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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Jun 23. 2024

오성인 산문집, 세상에 없는 사람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살고 싶은 동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자신 안에 유폐된 자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하물며 그가 나의 피와 살과 영혼과 유년을 빚은 아버지라면.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말한다. 나의 아버지는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지구의 백억 가까운 인간들 중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의 말은 옳다. 작가의 아버지처럼 인간으로 살 수 없는 야만의 시간을 견딘 이들도 수십, 수백억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글 쓰는 이는 모든 이야기에 끝까지 귀 기울이는 자며, 혈관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의 뿌리를 찾는이다. 그래서 작가는 적었다.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고, 스스로를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고 일갈하는 아버지를.

어려서부터 연좌제에 묶여 지은 죄 없이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젊은이가 조금의 의구심으로 군대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다. 밤을 새우며 만든 몽둥이가 친구들의 뼈를 부러뜨리고 숨을 거두어갈 흉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땅에서 그 시대를 살던 우리네 부모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사람임을 포기하고 살았다. 야만에 길들여진 자도 있었고, 최대한 몸을 낮추려고 노력했어도 칼날에 베이고 몽둥이에 살점이 도륙되는 이도 있었다. 땅은 피를 마셨고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고 이윽고 늙어 정말 몸이 죽어가는 날에 이를 때까지 아무도 모를 이유로 스스로를 제지내고 향을 사르는 마음이 있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훈장이 아닌, 주홍 글씨가 되는 일이 있었다.

최초의 인간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죽음에 이른 순간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유전자는 그렇게나 집요하게 고통과 슬픔을 실어 나른다고. 영혼을 뒤집으면 우리는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들로 누더기가 되어 있겠지. 기어이 흉터를 손으로 짚어 지도를 만드는 일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해하고 싶었고, 품에 안고 싶었고, 절대 이룰 수 없겠지만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사랑 때문에.

작가는 저어하며 망설이며 이 글을 써 내려간 것은 아닐까. 세상에 없는 사람을 부르면서.

그의, 나의, 우리의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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