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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n 18. 2024

가슴 아파도 나 이렇게 웃어요

미국에서 아플 때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구리기로 악명 높다. 제대로 된 보험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갑작스레 큰 병에 걸린다면 집안이 거덜 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기본적으로 민간 보험에 의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용주를 통해 건강 보험을 제공받지만 보장성 정도의 편차가 크다. 정부가 운영하는 저소득층 대상 메디케이드와, 노인 대상 메디케어가 있지만 그 역시도 활용의 편의성 측면에서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연구에 따르면 수만 명이 보험이 없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한다. 의료비 부담이 커서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미국의 악명 높은 의료 체계 속에서 건강한 몸뚱이를 믿고 있던 사이, 점점 더 집순이가 된 백수는 활동량도 줄어들고 운동 역시 하지 않게 되었다. 점점 살이 찌면서 동글동글해진 나에게 몇 주전부터 어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가슴 통증이다. 웬만하면 가슴 아플 일은 없는데, 어째서 인지 위쪽 가슴 가운데에서 약간 오른쪽에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에 하루 이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넘겼는데,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 남편에게 ‘아우 가슴 아파.’하며 징징 거렸다. 남편은 걱정스레 쳐다보며 바로 병원에다 전화를 했다. 예약을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에서 병원에 간 적 없는 나는 주치의도 없었고 병원 기록도 없기에 그것부터 정해야 한다고 했다. 아프면 동네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약 받거나 치료하면 되는 게 얼마나 편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주치의를 정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남편은 여자 의사가 편할 거라며 자신이 찾은 후보군들을 쭉 보여주었다. 남자든 여자든 의사라면 환자를 잘 돌보고 치료를 잘하는 능력만 탁월하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의 판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남편은 의사들의 프로필을 보며, 어디서 학부를 나왔고, 어디서 레지던트를 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다민족, 다인종이 사는 국가다 보니 의사들의 학부도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미얀마에서 의대를 나온 의사는 나의 편견 탓에 믿음이 가지 않아 넘겼고, 다른 개발 도상국의 의대를 나와 미국 면허를 딴 선생님들도 걸렀다. 좋은 학교를 나온 선생님들은 이미 환자가 다 차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조금 더 먼 곳의 병원에 선생님들도 찾아본 결과, 좋은 학교 출신의 동양인 여자 선생님을 주치의로 정할 수 있었다. 학교가 의사의 실력을 대변하진 못하지만 그나마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서의 기능은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와의 상담 예약을 위해 다시 한번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가장 빠른 진료는 7월 3일입니다.’

엥? 오늘이 6월 11일인데?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 전화기 넘어 흘러나왔다. 전화를 받는데도 이미 20분이 걸렸는데,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온 나에게 이 모든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미국인들의 여유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란 걸 다시금 확인했다. 느려터진 행정 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런 기대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여유였다.

남편은 너무 아프면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다른 방법을 모색하자 했고, 남편은 어떻게 했는지 전화 진료 서비스를 신청했다.

잠시 후 병원에서 전화를 해온 한 여자가 접수를 위해 나의 증상과 음주나 흡연 습관, 알레르기 같은 사항들에 대해 약 20여 분간 물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상체를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있어요. 압력이 느껴져요.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아요. 주로 산책을 해요….”

여러 번의 오케이라고 확인하던 그녀는, 잠시 후, 의사에게 다시 전화가 올 거라며 수화기를 놓았다.


그녀의 말처럼 약 3시간 뒤에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다른 여자가 전화기 너머에서 이전과 같은 질문을 똑같이 하며 20분을 보냈다. 또 물을 거라면 이전 접수자는 왜 그 복잡한 질문들을 했던가. 이 나라는 전산화와 데이터 공유가 한 병원 내에서도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단 말인가. 인내를 가지고 대답을 마무리 짓자, 그녀는 비교적 빠른 3일 뒤 프렉티셔너 너스(진료와 진단이 가능한 간호사)와의 진료를 예약해 주었다. ‘그래도 7월 3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 한결 마음을 놓고 병원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14일, 병원에 들어갔다. 접수를 하고 30불을 냈다. 진료비가 어떻게 산정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진료를 다 보고 나서가 아니라 그전에 선불로 내는 것이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진료를 예약한 간호사를 만나기에 앞서 한 여자(간호조무사인 듯하다)가 나에게 3일 전 의료진이 했던 질문을 똑같이 또 했다. ‘제발! 기록 좀 해두세요.’ 없던 통증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드디어 만난 간호사 역시 같은 질문을 했다. 4번의 질문에 대해 똑같이 대답을 했고, 그녀는 심장 쪽의 질환과 혈관 질환을 의심하며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혹시 모르니 흉부 엑스레이도 찍을 수 있느냐 물었다. 위쪽 갈비뼈가 부러진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 동안 안 하던 요가를 다시금 시작했던 터라 혹여나 갈비뼈에 손상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말에 오케이를 날린 그녀는 내가 해야 하는 검사들이 적힌 종이를 줬고, 나는 그 종이에 적힌 검사들을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각각의 검사가 이루어지는 위치까지 알려줬다면 참 좋았을 텐데, 여러모로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시스템이다.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고, 심전도 검사를 받았다. 이미 작년 가을 한국에서 종합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때도 아무 이상이 없었기에 별 탈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심전도 검사실에 들어섰다. 선생님이 옷을 걷어보라 했을 때, 나는 당연스레 브라까지 올려붙였다. 종합 건강검진을 할 땐 항상 맨몸으로 했으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브라는 내려도 된다고 했다. 정말, 지금생각해도 민망한 순간이다. 하이킥이 절로 나오는 쪽팔림을 품고서 남편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 에피소드를 말해줬다. 남편도 웃기다는 듯 킥킥거렸다. 피까지 뽑고 나서 병원을 나왔을 땐 이미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가슴 통증은 여전했고 아무렇지 않던 나의 걱정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다음날, 어플에 검사 결과들이 떴다. 엑스레이에 이상이 없고, 심전도도 이상이 없으며, 피검사에도 큰 이상이 없다고. 다만 콜레스테롤이 높아 위험 수치를 훨씬 넘었다고 했다. 이는 가족력이라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미국에선 더 크고 무겁게 다가왔다. 피가 탁해서 심장이 멈출 수도 있는 건가 하고 지레 겁이 나버렸다.

한국에서 심장 발작 증세가 일어난다면, 나는 회사나, 집이나 늘 누군가가 나를 보고 조치를 취해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맞이할 텐데, 이곳은 달랐다. 남편이 회사에 나간 후에 그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나는 혼자 차가운 바닥에 누워 최후를 맞이할 일이었다. 아. 안된다.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미국에 와서 고지혈증으로 죽을 순 없어!

나는 피를 맑게 하는 음식을 찾고, 아침 조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처럼 부지런하고 건강하고, 깨끗하게 살기로 다짐하면서. 점점 먹어가는 나이와 늘어가는 뱃살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내 건강을 위해. 그리고 내가 만드는 음식이 나와 남편, 내 가족의 건강에 직결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더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했고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를 줄이고 샐러드의 비율을 늘렸다.


내일 다시 병원에 간다. 진짜 주치의를 만나고 내 통증에 대해 다시 한번 브리핑을 해야 할 테지. 아직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움직일 때 뚜두둑 소리가 나는 것 같은 걸로 보아 근육 파열을 의심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뭘 알겠는가. 조심스레 초음파를 제안해 볼 수야 있겠지. 부디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심장마비로 고독사 하고 싶진 않으니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가슴 통증이 괜히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내일이 되면 또 알게 되겠지.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노래가 떠오르는 밤이다. 가슴 아파도 나 이렇게 웃어요.





(대문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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