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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Apr 21. 2024

24.4.21

낡은 사물은 좋아하지만 상한 사람은 멀리하고 싶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슬퍼서다. 내 슬픔에는 조수간만이 없어서 늘 만월에 만조. 물 한 방울이라도 더하면 흘러넘칠 것만 같아서. 생물은 거의 대부분의 순간에 자기보존을 우선시한다. 그걸 포기할 수 있는 순간이라면 바로 넘침의 순간 아닐까.

사물은 서서히 그리고 고요히 낡는다. 나뭇조각이 닳는 것에, 돌이 둥글어지는 것에 사연이 있나. 그들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품으며 자신의 일부를 내어줄 뿐이다. 조금씩 몸을 줄여 종내 사라질 뿐이다. 관성처럼 돌아가고 싶은 시간도, 안간힘을 쓰며 머물고 싶은 공간도 없다. 사람이 떠난 골조에 핀 녹도 비가 오면 그리운 냄새를 풍긴다. 사람만큼 시끄럽게, 처절하게 상하는 것이 있을까. 사람이 온갖 것을 먹어 몸을 불린 탓일까. 지구라는 행성을 와구와구 먹어치우고도 영원히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일까. 상한 사람은 괴롭다. 진행형이라서.

나도 역시 상해간다. 늙고 병들고 감정이 멍들고 뼈가 울린다. 피할 수 없다. 사람이니까. 그래서 멀어지고 싶다. 서로 상해 가는 것을 보며 어깨동무하기엔 나의 결벽이 깊다. 결국 이번 생에도 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나 보다. 상처의 곯은 내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는 사람은 무섭다. 내가 함께 하지도 않았던, 그리고 내가 함께 할 수도 없는 상처의 내력을 굳이 토로하는 사람은 강에 보내고 싶다. 어느 아름다운 시처럼.

빗방울이 떨어진다기에 바다에 왔다. 나의 상처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해서. 먼바다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나의 슬픔을 한 스푼 덜어내 몰래 바다에 버렸다. 바다는 나와 달라서 내 슬픔을 그저 가라앉힌다.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없기 때문에. 망가진 사물 앞에 서면 마음이 편안한 것은 그것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피 흘리고 눈물이 젖은 마음이 머물렀던 흔적이 없기에. 한때 그 사물에 손 얹었던 나 같은 자 있었겠지만 사물은 그를 특별히 대하지 않기에 머무름도 떠남도 그저 지나왔을 테니. 그의 무상함이, 그의 덧없음이 좋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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