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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n 02. 2024

동생의 시어머니

Welcome to 시 Wrold, My Sister!

동생(둘째, 수빤)의 결혼식 하루 전, 엄마와 아빠가 대전으로 올라왔다. 나는 결혼식이 있기 5일 전, 한국에 도착한 후, 동생이 피로연에서 입을 예복을 함께 고르고, 친가에 가서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엄마를 괴롭히는 92세의 할머니를 뵙고, 시어머니, 친구들을 쭉 돌아보는 빡빡한 한국 방문일정을 소화한 다음 마침내 대전에서 엄마, 아빠를 마주했다.


동생의 신랑 될 사람은 내 절친 쏭의 대학 동기다. 대전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싱글이었던 우리는 종종 일 끝나고 집이나 음식점에서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공유하곤 했었다. 나와 쏭, 수빤과 성창. 이렇게 우리는 함께 20대 후반의 청춘을 보냈고, 성창과 수빤은 오래도록 서로 간의 호감의 부인했지만, 결국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지난 5년 간, 그들이 사귀던 모습을 모두 봐 온 데다, 성창이 우리 집을 줄곧 드나들었고, 막내까지 대전에 올라온 후, 성창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게 된 터라 나는 둘째가 시집‘간다’는 생각 보다, 제 짝을 집으로 데려 ‘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엄마, 아빠는 성창을 오래 봐 왔지만 둘째 딸을 품 안에서 떠나보낸다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허전하다고 했다. 그들이 차린 신혼집은 우리 자매가 대전에서 함께 사는 아파트 내 다른 단지이고 걸어서 7분 거리 일 뿐인데도 말이다.


엄마, 아빠가 대전에 도착한 후, 그보다 하루 전 한국에 도착한 나의 남편, 휴가를 낸 새 신부 수빤과 함께  다섯 명이서 성창과 막내 동생(진매)이 운영하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걸어갔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랑, 신부에게 결혼식 준비가 잘 되어 가는지, 긴장하진 않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가 막 테이블에 놓일 무렵, 바깥에서 중년의 어르신 셋이 카페로 들어오고 계셨다. 나는 직감했다. 아, 저분이 성창이네 부모님들이시구나.


사돈어른들이 카페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들을 맞이했다. 성창이 어머님, 아버님과, 이모님까지. 그들도 우리의 존재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며 함께 우리가 있는 쪽으로 들어오셨다. 미국에 있었던 탓에 나는 상견례에 참석하지 못해 처음 뵙는 얼굴들이었지만 성창과 똑같이 생긴 어머님의 모습에 살살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을 본 성창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갔는데, 엄마가 말실수할까 봐 늘 걱정된다고 했던 그와 내 남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성창이네 어머니도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회적 웃음을 늘 장착하고 있는 우리 식구들은 그녀의 굳은 표정에 조금 긴장했다. 나는 일어나 “어머님, 아버님, 이모님, 커피 뭐 드시겠어요?”하며 주문을 받았고, 커피를 가져다 드렸는데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 성창이가, 어릴 때는 얼마나 예뻤는데, 교정을 잘 못해서 얼굴이 저렇게 동그랗게 됐어요.” 얼굴이 동그란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지 몰라요. 학원도 여러 과목 같이 가르치는 덴 안 보냈다니까요? 고등학교 때까지 택시만 태워 보냈어요.” 성창이는 매일 엄마한테 두드려 맞았다고 했었다.

진실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는 동생의 예비 시어머니의 말들이 쏟아졌다. 내 남편은 그 자리에서 나가자며 귓속말을 했고, 나는 안 된다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따님이 얼마나 얌전한지 몰라요. 성창이 저놈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할 줄 알았는데, 여자친구 만난다고 하고 또 실제로 봤을 때, 제가 반할 정도였다니까요.”

성창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저희도 성창이가 얼마나 속이 깊고 착해서 든든합니다.”

아빠가 말했다.


이렇게 어색한 자리가 있던가. 또 한 번의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생각했다. 회사 전체 워크숍에서도 진행을 맡으며, 졸업식 사회까지 보는 나는 언제가 진행 본능을 드러내야 하는 타이밍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시댁이 아니라 동생의 시댁 어른들이 되실 분이니 뭔가 더 조심스럽다고 해야 할까. 거기다 아빠는 마음에도 없는 소릴 덧붙였다.

“저희 이제 저녁 식사하러 갈 텐데. 같이 가시지요.”

“맞아요. 저기 묵집이 유명한 데서 토속적인 음식 좀 먹으려고요. 같이 가셔요.”

엄마까지 합세했다.

성창이네 부모님은 대답 없이 우물쭈물했고, 그때 내가 나섰다.

“아휴 참, 아빠도. 다들 스케줄이 있으실 텐데 왜 그래. 그리고 내일 또 뵙고 할 텐데. 사돈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편하실 수도 있고, 그렇죠? 우리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합시다.”

“아, 그런가요?” 체면치레로 던진 인사였던지 아빠도 머쓱해했다.


“그래 맞아요.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도 성창이가 속상하게 하고 하면 계속 얌전하게 있는 것보다도 확실히 이야기하고 해야 해 알지?” 성창이 이모님이 동생을 향해 한 말씀하시자, 성창이 엄마는 앙다문 입술을 한 채 손으로 이모의 다리를 툭툭 쳤다. 우리 식구들 중에 그 모습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런 말 하지 말라는 제스처. 성창이 어머님이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파악이 되었다.


“저희는 먼저 와서 이야기 다 하고 했으니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나의 진두지휘하에 엄마, 아빠도 맞장구를 치며 사돈어른들께 내일 뵙겠다 인사를 하며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언니야, 고마워.” 카페를 나온 수빤이가 내게 말했다.

“약간 눈치 없는 척하면서, 바른말도 하고, 자리를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야. 이번엔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또 나는 드센 언니의 프레임을 써야 했구나.”

엄마, 아빠도 나의 활약(?)을 칭찬했다. 남편도 나에게 따봉을 날렸다. 우리는 손을 잡고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성창이네 어머님은 성창과 수빤이가 알기도 전인 20대 중반부터, 결혼하라고 하루에 한 번씩 전화로 잔소리를 하셨다. 성창이 나와 쏭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던 중에도 그녀로부터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참는 모습을 보며 그저 그를 놀리기만 했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제 전화 속 그녀가 내 동생의 시어머니가 된다니!!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이 아이들의 신혼집은 구축 이긴 하지만 49평의 커다란 집이고, 시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신 거다. 신혼살림 역시 성창이가 쓰던 것들을 그대로 들고 와 새로 마련할 필요가 없었던 터라, 엄마, 아빠는 가구 몇 개만 넣어줬다. 부모님이 결혼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그들이 결혼 생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 또한 많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간 들어온 성창이 어머님의 모습과 잠깐의 마주침으로 확인했던 그녀의 표정, 몸짓의 언어는 시어머니로 그녀를 접했을 때 결코 쉬운 사람이 아닐 거란 생각을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워 올렸다. 아... 내 동생도 시집을 가고 꽤나 고달픈 시월드를 마주하게 되는구나. 그녀에게 또 다른 동질감이 들었다.


수빤이는 어머님의 표정이 내내 안 좋던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나는 동생에게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다른 사람 기분 안 좋은 것까지 모두 챙길 순 없다고. 예비 사돈들을 만났는데 겉으로라도 싹싹하게 대해야 하는 자리에서 무례하게 구린 표정을 하고 있는 것부터가 나는 오히려 마음에 안 든다고,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해 버렸다.

“그렇지? 나랑 밥 먹고 할 때는 안 그러셨는데, 오늘 표정이 너무 안 좋으시더라고.”

“나는 우리 집 식구들이 다 웃고 친절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그럴 줄 알았는데. 사돈 되실 분들이 뭣 때문인지 너무 표정 관리 안 하시는 데다, 어머님은 진짜 손으로 이모님 툭툭치고 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너의 앞길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냥 지금처럼 잘해드려. 그리고 혹시라도 부당한 요구나 참견을 하시면 그것도 슬기롭게 잘 대처하고. 알겠지? 그게 결혼이란 건가 봐. 행복과 고난이라는 인생길을 동시에 제공하지. 그리고 너는 다행인지도 몰라. 우리 어머니 봐라. ㅋㅋㅋ.”

하드코어인 나의 시어머니를 잘 아는 수빤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언니야 시어머니도 있는데, 우리 시어머니는 집이라도 해주셨잖아.”

현실 자매들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를 통해 결혼을 앞둔 동생과 내적인 친밀감이 깊어졌다. 나와 동생 사이, 우정과 사랑의 레벨이 또 한 단계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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