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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Mar 27. 2024

불안과 오트라떼

요새 들어 다시 불안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저께는 아이가 열이 올라 회사 매니저에게 연락을 하고 병원에 갔다. 예약을 하지 않아 1-2시간 기다리라는 접수원의 말에 약간의 초조함을 느꼈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다행히 친정엄마와 같이 간지라 엄마가 아이와 놀아주고 나는 노트북을 펴고 급한 일들을 처리했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돌아왔고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각종 의학단어들로 설명을 하자, 나는 사전을 찾아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싱가포르는 병원비가 비싼 대신, 의사가 상당한 시간을 들여 환자를 봐준다. 의사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여기저기 아이의 목, 코 등을 살펴보더니 목에 있는 림프가 약간 부었지만 전반적으로 상태가 심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혹시 모르니 인플루엔자와 박테리아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와의 면담이 끝나고 조금 기다리자 간호사가 테스트를 위해 우리를 다른 진료실로 안내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면봉 같은 것을 콧속에 넣게 되는데 그 과정을 이전에 겪은 적이 있었기에 두려웠던 것 같다. 이윽고 테스트가 시작되었고 아이는 자지러질 듯이 울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와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았다. 30여 초 만에 테스트가 끝났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며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보챘다. 이윽고 간호사는 6-7개 약을 가져와 약의 용도와 언제 먹으면 되는지를 설명해 줬다.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결제를 하고 나오니 아이가 놀고 싶다고 했다.

“엄마랑 놀다 갈래. “

“엄마 회사 가야 해. 할머니랑 집에 가서 놀고 있어. 엄마 빨리 일끝내고 집에 갈게. “

“엄마랑 놀고 싶은데.”

“미안해, 빨리 끝내고 집에 갈게.”


나는 아이와 친정엄마가 집에 갈 수 있게 택시를 태워 보냈다. 아이는 내가 안 보일 때까지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나는 회사에 연락해서 이제 회사에 가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버스를 타고 회사 근처에 도착해 급하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불안이 시작되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 이것이 공황장애인가?... 나도 모르겠다. 나는 한 명인데 해야 할 일은 2인분인의 삶인 것 같다. 어쨌거나 불안했지만 그런 마음을 부여잡고 일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이와 함께 자는데 그 불안이 가시질 않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건가?...


그리고 그 다음날도 회사에 가서 일을 하는데, 여기저기 고객들에게 연락이 온다. 외국에 나와 일을 해보니 더욱 한국인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급하다. 쫓기듯이 일을 하고 결국 그들은 나를 다급하게 만든다. 메일을 보내며 “최대한 빨리”, “오늘 중에”, “오전 중에” 답을 달라고 한다. 당장 처리 안되면 큰일이 날 것처럼 요구한다. 그러면 나는 너무 초조해진다. 대개는 요청사항들이 내가 처리할 수 있다기보다는 유관부서에 문의하고 조율해야 하는 부분인데 내가 다니는 회사의 사람들은 그렇게 쫓기듯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두고 일을 처리한다. 중간에 낀 나는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그날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 고객은 나를 보챘다. 그 다음날인 오늘도 말이다. 그 고객과의 대화를 하며 또다시 불안을 느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다가 내가 추가 문의사항은 회사 지원메일로 연락 달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느끼게 되는 건 이제 내 개인 번호를 알려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객과의 대화가 일단락되었지만 아직도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안정을 주기 위해 회사 근처 카페에 왔다. 오트라테를 마시며 글을 쓴다. 조금 마음이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마음...


불안의 빈도나 정도가 정상 범위를 벗어난 것 같다. 일단 드는 생각은 일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 일이 물리적으로 너무 많은데 우선순위를 두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일들은 최대한 유관부서에 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고객들을 다 내 손을 거쳐 일을 하려고 하니 너무 버겁다. 둘째로 한국 고객들의 서두름에 의연해져야겠다. 근데 이게 정말 어렵다. 그들은 마치 내게 돈을 빌려준 것처럼 달려든다... 무섭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싱가포르에 살아서 일상에서는 쫓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버스를 타도 사람들은 기다려주고 엘리베이터에 조금 늦게 타도 아무렇지 않게 기다려준다. 느리게 살고 싶다.

셋째로 헬퍼를 고용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과 육아, 집안일을 병행하는 게 버겁다. 오늘도 아이의 견학 신청을 하고 이체를 하고 유니폼 사이즈를 확인하고 바깥활동 관련한 메시지를 유치원에 보내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헬퍼를 고용하게 되면 같이 살아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과 한집에 사는 게 두렵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과 엮이는 것을 두려워할까...


평온해지고 싶다. 느리게 살고 싶다.

언제쯤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은퇴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얼마가 모아져야 은퇴해도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느리게 살고 싶으면서 돈은 벌고 싶은 이 모순된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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