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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May 17. 2020

4. 거리의 엄마들과 아이들

쪼리를 사주고 싶다.

세부에 갔을 때도 그랬던 것 같긴 한데 발리는 유달리 거리에서 구걸하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많다. 

처음에는 무조건 딱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자꾸 보다 보니 문득 

'왜 거리에 나앉아서 구걸할 만큼 가난한데 아기까지 낳아서 저렇게 힘들게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도 오늘날 여기저기서 빈발하는 온갖 추악한 범죄 소식에 꽤나 익숙해져 버린 내 머리로는 

누군가는 성범죄를 저지르고 힘없는 사람들은 성폭행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출생하게 된 아이들과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된 여성들일 거라는 추측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파트너 또는 남편이 원래는 있었는데 사업이 망해서? 갑자기 이혼을 당해서?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던지...? 그러기엔 사업, 이혼, 바람이라는 단어마저도 이 곳에선 사치인데... 허허

매일 같은 시간에 새벽 요가 수업이 끝나고 숙소로 오는 길엔 

늘 같은 꼬맹이들과 같은 엄마들이 비슷한 지점에서 멍하게 앉아있기도 하고 

사람들을 쳐다 보기도 하며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다. 

배고픔 때문인지 반쯤 풀렸지만 쪼꼬만 한 내 눈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아이들의 두 눈은 진하고 맑고 정말 예쁘다. 잊기 힘들 만큼 눈이 예쁜 거리의 아이들과 엄마들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신발도 없이 나 같은

 외국인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손바닥을 펴서 두어 번 아래 위로 흔들어 보인다. 

돈을 달라는 얘기다.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얹혀가는 사람들
실려가는 닭들도 저렇게 자리가 있는데 

매일 같은 곳에 요가 수련을 하러 다니니 매번 같은 지점에서 같은 사람들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코너 돌아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어느 지점쯤에

 분명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밤새 비와 바람과 추위와 야생동물의 공격을 피하는 그들만의 요새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이다. 


거리의 엄마들과 아이들은 매일 비슷한 시간 같은 곳에서 올라온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주로 활동하는 시간대인 낮과 음주가무가 한창일 밤 시간 동안에는 중심가에서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이며 성실하게 그들만의 구걸 업무를 한다. 

구걸 업무에 열중하다 보면 한 푼 두 푼 동전을 수확하기도 하고 

가끔은 레스토랑에서 주문이 잘못되어 버려지게 된 피자 두어 판 등을 수확하기도 한다. 

그러면 거리의 엄마들과 아이들은 굳이 머리 아프게 정확한 혈육을 구분하지 않고 

다 같이 모여 앉아 그 날 수확한 결과물을 허겁지겁 주워 먹는다.


곳곳에 위치한 현금 인출기 앞에서는 

나오지도 않는 젖을 애기 입에 물리고는 그 훤한 길에서 자신의 젖가슴을 대공개하는 

대담한 거리의 엄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리개도 없이 젖을 물리고 

나머지 한 손으론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또 위아래로 성실히 흔들어 보이는데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할 정도다. 

나오지 않는 젖을 갓난아기에게 물린 것을 스스럼없이 대공개하는 용감한 행위는

 과연 배고픈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부끄러움도 마다하는 절박한 행동일까 

아니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구걸 업무의 쇼맨쉽 일까?

  

언제 씻었는지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온몸에 허연 마른버짐이 피어 올라 엉망인 

다서 여섯 살 즘 되어 보이는 거리의 꼬맹이들도 여기저기서 만나볼 수 있다.

 비포장 도로 위에서 신발도 양말도 그 흔한 싸구려 쪼리도 하나 없이

 쓰레기통에서 구해온 듯한 바람이 반 이상은 빠진 공 하나로 신나게 찻길을 또 들길을 뛰어다닌다. 

뛰놀다 힘들면 아무 데나 앉고 가끔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오면 ‘hello’ 대신에 ‘money’부터 외친다. 

물론 말투에도 행동에도 부끄러움이나 미안함 따위는 없다. 

거리에서 살면서 터득한 꼬맹이들 나름대로의 지혜일 것이다. 


사실 이 곳 도로 사정은 아주 위험할 정도로 좋지 않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 여행지에서는 계획 없이 도처를 걸어 다니는 것만큼 득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거의 매일 2만 보 이상을 정처 없이 걸어 다니곤 한다. 

쿠션 빵빵한 브랜드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는 나도 한참을 걷다 보면 무릎에 통증이 심해서 쉬어가야 할 정도로 길가엔 구멍도 많고 포장이 전혀 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엔 특히나 위험하다. 

각종 피부병과 합병증으로 지저분한 개들이 곳곳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유리병, 쓰레기 조각, 야생 벌레 등등 위험 요소가 다분해서 맨발로 다니기엔 

위생적으로나 안전적으로나 절대적으로 좋지 않은 도로 사정이다.

심지어 이 원숭이들도 야생 놈들이라 '아주' 공격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엔 한 없이 미약한

 이 위험 무쌍한 해 보이는 발리의 여느 길가도

 토끼 같은 이 거리의 아이들이 뛰놀다 지쳐 

앉으면 그곳이 그들의 편하디 편한 소파가 되고 

누우면 그들이 행복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침대가 되고 

어쩌다 음식을 찾아 허기를 채우고 있노라면 그곳이 그들의 푸짐한 식탁이 된다. 


바람 다 빠진 공들고 뛰노는 맨발의 아이들 


무작정 걸어 다니다가 그리고 카페에 앉아 창밖을 한참 보다가

 꼬질 꼬질 하지만 너무나 예쁜 거리의 아이들과 마주치거나 발견하면 

아찔아찔해서 당장 내 겉 옷이라도 벗어서 발에 감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마음이 무거운데 

정작 아이들은 티 없이 맑고 한없이 밝다. 

한국에서 백화점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수없이 마주친 예쁜 옷을 입고 공주처럼 머리를 하고 당장 만화영화에서 나온 것만 같던 아이들에게서 저런 맑고 밝은 표정을 본 적은 있나 싶을 정도다. 

어이없을 만큼 밝은 거리의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행여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라도 밟을까 오지랖 부리다가도 어느새 덩달아 미소 짓게 된다. 


어느 날 내 물병, 요가매트 챙기는 것도 잊어버리고

 눈 뜨자마자 요가 수업이 끝나고 나면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나눠 줄 크래커들을 가방에 넣고 있는

 나를 보니 역시 어쩔 수 없는 글로벌 오지라퍼인 것 같아 한참을 웃었다.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를 터득하며 살아가는 명철한? 거리의 아이들인데 날 분명 호구로 생각했겠지 하하하.

사실 나 또한 재정적인 여유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다. 겨우 수영복과 운동복, 반바지 두어 벌, 약간의 돈을 환전해서 왔기 때문에 이 곳 물가가 비싼 것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관광객들이 가는 외관이 멋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 내는 것도 두려워하는 찌질이일 뿐. 크래커로 내 배나 채웠어야 했다.)


징그러운 원숭이 동상? 어떤 식당에서 홍보차 세워놓은 것인데 징그러워서 찍음


카톡으로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거리의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이러쿵저러쿵했더니 우리 여사님 하신 말

"에티오피아 사람?처럼 삐쩍 마른 네가 더 불쌍하니 네나 좀 잘 무라" 하하하 "예썰! ^^"

그러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아름다운 발리의 석양
꼬질이 아이들 (얘네는 나름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었던 듯, 슥키들 ㅎㅎ)


그래도... 

쪼리를 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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