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시간적인 배열이 우세할 때 그 시간적인 요소는 인과성을 띠고, 공간적인 정리가 우세할 때 그 공간적이 요소는 비교성을 띤다.
예문에서 직장인으로 21년간 일하는 엄마라는 이미지가 있다. 거기에 그 시간 동안 성장해 가는 ‘아이’가 등장한다. 문장들의 연결 속에서 아이의 정신과 육체가 자라나는 이미지가, 그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보살피면서도 분주히 일하는 엄마의 이미지가, 직장인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면서, 예문을 읽는 독자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지나간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전화를 들고 전속력을 대책을 마련하거나 조퇴한다. 회사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느라 몇 번이고 아이의 소망을 저버린다. 물론 독자가 실제 사실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단어와 문장이 제공하는 관념과 이미지 덩어리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가면서 — 뇌세포의 신경망회로가 대규모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 독자에게 다양한 인과관계를 제공하기 때문에 직장인 엄마의 ‘정말 어려운 일’에 공감한다. 수많은 연결 다발들은 시간적으로 배열되며, 오랜 시간 정말 어려운 일을 해낸 끝에 일본 지사로 발령된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지사가 등장하자 독자는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생활과 앞으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비교하는 상황에 이른다. 위의 예문을 좀 수정해 보자.
“엄마는 직장인이었다. 올해 근속 연수 21년, 퇴사한 지 7년째이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 커리어를 쌓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엄마가 일본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약간만 수정했을 뿐인데 이 예문의 연결 다발은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적인 연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엄마는 실업자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 지사로 발령받았다는 것이다.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다. 그러면 인간의 논리는 인과관계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잘못된 연결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엄마는 정사원 직장인이었다. 올해 근속 연수 21년, 정사원에서 퇴사한 지 7년째이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 커리어를 쌓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엄마가 일본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이야기에 ‘정사원’이라는 단어를 두 번 넣었을 뿐인데 다시 의미가 제대로 연결되었다. 엄마는 직장인이기는 하지만 계약사원이거나 소속이 달라진 것이다. 인과관계가 틀리지 않았다. 잘못된 연결이 잘된 연결로 변화했고 그러자 인간의 논리가 그 내용을 받아들인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이 고쳐보자.
“엄마는 ABC 사의 정사원 직장인이었다. 같은 업무로 올해 근속 연수 21년, ABC 사에서 퇴사한 지 7년째이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ABC 사를 다닌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 커리어를 쌓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엄마가 XYZ 사로 소속을 옮긴 다음부터 날개를 달았다.”
ABC 사와 XYZ 사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회사가 등장했다. 엄마는 ABC 사에 소속되어 일하다가 XYZ 사로 이직했다. 시간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이처럼 공간적인 요소가 우세해지면, 독자는 ABC 사와 XYZ 사를 비교하면서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이 글을 통해 ABC 사보다는 XYZ 사가 아이를 둔 여성에게 더 좋은 직장이라는 의미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