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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May 20. 2024

24.5.20

어렸을 적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 함께 있으면 자꾸 마음이 쓰였다. 아니, 눈치를 봤다. 남들보다 몸이 약하고 그래서 남들이 쉽게 하는 일이 나에게는 어렵다는 것을 이해시키기에는 나의 마음은 얕고 불안은 컸다. 타인은 불안이었고 서서히 공포가 되었다.

하지만 혼자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낯설게 여긴다. 혼자 여행을 오면 가족단위로 온 타인들이 쳐다보고 때로는 말을 붙인다. 혼자 오셨어요? 네. 아니, 어쩌다가.

그냥요, 하고 웃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무서워서요,라는 말은 삼킨다.

제주에 갔을 땐 비바람이 불었다. 장롱면허 소지자로서 차를 렌트할 용기는 없었기에 뒤집힌 우산을 쓰고 당당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드문드문 오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동료가 생겼다.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셨다.

혼자 왔어? 네. 겁도 없이 여자 혼자 섬으로 와, 큰일 난다, 큰일 나.

제주가 걱정을 끼칠 정도의 섬이었나 생각했고 이내 할머니 연세를 가늠하니 마음이 아팠다. 제주의 험한 시간을 여자의 몸으로 헤쳐 나왔을 할머니. 제주의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여자 혼자’와 ‘큰일’은 무게가 달랐다. 할머니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자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각자의 행선지로 향했다. 그러고 보면 타인이란 공포도 무조건적인 무엇은 아닌 것 같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들린다. 마음의 소리가 험하고 질척이면 멀리 두고 싶고, 마음의 소리가 따뜻하고 애달프면 나도 마음이 쓰인다.

세상에 무서운 사람만 있다고 여긴 것은 내 마음에 공포가 가득했기 때문이고 세상에 따뜻한 사람도 있다고 끄덕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말했다. 나쁜 일은 발이 커서 소란스럽게 움직이지만 생각해 보면 지구에 널리 퍼진 숨붙이들은 악하다기보다는 대체로 선량하다. 물론 순도 100%의 선량함은 아니지만. 너무 가까우면 가끔 서로의 감정에 데기도 하고 얼어붙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악의 없는 호기심에 다치고 누군가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에 치유받는 아침. 이렇게 주춤주춤 나아간다. 문고리를 붙잡고 주저앉지 않는다. 아직 세상을 놓지 않는다.

물론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방구석 여행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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