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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May 13. 2020

3. Somehow 최고의 발리니즈 친구

나는 너를 배달한다 오토바이로 

처음 발리에 왔을 땐, 발리에 대한 지식도 ‘무’ 였을 뿐더러 

한국에서 오기로 한 친구 외에

 아는 사람은 당연히 아예 없었다. 

당시의 주머니 사정 탓에 시간적 편의를 누리는 것보다 무조건 가장 저렴한 항공 티켓을 사야 했던 나는 친구가 오기로 한 날짜를 기준으로 여러 날짜와 시간대를 폭풍 검색했다. 

결국 나는 친구가 도착하는 날 보다 하루 먼저 발리에 도착해서 친구가 떠나기 이틀 전에 퍼스로 돌아가는

 그 주의 최고 저렴한 항공 티켓을 구매했다. 


 친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혼자 있어야 할 터였다. 

우선 오기 하루 전에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긴 했지만 발리는 정말 생전 처음이라

 어떻게 호텔까지 가야 하는지 나답지 않게 검색을 시작했다.

 다행히 관광지로 유명한 여느 동남아 나라들처럼, 공항 픽업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고, 

앱 하나면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이 땅에 첫 발을 디뎌도 숙소까진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나의 첫 번째 드라이버

그리오 내 좋은 친구가 된 "Dekjun”

 그의 이름은 덱쥰이다. 

제일 최근에 발리 갔을 때 도착하자마자 덱쥰이가 커피를 쐈다 ^^


인도네시아 로컬 사람으로,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어린 친구인데 내 여행에 감동 플러스 알파를 선물해 준 아주 고마운 친구이다.

소개해볼까 한다. 


여행 중 즐겨볼 만한 액티비티, 핸드폰 USIM 카드, 공항 픽업, 택시, 자전거, 스쿠터 등 많은 것들 을 손가락 움직임으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앱 KLOOK을 통해

 나 역시 공항 픽업 예약 및, USIM 카드를 구매 했다.


 제일 저렴한 새벽 비행기 편을 선택해 온 나는 많이 피곤한 상태였는데 이른 아침부터 퀭한 얼굴로 만나게 된 드라이버는 남자치고는 깡마른 체구에 까만 눈은 크고 진하며, 콧수염을 기른 선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선은 같은 회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직원이

 미리 내가 구매한 SIM 카드를 전달 해 주고,

 폰에서 인도네시안 USIM 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를 도와준 후

 드라이버에게 나를 잠깐 소개하고는 어디로 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자 드라이버는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어색해하고 당황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길을 안내했고 우리는 같이 주차장까지 가서 차를 탔다.

나는 그제서야 살짝 찾아온 불안한 마음에 호텔 주소를 주섬주섬 꺼내어 여기 가는 것이 맞냐고

 재차 확인 했다. 


“오케?” 

“오케!”


 차를 타고 드라이버가 물어 본 첫 마디, 어눌한 한국어로

 “사장님 음악 좋아해? 한쿡 음악?” 

이었다.

 호주에서 와서 그런지, 새벽 비행 길에 오르느라 잠을 거의 못 자서 매우 피곤 했던 탓인지 나는 한국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져스트 애니 뮤직 이즈 오케이!” 

라고 하고는 잠을 좀 자볼까 했는데, 친절한 드라이버는 구글 번역기를 켜서 소통을 시도했다. 

인도네시아 어로 말하면, 한글로 번역이 되어, 핸드폰 속의 구글 번역 사가 읽어 주는 식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운전하느라 피곤할 텐데 대화하려는 노력이 감사하기도 해서

 정성껏 한마디씩 듣고 정성껏 대답하게 되었다.

 여기서 정성껏 이란 정말 ‘정성’이다. 


구글 번역은 각 나라 언어의 문법과 어순까지 고려하여 번역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통역을 위해서는 구글 번역기가 읽어낼 수 있도록 구글 번역기에 맞는 어순과 문법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해야 했다.

우리의 대화를 도와 준 기특한 녀석 '구글 번역기'



 예를 들자면

 ‘지금 차가 많이 막히는 것을 보니 30-40분은 더 걸리겠네요, 그렇죠?’ 라고

 구글 번역기에 입력이 되고 정확히 통역이 되기 위해서는 

 ‘교통이 많이 혼잡합니다 지금, 내 생각엔 더 초과할 것 같습니다. 30-40분, 너도 생각합니까? 그렇게’ 라고

 입력이 되어야

 그나마 부드럽게 타 언어로 번역이 될 수 있는 구조이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가뜩이나 차를 타면 멀미가 심한데, 두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있자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됐어, 이제 그만 말하자” 라고 하고 적막이 넘치는 차 안 분위기를 조성하기엔 

괜히 미안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 ‘정성껏’ 대화와 소통을 하게 되었고, 마침 교통체증이 심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고작 구글 번역기로 

꽤나 폭 넓은 대화까지 하게 되었다. 


드라이버의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21살의 어린 나이었는데, 집에 빚이 많아 대만의 어떤 큰 농장에 노동 계약을 하고 대만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계약에는 노동 인력을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에어전시가 끼여 있었는데, 그 에이전시에서 불법 계약을 체결하여, 가족 빚을 청산하러 가게 된 대만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일을 할수록 빚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대를 잡다 말고, 상처 투성이인 손을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데,

 온 손에 깊이 패인 상처를 본 나는, 아침잠을 설치고 아직 커피도 한 잔 못해서 머리 끝까지 차오른 짜증을 한 순간에 잊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불법 계약을 했으면 사람 손이 저렇게 될 만큼 돈은 한 푼도 못 벌고 빚만 늘어났을까…… 

18, 19살짜리가 뭘 할 줄 안다고…… 결국 아이는 에이전시 몰래 대만의 농장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도망쳐서 온 곳이 발리라고 발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엔 아버지와 가족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자신은 여기서 여행자들을 위한 기사가 되어, 호텔, 공항 등등 여러 곳에 데려다 주는 일을 

하루 24시간 주 7일 일하며 

빚도 갚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내가 폭 빠져버린 발리의 일상


그래도 간간히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도 볼 수 있고 자기 나라니 말도 통하고 관리하는 사람들로부터 무차별하게 얻어 맞거나 하지 않으니 지금이 훨씬 좋다고 했다.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위로도, 인사말도 없어서 같은 말만 여러 번 구글 번역기에 말했다. 

“최고야 건강이” “돈도 중요해, 잠을 자는 것도 중요해” “음주 운전은 하지마” “졸음 운전은 안돼”

그리고 다시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렀을 때

 느껴졌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뉘앙스 까지도 구글 번역기가 잘 전달해 주길 바라며 나는 사장이 아니니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부탁했다.


대신 친구라는 단어를 알려주며

 ‘친구 유니’로

 나를 기억하고 불러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그리고 두 시간 가까이 지났을 때 호텔에 도착했고, 내 친구가 된 덱쥰은 발리에 있는 동안 다른 곳에 갈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웟츠앱에 자기 연락처를 저장해 주었다. 

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태워다 주는 것이라 다른 예약 건이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을 땐 자기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뭔가 비몽사몽 한 와중에 번역기의 도움을 빌려 정성껏 나눈 대화는 의도치 않게 큰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밤 늦게 친구가 한국에서 도착하는 시간이 왔다. 혼자 실컷 구경도 잘 하고 수영도 하고 놀고 있는 중 친구가 이제 막 발리 공항에 도착해서 유심카드를 바꿔 끼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 시간 넘게 걸릴 거라고 얘기하고,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친구한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니 발리에는 아는 사람 없다매!”  

 “뭔 소리고?”

 세상 처음 와 본 발리 섬에 내가 아는 사람이라니? 황당해서 답변을 하고 나니, 

친구가 캡쳐된 내 웟츠앱 프로필 사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위대한 카카오 톡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우리끼리 굳이 웟츠앱을 이용할 이유가 없으니

 내 웟츠앱 연락처를 알지도 못하는데…… 엥?


 알고 보니, 친구도 공항 픽업을 신청해서 왔는데 차에 타서 주소를 알려주고 나니 드라이버가 나에게 했던 같은 방법으로 친구에게 대화를 시도 했고 친구는 자기 친구가 하루 전에 먼저 와서 호텔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나도 덱준에게 했었고, 목적지가 같으니 

드라이버는 '얘네가 친구였구나!'생각한 것이다. 

평소 발이 넓은 편인 나는 친구에게 또 한번 의도치 않게 서프라이즈를 준 셈이다. 


덱준은 한국에서 온 내 친구에게 내가 알려준 대로 내가 자기 친구라고 말했다고 한다. 

“유니 이즈 마이 프랜드, My Chingu YUNI"


두번째로 갔을 때 공항으로 가기 전에 레스토랑에 가서 야식을 같이 먹었다.

그렇게 내 친구 덱쥰은 친구를 안전하고 즐겁게 내가 있는 호텔로 잘 데려다 주었고

 그 이후로는 현지 드라이버 이상의 친구가 되어 발리에 있는 동안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연락해서 현지 여느 교통 수단과 비교해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소통을 한 마디 한 마디 정성껏 해서 이뤄진 관계 때문인지 덱쥰은 매번 정성 만 땅의 수위도 초월할 만큼 우리에게 멋진 교통 서비스를 선사해 주었다. 


이를테면, 내가 다시 호주로 가기로 한 날에는 새벽 6시반 비행기라 공항에 4시반 정도까진 도착해야 했었기에 3시반쯤엔 내 숙소로 픽업을 와야 했었는데

 밤 늦게 까지 일하고, 그 다음날 혹시나 일어나지 못해서, 시간을 맞추지 못 할까 걱정된 덱준은 내가 묵던 숙소 주차장에 밤늦게 도착해서 차 안에서 자고 있었다. 

이른 새벽 비몽사몽 덱준을 기다리려 일부러 조금 일찍 숙소 밖으로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차를 발견한 나는 

호텔 직원에게 얘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고 물었고

 직원은 드라이버가 어젯밤 늦게부터 와서 주차장에 주차하고 눈을 좀 붙여도 되냐고 물어봤었다고 했다.

 그것만도 감동이어서 창문을 두드려 깨우기가 너무 미안했는데

 차를 탔더니 밝게 웃으며 굿 모닝 인사를 한 덱준은 가는 길에 먹으라고 작은 과자 봉지를 나에게 건네며 꼭두새벽부터 황홀한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공항에 도착 했을 때

많다고 덱쥰이 거절한 차비도 억지로 건네어 사례는 했지만

그 소소하지만 따뜻한 마음에 고마움이 가득해서 덴파사르에 도착해서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이 촉촉해 졌다. 


얼른 덱쥰이 돈을 좀 벌어서, 잠도 충분히 자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을 하면 좋을 텐데 하는 걱정과 간절한 기도의 마음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내 친구에게 선사된 서비스는 심지어 더 훌륭했다. 

친구는 다른 섬들에서 프리 다이빙을 며칠 더 즐긴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는데

 돌아가는 날 숙소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혀 

덱준이 친구의 숙소까지도 시간 맞춰 도착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결국 덱쥰은 구글 번역기를 돌려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냈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기다리던 자동차 대신 어디서 웬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와서

 친구 몸의 두 배는 되었을 거대한 여행용 배낭도 덱준이 등에 매고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게 맞춰 공항까지 데려다 줬다고 한다.


 당시 우리에게 엄청난 웃음을 선물해 준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려 정성껏 보내온 덱쥰의 메시지를 소개한다. 

‘나는 너를 배달한다. 오토바이로’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발리, 

나는 그런 따뜻한 마음과 배려와 엄청난 책임감을 겸비한 나의 베스트 드라이버 친구 덱쥰의 도움으로 

발리 도착한 순간부터 YUNI 라는 이름표를 적어온 덱쥰의 열렬한?환영으로 

행복하게 발리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발리 갈 때마다 늘 제일 처음으로 만나는 내 친구


그리고 고마운 덱준을 위해 이번엔 홍삼양갱과, 밤 양갱을 비롯한 몇몇 가지 코리안 스낵을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해서 왔다. 그 새벽에 아침으로 먹으라고 전해준 인도네시안 과자의 따뜻한 감동과 고마웠던 마음이

 내 친구 덱쥰에게 

반이라도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2. 예민충이 사랑한 모닝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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