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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Mar 24. 2024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 이소진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에 관한 연구

여성노동 연구를 하고 있는 작가가 1년간 자살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는 청년여성 19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왜 대한민국의 20-30대 여성들이 자살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짚어보는 책이다. 이 책은 한겨레의 유튜브 채널 'slap'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조용한 학살'로 명명된 대한민국 청년의 자살 증가 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 원인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하나는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성과지상주의 및 딸에게만 요구하는 돌봄의 의무, 둘째는 남성 위주의 노동시장에서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자리 잡기의 어려움, 셋째는 능력주의라는 환상에 의해 노동현장에서의 소외가 불공정이 아닌 자신의 부족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이어지는 자기혐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나온 나의 20대 시절을 생각했고 또 일과 함께한 나의 30대를 다시 돌이켜보게 되었다.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읽었고 그래서 마음이 조금 아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 힘든 시간을 헤쳐 나온 것 같은데 대한민국의 많은 20대 여성들이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물론 이 책의 약간의 한계라고 한다면 저자 본인이 밝혔듯이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 모두가 비중산층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자살생각에 계급적 경향이 존재함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꼭 그것을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이에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물론 나는 경제적 결핍이 여성이라는 사실보다 자살 생각에 이르게 한 더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지켜주는 것은 돈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한국사회와 같이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한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한국여성들의 자살 증가를 분석한 이 책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어렴풋해 보이는 원인들을 한국의 유교사상, 가부장적 가족구조, 남성 중심적 노동 시장, 능력주의 등 하나하나 분해하여 들여다본 것이 흥미로웠다. 또한 미국의 페미니즘이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에 초점을 두는 반면, 한국의 페미니즘이 파트너를 배제한 노동을 통한 자립에 초점을 둔다는 점, 이로 인해 한국 여성들이 노동영역에서만 자기의 존재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적어본다. 

'청년여성들의 서사 속 가족은 결국 자신의 성과가 담보되어야 안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중략... '아버지'는 내가 실패했을 때, 나를 위로하고 내게 힘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품행을 평가하며 성과를 비난하는 사람이다.' 

'더 이상 며느리에게 시부모 간병을 요구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딸이 그러한 의무의 수신자로 재위치 되는 것이다.' 

'경제적 안정을 기반으로 하는 주거독립은 여성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적 가족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 발돋움하는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불공정을 자신의 노력 부족으로 해석하는 해랑의 태도는 쉬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불안으로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격과 성과가 동일할 때 여성 노동자보다 남성 노동자를 훨씬 더 유능하고, 호감이 가고, 가치 있다고 평가한다. 남성과 백인이라는 지위는 이들이 여성이나 흑인과 같은 낮은 지위의 범주에 속하는 구성원보다 더 큰 능력과 노력을 보일 것이라 가정된다. 또한 '똑똑함'을 남성과 연관시키는 문화적 고정관념으로 인해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여성 노동자로 하여금 해당 노동시장을 기피하도록 만든다.' 

'청년여성들에게 '쉼'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 아니라 '뒤처짐의 시간'으로 의미화된다. 여성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해석되는 사회에서 이들은 구조적 불평등 또한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쉼 없이 달리고자 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어머니와 노동자 사이의 균형점 찾기를 성취의 주안점으로 두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의 페미니즘이 연애와 결혼의 거부를 동반한 능력주의적 지향을 제시한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여성들의 '성공'은 성평등한 파트너 관계나 훌륭한 어머니 되기와는 무관하게 오히려 이성애적 관계 및 남성에 대한 배제 속에서 의미화된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세대의 여성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점이자, 청년여성의 자살률 증가라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나타나게 된 원인으로 자리 잡는다. 현재 한국의 청년여성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규정하는 영역은 노동영역에 한정된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박지를 잃어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노동영역에서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혼을 통해 가정영역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확보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청년여성들은 노동위험이 생애 전반의 존재론적 불안으로 확장된다.'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가족 내에 잔존하는 성차별을 목도해 왔다.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은 그러한 성차별의 집합체다.' 

'가진 것 없는 나도 기댈 수 있는 게 나의 능력밖에 없다. '열심히'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 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자각할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 책에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20대, 30대의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자살생각을 하지 않고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지 고민해보고 싶다. 우선은 돌봄의 의무를 가정이 아닌 국가가 이행하여야 하겠다. 이제는 부모들이 자신의 노후를 며느리나 딸이 아닌 국가에 돌봄을 의뢰해야 한다. 이로서 여성들은 자신의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있다. 둘째로는 정치, 기업 영역에서의 여성임원할당제가 필요하다. 리더의 자리에 여성들이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듦으로써 남성위주의 노동시장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여성들에게도 커리어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셋째로는 젊은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이들은 위안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아쉽지만 이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나로서는 구체적 상상이 어렵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는 아직은 어설픈 나의 생각들이지만 이러한 고민들을 계속해나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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