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양희 Jun 29. 2024

만물 트럭을 몰아보겠어요?

봉이와 함께라면 뭐든 좋아


백수의 샌프란시스코 일상은 소소하다.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주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한다. 사실 두 명 사는 살림에 가사노동은 그리 고되지 않다. 눈에 더러움이 보이면 그때그때 치우니 대청소가 필요 없고, 빨래도 일주일에 두 번이면 되는 데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해주는 일이니 힘들일 것 없다. 음식을 장만하는 게 가장 고민스러운 일인데, 한동안 한식에 빠져있다 빵(브리또, 치아바타, 사워도우)과 샐러드, 단백질(계란, 닭고기, 두부)을 번갈아가며 대체식으로 내놓으니, 준비과정과 치우는 과정 모두 간단해졌다. 집안일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좀 보낸다. 그러고 나면 강아지마냥 남편을 기다린다. 남편은 두시 사십 분이면 집에 온다. 남편을 기다리며 빈둥거리는 백수 생활이라니. 한동안은 쏟아지듯 넘치는 시간의 무게에 치여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 마저 예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한국 사회에서 시키는 정도대로 나름 치열하게 살아온 청소년기 덕분에 사회 초년생으로서 나의 일상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일 년 반의 백수 시절과, 말도 안 되는 처우의 계약직 시절, 직장 내 괴로움 방지법이 있기 이전, 상사의 갈굼으로 퇴사할 뻔한 일이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들도 지나고 나니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남는 것은 사라져 가는 아주 안 좋은 몇 가지 기억과 계속해서 되뇌고 싶은 수많은 좋은 기억들이다. 편안한 회사생활 이후 남편 덕에 미국까지 와 여유로운 백수생활을 하다니, 이제는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누구의 덕인지 감사할 따름이다. 자본과 물질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사회에서 노는 것에 조금은 죄책감이 들지만 어쨌거나 노는 건 잠시 일 뿐, 나는 또다시 일을 할 사람이니 괜찮다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나를 다독이는 일도 잊지 않는다.


남편은 요즘 들어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싶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전기 자전거를 샀고, 8월부터 시작되는 테니스 클래스에 등록했다. 내가 극구 사양한 수영장 패스도 끊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꽤나 활동적인 사람이다. 일주일에 세 번은 축구 경기를 했고, 스포츠 카를 몰고 해안 도로를 달리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고,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은 유럽으로 여행을 했단다. 그러던 그가 나와 결혼 한 이후, 외벌이를 하게 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가장으로서 책임을 짊어지다 보니 전보다 자신을 위한 소비에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해 그를 만나기 이전에도 이미 23개국을 떠돌아다녔고 안정적인 직장과 꽤나 만족스러운 연봉에 나와 가족들을 위한 소비를 어려워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소득에 의존하다 보니 합리적인 소비자에서 짠순이 소비자가 되었다. 우리 부부의 공통 관심사는 여행이다. 남편의 항공혜택과 192개국을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대한민국 여권  파워로 우리는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는 계획 없이 즉흥적인 여행을 했고, 여행지에서도 아트 뮤지움에 가거나 공연을 보는 등 내 취향이 반영된 활동들을 주로 했었다. 처음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내 여행 방식을 좋아하던 그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은 실증을 느끼게 된 것 같다. 특히 현대화된 서구사회에서 마주한 사람 사는 모습은 거의 비슷비슷해서 특별한 문화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여행이 더 이상 새로운 자극제가 되지 않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이젠 한 곳에서 진득하게 취미를 개발해 익숙함 속에서 발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랄까.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여러 활동에 등록한 이후 잠들 기 전, 우리는 접하기 가장 쉬운 정보 제공처인 유튜브의 파도에 실려 둥둥 떠다녔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무서울 정도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모두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추천한다. 남편과 최근 전국 해안지역과 섬지역을 돌아다니며 트럭에 잡화를 싣고 파는 만물 트럭 사장님을 본 적이 있다. 고된 일상 속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전국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사장님의 모습에서 짠함을 느꼈다. 돈을 번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란 걸,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값지게 쓰인다는 걸 생각하면 쉽게만 돈을 벌려고 하는 오늘날의 요행들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업은 가게가 가깝지 않은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물자를 유통하며 타지의 생활을 전해주는 소식통의 역할까지 하니 꽤나 낭만적이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처럼 보였다. 그는 몇 차례 매스컴에 출연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개인 유튜브 채널까지 별도로 운영하며 약 6만 명 이상의 구독자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같은 콘텐츠를 보면서도 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재빠르게 검색해서 나에게 추가적인 사실들을 전달해 준다.

"저렇게 하면 연 8천에서, 2억 정도 번데. 편차가 심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자기도 나랑 저렇게 해볼래?" 남편이 말했다.

"응,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여보랑 나랑 같이 돈도 벌고 같이 돌아다니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해보지 않았기에 마냥 낙천적인 나는 좋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해보지 않은 여럿 경험들이 즐비한 가운데,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만물장수 역시 해보고 싶은 직업이 되어버렸다. 고객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파악하고, 구매처를 뚫고, 짐을 싣고, 운전을 하고, 물건을 판매하고, 잠까지 트럭에서 자는 그 고됨은 어렴풋하게 짐작만 하는 채로 큰 고생 한번 한적 없는 나는 남편과 함께라면 만물트럭 장수도 멋진 일처럼 보였다.


어제도 어김없이 자기 전에 켠 TV에서 유튜브가 새로운 영상을 추천했다. 또다시 만물 장수였다. 약 15년 전쯤으로 보이는 인간극장에는 62세의 털보 아저씨와 그의 딸 26세 아가씨가 각자의 차를 몰고 함께 장사를 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얄궂게도 그들의 집은 영천이었다. 내 고향 영천. 지난 30년간 발전 하나 없이 변화 없는 그 시골. 애증의 장소인 고향에서 남의 땅 위에 가건물을 올린 채 살고 있는 부녀의 모습을 보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엄마 없이 자란 딸은 나이 많은 아버지와 함께 트럭을 몰며 만물장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아버지의 고지식함과 답답함이 화면 너머로까지 전달되어 속이 턱턱 막혔다. 영천 아재들의 DNA에 공유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마냥 아빠를 포함해 친구들의 아버지들과 내가 아는 몇몇 아재들과 마찬가지로 체면을 중시하며, 철학을 논하고, 융통성이 없고, 고집 센 모습이었고, 그와 함께 하루종일을 붙어 다니며 꽃 같은 나이에 길 위에서 삶을 배운다는 착한 딸의 생활이 비쳤다.

"우와, 저 아저씨, 진짜 우리 아빠 같다 봉이(여보에서 출발한 남편의 애칭, 여보-> 여봉-> 봉이로 발전했다). 답답하기가 고구마 백개 먹은 것 같아. 나는 절대 저렇게 일 못한다."

"저 아저씬, 선비야 선비. 그래도 자기, 장인어른은 정말 리스펙 해야 해. 저 아재는 집도 없는데 애한테 이래라저래라 가르치잖아. 장인어른은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랑 저체들한테 모든 걸 다 제공했고. 저 아저씨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장인어른은 정말 존경받아야 돼. 나는 진짜 장인어른을 하이스트 리스펙해." 영어를 섞어가며 남편은 아빠에 대한 존경심을 뿜어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지난번 본 만물트럭 사장님이 털보 아저씨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남편은 영상을 보면서도 빠르게 검색을 하며 아저씨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가씨는 결혼을 한 후 만물 트럭을 그만뒀다고 알려줬다. 회차가 진행되면서 앳된 모습의 만물트럭 사장님이 15년 전 인간극장에도 모습을 비췄다. 군대 휴가를 나와서도 누나와 아버지의 트럭을 보수하는 착한 그가 안쓰럽고 기특했다. 엄마도 없고 집도 없는 환경에서 고지식하고 대쪽 같은 아버지 아래 자란 남매들. 청소년기에는 방황했지만, 아버지의 한결같음 속에서 인생의 바른 길로 나아간 그들의 모습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애와 사랑을 느꼈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고 보듬고 돌보며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남편은 우리가 가졌던 마음과 태도에 대해 반성하고 새삼 오늘의 삶에 감사할 수 있었다.


고생이라면 고생인 무언가를 경험해 보기도 했지만 현재의 삶은 충만하고 여유롭다. 나는 남편을 끌어안으며 ‘여봉. 고마워.’라고 한다. 내 볼로 남편의 볼을 부비며 고마움과 사랑을 전해본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기에 지금의 여유로움은 지금 대로 즐기고, 향후에 어려움이 닥친다면 그 역시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거다. 남편과 함께라면 뭐든 잘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힘듦과 고됨을 짊어진 나의 조모들과 엄마의 삶을 보아왔으므로 나 역시도 그들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니 극복 못할 것은 없다. 들풀처럼 한 번은 누웠다가 다시 일어날 마음의 준비를 유튜브를 보며 한다. 때로는 여행보다 울림을 주는 누군가의 삶이 더 큰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는 걸 남편과의 저녁시간에 느낀다.


봉이, 봉이가 하고 싶다면 만물트럭도 재미있을 것 같아. 우리 주어진 삶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보자.






대문출처: 인간극장 유튜브 썸네일 캡쳐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