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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씹는 입, 남겨진 맛 – 성해나 《혼모노》

달콤하고 질기며, 뜨겁게 남는 진실의 서사

by 옫아

성해나의 《혼모노》에서 진실은 언제나 먹는 것처럼 다가온다.

달콤하게 속이고, 뜨겁게 상하게 하고, 질기게 남아 목을 막는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 속 작품들은 ‘진짜와 가짜’의 단순한 대비를 넘어,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을 과연 진실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진실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기는 하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작품 속 음식들은 이 질문을 인물들의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매개가 된다.

한 모금의 맛, 한 입의 질감이 곧 우리가 붙들고 있는 ‘진실’의 불안정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작동한다.

〈혼모노〉에서 화자는 “바나나맛이 나지만 바나나는 아닌 우유”(135쪽)를 마시며, 장수할멈을 떠올린다.

익숙한 달콤함이면서도 실체 없는 향이 남기는 이질감은, 우리가 ‘진짜’라 믿는 것조차 허위의 맛을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스무드〉의 “감태는 김의 사촌 격”(73쪽)이라는 문장은 교포가 겪는 소속감의 불안정을 압축한다.

겉으로 비슷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감태와 김처럼, 주인공은 한국 사회 속에서 ‘거의 같은 듯 다른’ 존재로 경험된다.

이 장면은 주인공이 자기 정체성과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겪는 불안과 거리감을 상징한다.

〈우호적 감정〉의 딤섬 장면, “얇은 피가 터지며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온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머금는다”(240쪽)는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으로 곪아가는 관계의 긴장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입안에서 퍼지는 뜨거움은, 우리가 ‘우호적’이라 믿어온 관계가 사실 얼마나 위태롭고 가벼운 껍질 위에 놓여 있는지를 폭로한다.

〈잉태기〉의 미더덕은 이 질문을 시간과 관계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틀니도 없이 미더덕을 오독오독 씹는 늙은이”(250쪽)와

“물에 닿아 녹진해진 미더덕, 한때는 징그러웠으나 이제는 담담해진 감각”(280쪽).

질기고 거칠던 맛이 무뎌지고 담담하게 변하는 과정은, 처음에는 거부했던 것조차 시간이 흐르면 받아들이고, 끝내 ‘진실’로 둔갑시키는 인간의 모순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 두 장면은 삐뚤어진 애정과 집착이 충돌하는 대비를 보여주며, 질긴 식감과 무뎌진 감각으로 보호와 억압, 사랑과 구속이 뒤엉킨 관계의 질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처럼 소설집 《혼모노》에서 음식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진실의 양면성을 체감하게 하는 감각적 장치다.

달콤하지만 허위의 맛, 닮았으나 결코 같지 않은 맛, 뜨겁고 삼키기 힘든 맛, 질기지만 결국 견뎌야 하는 맛.

이 네 가지 감각이 각 단편을 잇는 서사의 축을 이루며, 독자로 하여금 그 불편한 질문을 온몸으로 삼키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한 입씩 맛을 삼키게 만든다.

달콤함과 거짓, 뜨거움과 억압, 질김과 순응을 모두 씹어 삼킨 뒤에도,

목구멍 어딘가에 남는 건 하나의 물음이다.

그 모든 맛 속에서, 우리가 붙들던 ‘진실’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붙들고 있는 ‘진짜’는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그마저 허위의 향을 품은 또 다른 가짜인가?

음식의 맛과 질감을 따라 읽을 때, 비로소 이 소설집의 불편하면서도 강렬한 풍미가 온전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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