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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Jun 14. 2020

10. 발리가 좋을 것 같다.

미래의 예민충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특출 나게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건 아니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마음껏 오대양 육대주를 누리며 넘치게 받은 사랑을 나눠주라던 

훌륭한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로 

그리고 나의 무지막지한 자유로움과 미치도록 저돌적인 탐험가 정신으로

나는 감사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홀로 많은 곳을 누비고 다녔다.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과 

심지어 카리브 해안에 있는 작은 섬 '네덜란드 자치령, 퀴라소'에서도 일하고 살아 봤으니

 세계 일주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많은 곳에서 공부를 하고 여행도 하고 일도 하고 또 쉬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내 semi-세계 일주에서 특징 적인 것은 

짧게 유명지를 돌며 여행한 곳 보다 최소 한 달 이상씩 살았던 곳이 더 많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것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카리브 해안에 있는 퀴라소라는 작은 섬에서 호텔리어로 일 했던 시간

퀴라소 섬에서 호텔리어로 일했던 시절

 뿐만 아니라 교환 학생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내 직업까지도 있게 한 중국 상해,

 동생이 살던 프랑스, 이태리에서 꽤 오랜 시간 있었던 것 하며, 

혼자서 배낭 메고 돌았던 유럽, 동남아, 미주 곳곳들 …… 

그리고 팍팍한 한국 회사 생활에 지쳐 마지막으로 '쉬러' 워킹홀리데이로 갔었던 호주

 마지막으로 현재 살고 있는 싱가포르. 

교육 환경이 아주 좋은 선진국 국가들 

미세먼지 하나 없이 모든 자연환경이 티 없이 맑은 청정지역도 많이 다녀왔고 

심지어 그 대단하다는 교육을 경험해 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나름 나이가 많지 않았던지라 '이다음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나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교육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젊다!)

지금은 내 나이 서른셋

 자연스럽게 한 번쯤은 2세를 생각해 볼 나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발리는 지내 볼 수록 아이를 키운다면 그리고 그럴만한 여건이 된다면

이런 곳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발리에 빠져들던 순간부터 꾸준히 들었다. 


발리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위생적으로 아주 깨끗한 곳도 

또 면역력 약한 아이들에게 백 프로 믿고 신뢰할 만한 우수한 의료 서비스를 갖춘 곳도 

아니기에 더 놀랍다. 

오히려 좀 비위생적 이기고 하고

 앞서 소개한 것처럼 거리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기에 도로 사정도 좋지 않은 위험한 곳이다.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진 후

온갖 뉴스를 통해 세계 곳곳의 의료 보험 시스템의 위치와 효율성에 대해서 새삼 알아가는 시간을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지만 발리와 인도네시아 자체는 이렇게 큰 전염병이 돌아도 검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만큼 되려 의료 시스템이 취약한 곳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의료시스템이 취약한 편이다 (자료: retireinasia.com)
(자료:https://www.eos-intelligence.com/)


언어 방면에서도 그렇다. 

전 세계 인구수의 4위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라지만 

이 곳의 로컬 언어인 인도네시아어가 지금 그 복잡한 중국어가 유용해진 만큼 큰 비중이 있는 언어도 아니다. 


어쨌든

아이를 아직 가져 보지 않은 미스여서 하는 그저 철없는 소린진 모르겠지만 

철없는 미스의 짧은 소견으로의 발리는 그랬다.


다양한 발음이 있어 억양과 발음이 좀 짬뽕이 될지 언정 

다양한 인종과 문화 속에서 영어를 자연스레 접할 수도 있고 

생활을 위한 인도네시아어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국제학교가 있으니 우리나라처럼 밤 10시 11시까지, 

10가지 다른 학원을 다니며 받는 한국식 고퀄리티 교육은 아니더라도

 네다섯시면 끝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적당하지만 글로벌 한 사람이 되기엔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도 된다.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시험지에 쓰며 

굳이 인위적인 교육 시스템에 눌리지 않아도 아이들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느끼고 익히며 

스스로 경제관념, 도덕적 판단 능력 등을 기르며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한 건물들이 가득한 서울처럼 거대한 곳이 아니기에 

돈은 있으면 좋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별다른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초등학교에선 친구를 사귀려면 거침없이 답해야 한다는 질문들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지 부모님의 연봉은 얼마인지 

어느 동네에서 왔으며 아파트 평수가 몇 평인지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도마뱀 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오늘 길에 떨어져 있던 꽃은 어떤 꽃이었는지

 오늘 파도는 몇 시쯤 가장 세서 수영하기엔 언제쯤이 좋았고,

 수영하다 해파리에 쏘였을 땐 어떻게 응급처치를 해야 하며 보드를 타기엔 언제쯤이 좋았는지와 같은 쓸데없는 질문이나 하며 소위 '인생을 논하며' 더 근사하게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또 벌레와 땅 위의 흙, 곳곳에 쌓인 먼지를 더러워하기보다는 

징그럽고 지저분하고 더러워 보이는 사소한 것에서도 

거뜬히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도 배울 수 있고

안전적인 문제로 낯선 이웃과 인사하는 것이 금기화 된 인색한 사회적 분위기를 익히기보다는 

너의 하루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진심을 담은 미소와 함께 누구와 인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서 

마음껏 웃고 서로 인사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아이를 양육하는 교육적 철학까지도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우리'만의 이상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양육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경제적이고 시간적인 여건도 갖출 수 있다면

나는 꼭 내 아이를 발리에서 키우고 싶다. 


미세 먼지가 많아진 우리나라가 더러워서도 아니고 

1등 만을 원하는 치열한 교육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도 아니다.

 많은 학원비와 과외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까 벌써부터 소심한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양한 인종의 다른 언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또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을 접했을 때

고작 피부 색깔로 언어로 주눅이 들거나 또는 쓸데없는 거드름을 피우기보다는

 당당하게 그때의 상황에 적합한 편안한 언어로 내 언어와 뿌리, 문화를 소개할 수 있도록

그리고 타문화에 귀를 기울이고 누구든 똑같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를 먼저 가질 수 있도록 

그러기에 부족하지 않을 언어와 지식 측면 등등의 능력들을 

등수의 압박감, 자본주의의 중요성보다 스스로 먼저 깨닫고 겸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인종, 겉으로 보이는 빈부 등을 불문하고  

지구 상의 어떤 사람들과도 함께 소통하고 도움의 손을 먼저 내밀 수 있는 따뜻함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내 뿌리를 이야기하고 모두와 똑같은 사랑과 행복을 마음껏 나누는 방법을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배웠을 때보다 어릴 때부터 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배우고 깨닫고 익혀

그 아름다운 것들이 나보다는 조금 더 일찍 내 미래 아이의 생활이 되고 삶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황인 흑인 백인 ㅋㅋㅋ

또한, 태양에 피부가 까맣게 그을려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명품 옷으로 치장을 하거나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임을 늘 인지하고 

언제 어디서나 충분히 자존감을 가지고 건강하게 자라고 생활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저분하고, 꼬마들이 뛰어 놀기엔 도로 사정도 안전하지 않은, 벌레도 많은 

발리에서 내 아이를 키우고 싶다. 


자연스럽게 빈부도 배우고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과 문화, 생각보다 좁은 세계도 배우며

 어떤 사람들과도 먼저 인색해하지 않고 마음껏 따뜻한 마음으로 손 내밀어 소통할 수 있는 

마음과 태도를 먼저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르쳐 주는 작은 눈앞의 이익들 보다는

몇만 배는 더 아름다운 발리의 자연 속에서 보다 더 큰 꿈을 키워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새벽마다 내 오대양 육대주를 위해 아직도 매일 같이 기도하시는 것처럼. 

나도 한 치 앞 비교대상일 뿐인 작은 조건들을 넘어서 

더 큰 세상을 보도록 가르쳐 주신 나의 어머니, 아버지처럼 미래의 내 아이를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글쎄... 

나 또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매일을 치열함 속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모든 것이 이상적인 '철없는 미스의 소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듯 어떠하리 저런 듯 어떠하리 

치열함을 내려놓는다고 세상에서 루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더 크고 따뜻한 승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예민충이 미래에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결론의 글을 쓰도록 하겠다. 

'그때의 내 생각은 결국 몽상일 뿐이었다. 현실은 역시 그렇지 않았다.'

라던지 

또는

'역시, 치열함을 내려놓음이 정확한 답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쁘지 않았고, 

여전히 같은 생각으로 육아를 진행 중이다.' 

라던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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