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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누 Nov 17. 2021

오늘은 3학년 2회 고사 감독하는 날

2021. 11. 17.


20년이 다 된 내 도장이다. 오늘은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이 도장을 꺼내 주머니에 넣고 교실에 들어간다. 이것뿐 아니라 볼펜 한 자루와 아이들이 볼 시험지도 같이 챙긴다.


3학년이 치를 마지막 시험. 2학기 2회 고사.

9개 과목을 3일 동안 꼬박 앉아서 풀어야 하니 얼마나 지칠까.

3교시에 교실 문을 쓱 열고 들어갔다. 역시 아이들 얼굴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나도 힘이 좀 빠진다.

"배 고프지?"

"네."

"마지막 시간이니까 조금만 참자."



칠판에 쓰인 출결사항을 확인하고 답안지에 도장을 찍는다. 그러고는 종소리와 함께 시험지를 나누어준다. 이제 할 일은 45분 동안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가끔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가 나는 것 말고는 침묵과 고통의 시간이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문제를 풀거나 지쳐 쓰러져 졸지만 난 그럴 수도 없다. 꼼짝 말고 45분 동안 시계를 옆에 두고 아이들을 바라봐야 한다. 그때 누군가 살짝 손을 들면 나는 잠시 부동의 자세에서 벗어나 그에게 걸어갈 수 있다. '오예!!'


 OMR카드다. 우리 학교는 아직도 이 카드를 쓴다. 요즘엔 스마트하게 성적 처리하는 학교도 많은데 우린 언제 바꾸려는지.

 학교 다닐 때도 이거 썼는데.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정성스럽게 마킹을 하고 서답형답란도 꼼꼼히 채우고 싶다!

다 맞으면 좋겠다!


몇몇 아이들이 카드 교체를 요청해서 바꿔주기도 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 마음껏 바라보면서 45분을 소리 없이 보냈다.

모두 공부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혹 실수했더라도, 망쳤더라도 점심밥은 먹기를.

 

밥은 먹자. 밥 안 먹으면 정말 기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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