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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n 30. 2024

인도로 가는 길

친구 결혼식은 어쩐단 말이냐


7월 2일, 인도의 푸네에서는 나의 친구 결혼식이 열린다. 친구라고 하면 이상할 만치 나이차이가 나지만, 친구에 나이를 크게 따지지 않는 나는 그녀를 친구라 부른다. 아포르바는 내 한국 직장(대학원 대학교)의 외국인 입학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글로벌 인턴십의 참가자였다. 두 달간 대한민국의 국가 연구소의 연구에 참여하며 일하고 배우는 이 프로그램을 처음 맡게 된 나에게 72개국, 1,082명의 지원서가 쏟아져 왔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22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대전에 당도했다. 다들 반짝 거리는 눈으로 인턴십에 참여한 학생 중 4명이 학교에 다시 지원했고, 그중 2명이 합격했다. 당시 아포르바는 영국에서 학부를 다니고 있었고, 한국에서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접하며 큰 매력을 느껴, 우리 학교 석박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나의 첫 인턴이 우리 학교에 까지 다니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학생과 교직원의 관계에서 나아가 타지에서 공부하는 그녀를 더 살뜰히 챙겼다. 주말이면 함께 등산도 하고 산사에도 들러 명상도 했다. 함께 사물놀이단에도 가입해서 학교 밖의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하며 즐겁게 지냈다. 그런 그녀가 박사 과정을 마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결혼 소식이 들린, 지금으로부터 1년 전부터 참석 의사를 밝혔고, 마침내 7월 2일 그녀의 결혼식이 다 달아 인도에 가기 직전이다.


인도는 늘 가고 싶은 여행지였다. 미지의 세계. 삶과 죽음에 대한 참된 진실을 보여줄 것 만 같은 마법의 나라. 갠지스 강과, 히말라야에서 명상을 하며 영적인 스승을 만나고 참된 나를 찾는 곳.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경제, IT기술이 있는 반면, 국민들의 뼛속까지 박혀있는 카스트 제도가 마구 뒤엉켜 있는 모순 덩어리인 그곳. 인도는 스무 살 때부터 친구와 배낭여행을 준비했을 정도로 강한 매력으로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매력에 더해 늘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따라, 아직 까지 가본 적이 없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나는 인도를 더욱 갈구하게 되었다.

7월의 인도는 몬순이라 덥고 비가 많이 온다. 그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지만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인도 아니던가. 게다가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할 수 있고, 인도의 전통 결혼식을 맛볼 수 있으니, 이번 여행은 모든 면에서 최고의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다. 여행에 앞서 미국에 있는 나의 인도 출신 친구들 역시 나에게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셸리니는 결혼식에서 입을 수 있는 전통 복장 두벌을 선물했고 프리티는 인도에서 갈 곳과 음식점들 믿을 수 있는 가이드의 연락처를 주었다. 나는 인도에 갈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셸리니가 선물해준 옷들


글을 쓰는 오늘은 인도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는 날. 나와 남편은 29일 샌프란 시스코에서 홍콩을 거쳐 델리, 그리고 국내선으로 갈아타 푸네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7월 1일 푸네에 도착하면 믿기지 않게 싼 가격의 힐튼 콘레드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결혼식이 열리는 리조트로 향해서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전한다. 그것이 우리 인도 여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도여행을 반기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와 아빠였다.


아빠는 일주일 전부터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물론 원래도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하는 아빠지만 전화의 내용이 모두 인도여행에 관한 것이었기에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인도에서 화물열차랑, 여객열차랑 충돌해서 사람 죽고 병원에 실려갔어. 인도에 안 갔으면 좋겠다.”

“지금 더위가 50도 넘게 올라가서 1,000명 넘게 죽었더라. 인도에 안 갔으면 좋겠다.”

“인도는 치안이 너무 안 좋고 강간도 많이 일어난다더라. 인도에 안 갔으면 좋겠다.”

통화의 모든 내용은 인도에 안 갔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더워서 사람들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그건 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고령자들이었고, 열차 사고나 같은 건 인도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깐 가기로 한 결혼식을 못 갈 이유가 될 수 없어. 그리고 치안이 안 좋은 데는 안 다니고 조심해서 꼭 김서방이랑 같이 다닐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럼 2주는 너무 기니깐, 결혼식만 갔다가 집에 오는 건 어때?”

엄마, 아빠는 사위가 낸 2주 휴가 중 단 얼마간이라도 집에 와 있었으면 하나 보다.

“그럼, 엄마, 아빠를 모시러 갈 테니 같이 이탈리아에 간다고 약속하면 결혼식만 갔다 집에 갈게.”

나는 예전부터 예술을 좋아하는 엄마, 건축물을 사랑하는 아빠를 데리고 로마에 가고 싶었는데 만약 엄마, 아빠가 오케이를 한다면 그렇게 할 마음이었다.

“그건 생각해 볼게.”

역시나 예상했던 답이 나왔다. 엄마는 가고 싶다고 했지만 아빠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60이 된 아줌마가 남편 때문에 이동의 자유를 스스로 버린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엄마 역시 아빠 핑계를 대고 일상에서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숨긴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효도하기 너무 힘드네. 엄마, 아빠 원하는 대로만 하지 말고 우리랑 같이 즐길 수 있는 걸 하려고 노력조차 안 하잖아. 김서방도 아까운 휴가까지 써가면서 계속 한국에 그것도 장인, 장모님만 보러 가면 좋겠어? 내가 휴가 내서 맨날 시어머니 보러 간다고 생각해 봐. 나는 싫을 것 같은데. 같이 놀러 가는 거라면 모를까. 그리고 아직 까지 다리가 덜 아프고 생생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때, 딸이랑 사위가 같이 가자고 할 때 다녀야지. 나중 되면, 우리도 엄마, 아빠 보다 우리 가족이 더 중요해져서 가고 싶어도 못 갈 때가 생긴다는 걸 왜 모르냐고.”

속상한 마음이 한 바가지 말로 쏟아져 나왔다.

자신들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천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 답답하기만 해서 전화를 끊었다. 떠나기 하루 전 마지막 전화였다.


엄마, 아빠와 전화를 끊고 인스타그램을 주욱 훑어보고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DM을 보내왔다. 그가 보낸 건 한 건물이 무너져 내린 사진이었고, 아래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델리 공항 무너져, 1명 사망, 8명 중상.” 어쩜. 이럴 수가.

88년 만에 가장 큰 폭우가 쏟아진 델리의 공항 지붕이 무너져 사상자가 생기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건 정말 인도에 가면 안 된다는 하늘의 계시인가? 인도 여행을 예정 중인 2주 내내 비가 오기도 했고, 그 비가 거세져 도심 곳곳이 물에 잠긴 뉴스까지 봤을 때만 해도 인도에 간다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출발 직전 공항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닐 수 있지만 며칠 사이에 내가 죽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이 여행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심어놓은 생각의 씨앗에 공항 붕괴 소식은 최종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여보, 좀 안 내켰는데, 공항까지 무너지고, 우리 인도는 못 갈 것 같아. 가 있는 내내 비가 오고 말이야.”

“그럼 결혼식은 어떻게 해?”

“아포르바도 이해해 주겠지. 물론 우리가 간다고 해서 엄청 좋아한 만큼 실망도 클 테지만 그래도 이번엔 좀 아닌 것 같아. 아포르바가 시집오면 그때 만나서 축하해 주지 뭐.”

아포르바는 인도계 미국인과 결혼하는 터라, 그녀 역시 결혼식을 치르고 몇 달 후, 우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로 올 예정이었다.

“공항까지 무너진 건 좀 충격이야. 뭔가 깨름찍하잖아.”

“그럼 어떻게 해? 2주 휴가도 썼잖아.”

“엄마, 아빠가 안 간다고 하면 우리끼리라도 로마에 가자. 지금 세상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곳은 여기, 아님 유럽이야. 2주간 집에 있고 싶진 않잖아. “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급선회했다. 아포르바에게는 미안하다는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그녀에게는 “괜찮아. 고마워.”라는 짧은 답장이 왔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다독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에게도 인도에 안 간다고 알렸다. 엄마는 너무 잘 한 결정이라며 또 한 번 집에 오라 권했고, 나는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우리는 이제 곧 로마행 비행기에 오른다. 인도로 가기로 했는데, 로마라니. 어처구니없지만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쨍쨍한 지중해의 태양을 받으며 수영도 할 수 있고 여유로운 휴가를 즐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희한하게도 작년에는 마우이 출발 하루 전, 큰 불로 여름휴가 계획을 통째로 수정해야 했다. 올해는 물난리로 출발 하루 전, 인도여행을 수정하게 되다니. 세상이 내가 계획해서 하는 여행을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즉흥 여행자이니, 애당초 멀리 계획을 세우는 여행보다는 바로바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여행에 특화되어 있지 않던가.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어떻게든 잘 노는 사람들이니깐. 로마에서 아포르바에게 편지를 쓰고 결혼선물을 사서 보낼 계획을 세우며 공항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나는 집을 청소했다. 그리고도 약 한 시간이 남아, 이렇게 글을 남긴다.


인도는 나에게 얼마만큼의 충격과, 기쁨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이토록 품을 내어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나의 친구 셸리니나 프리티가 고국에 돌아간다고 하면, 그때 따라가 볼까. 어떻게라도 인도에 가고 싶은 나는 이런저런 짱구를 굴리며 공항으로 떠난다.



공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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