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 Oct 23. 2022

더 이상 성장통은 아닌 것 같고...

만 34세 생일을 맞이하며

가만히 써놓은 글을 뒤적이다 보니 마지막 포스팅 이후로는 정확하게 1년 10개월이 지났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정신도 없었고, 많은 일들을 벌이기도 했고, 또 그만큼 몸과 마음과 머리와 패턴이 적응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면 내가 해야 할 대답은 서른다섯이다. 그리고 약국에서 약을 타면 아직 만 33세로 찍히는 약봉지 위 숫자가 반갑다. 이제 내일모레가 지나면 약봉지 위 고마웠던 숫자도 34로 바뀌겠지. 그래도 괜찮다. 

십 대, 이십 대 초반까지도 꿈꾸고 상상하던 내 모습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신고 다니는 발목이 부서질 것만 같은 힐을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으로 또각또각 신고 다니고 매일을 번쩍 거리는 핸드백과 함께 파워풀하게 시티를 누비는 그런 신여성 느낌이었던 것 같다. 현실은 하이힐은 고사하고 5센티 정도의 굽도 높아 정말 꼭 신어야 하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그 높은 곳 위로는 올라갈 생각도 없을뿐더러 내 어깨 위에는 항상 몇 그램도 안 되는 천가방뿐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 수록 화장을 더 못하게 되었으며 화장을 하는 것이 예전보다도 더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도 어린 내가 상상했던 서른다섯의 대화와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나나 가까운 대부분의 친구들이 유부녀라면 비슷했을 것 같기도 한데 기쁘고 다행스럽게도 아직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미혼이며 멋지고 유쾌한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각자 부모님의 재촉과 걱정이 아니라면 아직까지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고 즐거운 우리다. 그래서 대화 또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자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오춘기가 왔나 봐' '어른이 아직 아닌 것 같은데 어른이어야만 하는 성장통인가..' 하는 말들이 대화에 불쑥불쑥 끼곤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무심결에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제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정쩡한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이어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또래 친구들과 고민하는 내용들 대화하는 내용들도 그렇다. '아 이렇게는 회사 못 다니겠다. 어디로 옮겨볼까'가 아닌 '이제 옮기면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까?' 내 모든 행동에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이 몇 년 전과는 다르게 꽤나 무겁다는 것도. 

회사를 가도 이제는 신입 사원이 아니다. 어느 정도 경력도 쌓이고, 윗 분들과 팡팡 튀는 MZ 세대의 중간에서 소통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기도 하고, 어정쩡한 나이 포지션에서 눈치를 보기도 하며, 여느 때 보다 빠르게 급변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서 내 방향을 어디로 결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자리에 우리가 있다. 

부모님과의 소통에서도 '엄마가 나를 좀 이해하면 안 돼?' '아빠가 이렇게 해주면 안 돼?' 무작정 떼를 쓰고 같이 맞서던 애송이 시절은 안타깝게도 지나갔다. 이제는 부모님께 서운한 상황이 오더라도 기분이 잠깐 언짢다가도 이상하게 작아진 아빠의 어깨가, 언제부터인가 쪼글쪼글해진 엄마의 작은 손이 괜히 눈에 먼저 밟히는 것 같다. 결국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운함으로 가득하다가도 '엄마도 힘들겠지...' '아빠도 이렇게까지 견디고 키우느라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으로 눈물이나 두 눈에 그득하게 채운다. 

최근에는 만 35세가 되기 전까지 이렇게 하겠다. 깔끔하게 35세의 나이로 이렇게 정리해 보겠다. 하며 괜히 장난기를 좀 가미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떠들기도 하고 다잡기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약봉지에 숫자가 내일모레 34로 바뀌고 그리고 35로 바뀌기까지 일 년이 남았다. 길지 않은 시간인데... 괜히 혼자 또 조급해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30대 중반은 예전에 어린 내가 상상하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좀 다른 의미로 다른 느낌으로 하이힐의 화려함은 아니지만 납작한 컨버스의 편안함으로 내 색을 이제는 얼추 찾아낸 내가 대견하고 기특하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꽤나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도 걱정과 고민과 스트레스는 더 많아질 거다. 예전엔 부모님이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은사들이 조금 나눠가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면 이제는 성장통도 오춘기도 끝난 찐 어른이 되어 내 스타일로 인생을 앞으로 가져가야 하니까. 30대 초반만 해도 조금 더 어렸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니 아마 불안정에 대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안정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조금 더 어려져서 조금 더 예전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없다. 지금은 오히려 더 생각하는 일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힘도 생기고 예전보다 강인한 멘털도 생기고 노는 것도 오히려 더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에 ^^;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 만족하면서 앞으로의 35년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재미있게 채우고 싶다. 

생각이 더 유연하고 마음이 더 넓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서 큰 세상을 더 다양하고 즐겁게 누리면서! 


생일 축하한다. 

아직까지도 납작한 컨버스를 제일 사랑하는 만 34세가 되는 꼬마 아가씨 아니 어른 아가씨 :)

그리고 지금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