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 Dec 31. 2020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사람.

2020년을 보내며 주절주절 셀프팥히.

대단한 한 해를 보냈다. 사실 내 2020년은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것 같다. 대학원 코스가 그때 시작하다 보니 2019년 딱 내 생일을 시작으로 많은 변화도 일들도 있었다. 대학원 과정을 위해 또 국제 이사를 갔고 늘 그리워했고 다시 그리워하고 있는 동생이랑 같이 부대끼고 살면서 늘 떨어져 있어 그리움 가득했던 구멍들을 어느 정도 채웠다. 대학원을 하는 동안은 정말 별다른 교류 없이 공부에 몰두했다. 내 생에 이렇게 글자를 미친 듯이 많이 읽고 이런 골 아픈 생각들을 이렇게나 많이 자면서도 눈떠서도 한 적이 있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래도 동생과 그리고 또 한 명 얻은 사랑스러운 동생들 덕분에 별다른 힘듦도 없이 어떻게 꾸역꾸역 능력 밖인 일들을 해나갔다. 코로나가 터졌다. 중국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하고, 어떡하나 했다. 다시 상해로 돌아가서 일을 해보고 싶었기도 했기 때문에 불안해졌다. 그리고는.. 세상이 변했다. 비행기는 막히고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조차 감사해야 하는 그런 시간이 왔다. 마스크 없이 나갈 수가 없어서 마스크를 눈에 끼는 렌즈만큼이나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시대로 변했다. 그 와중에도 동생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적어도 우린 혼자는 아니었다. 한 공간 안에 셋이서 밥을 먹기도 놀기도 예능을 보며 MBTI 검사 고작 하나로 새벽 세시까지 목이 쉬도록 떠들 수도 있었다. 중국에 가고 싶다는 꿈은 일단은 사라졌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은 아니지만 시대가 이렇게 변하다 보니 어떻게든 기능들을 빨리 익혀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해야만 했다. 눈이 아파 기계로 책을 읽는 것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NO PAPER 시대에 맞춰 영국에 있는 학교 도서관 책들을 모두 E-BOOK으로 읽어 내고 자료를 찾고 논문을 써 내려가야 했다. 정말 꾸역꾸역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덕에 늘 아날로그를 고집하고 별달리 배울 생각도 없던 나도 예전보단 기계화된 생활에 그리고 미디어와 수없이 많은 앱들에 익숙해진 것 같다. 뒤쳐지면 안 되고 최대한 따라가고 배워놔야 한다는 필요성을 내가 몸소 느끼고 깨달았다는 게 아마 몇 년 전 나와 제일 다른 점일 것이다. 비행길이 막히고도 내 역마는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에 적절한 시간에 잘 돌아와서 사랑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편하고 아늑한 곳에서 큰돈 들이지 않고 격리 기간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격리하는 동안도 가족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덕분에 외롭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논문 수정을 하면서 대한민국 팔도강산을 돌아다녔다. 제주도도 꽤 오랜 시간 있으면서 구석구석 보다 보니 크게 관심 없던 제주에 대한 생각도 애정도 많이 바뀌었다. 

과정이 끝나고 논문 발표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온몸에 긴장이 풀려 뒤틀린 수면 패턴과 생각 패턴들을 돌리는 게 많이 힘들었다. 그 와중에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수면장애의 원인들도 병원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다. 조목조목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원인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먼저였던 적이 없었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 나를 위해 먼저 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사람이었다. 쇼핑을 꼭 해야 하는 경우에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쇼핑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쇼핑을 갈 때마다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의 옷을 같이 골라주고 같이 봐주는 것만 하게 되어서 정작 내가 필요한 건 사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그 또한 내 잘못이었다. 그냥 그게 불편했다. 내가 먹고 싶은걸 먼저 얘기하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많을 땐 유독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이유도 혼자 있으면 내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샆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성격인지 그렇게 살아온 습관 탓에 남을 먼저 신경 쓰지 않으면 불편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수많은 곳을 17년 가까이 돌면서 살면서 배우면서 느끼면서, 보통 사람들이 겪지 않았을 충격적인 일들 무서운 일들 심각했던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도 행여나 가족들이 친구들이 걱정할까 봐 내가 받은 충격과 아팠던 기억들에 대해 크게 얘기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들도 오랜 수면장애의 원인이었다. 그 많은 증상들의 원인과 뿌리가 이제야 찾다 보니 나온 것이다. 힘들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스스로가 좀 불쌍했다. 나를 아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후회도 좀 들었다. 원인을 찾기로 큰 마음을 먹고 파헤쳐보기 시작한 첫 한두 달이 무척 힘들었다. 불과 한두 달 전 얘기다. 아직도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작은 소리와 불빛에도 깬다. 조금 어색한 냄새에도 온갖 촉각이 곤두서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쁜 꿈도 많이 꿔서 자다가 꺽꺽거리고 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일어섰다. 아니 일어선다. 밤은 무섭다. 그냥 피곤에 지쳐 쓰러져서 자연스럽게 잘 수 있는데 그 긴긴밤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밤은 나한테 참 무서운 시간이다. 

밤은 무섭지만 나에겐 많은 무서운 기억들이 있지만 앉아서 울고 있을 순 없다. 예민하게 된 나도 나고, 씩씩하고 밝은 나도 나다. 잠을 자지 못하는 밤에 겁을 잔뜩 먹는다고 해서 해가 있을 때 씩씩하고 까르르 웃는 내가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프고 무서운 기억 보단 듣는 사람들 마다 에너지를 얻어 가는 재미있고 희망적인 기억과 이야기들이 내 속엔 더 많다. 

병원을 찾아가고 한 달 정도는 패닉 상태였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흘렀고 눈을 뜨면 눈물이 고였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부터가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다. 매일매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는 감동이 사랑으로 가득 찾고, 감사함으로 가득했다. 

중국 옛말 중에 그런 게 있단다. 싫은 일들, 거슬리는 사람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생각할 땐 손바닥 위 낙엽 하나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후 불면 날아가고, 손으로 꼭 잡으면 바로 으스러져버리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데 나를 지키지 못하고 많은 시간이 지나 병이 난 나를 보고 후회를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 

지금 나는 다시 서울로 이사를 했다. 좋은 직장도 구했다. 코로나 시대에 취직이 힘들다고 하는데 좋은 직장 한파에서도 따뜻할 수 있는 내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오로지 나를 위한 케이크와 반지와 꽃을 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리지어 꽃으로, 프리지어의 샛노란 색은 볼 때마다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꽃향기는 과하게 쿵쿵대던 심장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한 해, 아니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그동안 너를 아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네가 참 대견하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우선순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