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7 _ 24시간이 모자라
24시간이 모자라 너와 함께 있으면 너와 눈을 맞추면
24시간이 모자라 내가 너를 만지고 네가 나를 만지면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가수 선미의 노래,
내가 나에게 주어진 내 하루 양반과 연애하는 사이는 아니라 눈을 맞추고 있는데 만지고 있는데 아쉽고 그런 아찔함은 없지만 24시간 중에 아주 큰 부분을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 채 몸이 묶여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어진 하루 양반이 함께 있어도 아쉬웠다. 최근엔 더 아쉽고 애틋하고 아껴주고 더 아껴서 어떻게든 함께 해 보려 해도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는 하루 양반이 야속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내 프로젝트가 시작된, 메인 동기 바로 '시간'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하루에 많은 것들을 해내는 것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다양한 곳에 가는 것도 좋아하던, 한 때는 극 E였던 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잠을 아껴가면서 까지 24시간 양반을 잘 다듬고 다듬어 생활해 왔던 나지만 1-2년 전, 정확하게 시도해 보고 싶은 꿈이 생긴 이후로 매일 찾아오는 하루 양반을 한없이 더 애틋해하게 되었다. 하루에 통근시간, 점심시간, 가끔 늦어지는 퇴근 시간까지 합쳐 거의 10시간 이상을 보내야 하는 회사에서의 생활이 시도해 보고 싶은 꿈과 극강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정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환율과 상황에 맞춰 매일 급하고 빡빡하게 돌아가는 무역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그중에서도 절대 갑의 위치에 설 수 없어 매일을 죄송합니다 또는 의미 없는 감사 합니다로 시작하는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우연히 편안함을 느껴 시작하게 된 요가, 그리고 나마스테로 키우게 된 꿈, 이 두 주체의 색깔과 성향 차이는 내 자아를 혼란스럽게 할 만큼 각각 아주 뚜렷하고 컸다.
조금 더 수련해 집중해야 하고 수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몸이 사무실에 존재하여 꼭 채워야만 하는 10시간 남짓의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연차의 투자로도 채우기가 어려웠다.
퇴근하고 부랴부랴 요가원에 가서 하루동안 완벽한 구부정 거북이가 된 내 몸을 겨우 조금 풀고 수련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하루종일 쌓였던 피로가 시원한 스트레칭에 조금 회복이 되기도 하고 밝지 않은 특유의 고요한 공간에서의 집중 시간에 스트레스가 조금 날아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빈 그릇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면 이제 필요한 것들로 그릇을 차곡차곡 채워가야 하는데 늘 먼지 정도 털어내고 나면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전쟁을 치르던 곳에서 쌓인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무시하고 밤새 수련이나 하고 있기엔 불쌍한 내 몸이 따라 주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먼지 털린 그릇이 깨져버릴 판이다.
요가뿐만 아니라 그 외에 생각만 해온 아이템들을 겨우 가능하면 오가는 지하철에서나 곱씹으면서 제자리걸음만 수천번, 그 어떤 허무맹랑한 상상도 시간이 없어 앞으로 진전할 수 있는 한걸음이 어렵다.
핑계일까 핑계가 아닐까, 어떻게 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아껴서 좀 더 자투리 시간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은 이미 꽤나 심각한 강박증 환자인 내 불안증에 미끼들만 가득 던져 주는 셈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24시간이라는 하루 양반 밖에 허용되지 않는 사실에 애꿎은 내 몸을 그만 원망하기로 했다. 쓸데없이 잔인한 내 원망으로 불쌍한 내 마음과 몸은 얼마나 힘들었는데 요가로 다스리기로 해놓고 언젠가부터 또 요가를 핑계로 더 잔인해지고 있지 않은가
약간의 용기가 더 필요할 뿐이다.
잠깐 멈춰질 내 통장잔고에 불안함이 이미 스멀스멀 엄습하지만 무턱대고 감정적으로 화와 억울함을 다스리지 못해 회사나 그만둬 버리는 그런 나이도 그런 나도 이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프로젝트의 동기는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시간이 모자라'이다.
내가 쌓아온 것들을 다양한 실패와 함께 맘껏 펼쳐 보기 위해 지금 회사에 존재하기 위해 쓰여지는 10시간 12시간은 더 이상 나의 미래에 투자할 기회비용이 아님이 명백해졌다.
프로젝트를 주어진 시간에 꼭 성공하여 나에게 꼭 필요한 매일 10시간+ 그리고 낭비되지 않을 소중한 나의 에너지를 확보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