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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Nov 27. 2018

14. 인문학과 중국어, 그리고 교육.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사주팔자와 인문학

얼마 전 한국에 잠시 있는 동안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던 우리는 친척집 신세를 지고 있었다. 하루는 재미 삼아 친척과 사주팔자에 관하여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아내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느냐고 하길래, 잠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고 농담을 하며 웃었다. 그러자 아내는 바로 시큰둥해져 관심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카는 사주팔자와 인문학이 무슨 관계인가 하는 정말로 인문학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사실 사주팔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내가 이것이 인문학 강의라고 했던 것은 무슨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농담 삼아했던 말이었지만, 그게 그냥 우연히 툭 하고 튀어나온 말은 아니었다.

사주팔자에는 인간과 문화, 그리고 역사와 종교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철학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인문학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인문학을 사전적인 의미로 찾아보면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영역의 학문이라고 나와있다. 그런데, 4차 산업 혁명이 화두인 요즘 자연과학의 첨단이라고 하는 IT업종에서 그와 대립되는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4차 산업과 인문학

애플이라는 IT업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내면에 인문학적 소양이 깊었기 때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신화가 한창일 때, 한국의 학계를 비롯한 정치, 경제계에서는 우리는 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지, 왜, 애플과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없는지의 이유를 두고 갑론을박의 토론이 열렸지만, 토론의 끝은 항상 인문학과 보편적 교육의 중요성으로 귀결되었다.

만약, 인문학이 정말 IT업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면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야 할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문학은 필수의 학문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는 인문학이라는 화두가 각종 서적과 강좌로 이어져, 인문학 강의라든지, 인문학과 4차 산업이라는 주제의 책과 강연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아마도 세월이 흘러 이 시기를 회상하던 우리의 아이들은 그때 그랬지 하는 보편적인 시대적 흐름을 공유하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그런 보편적인 시대적 흐름에 편향하지 못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생활하는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자식을 둔 부모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이 인문학이라는 학문에 접근해야 하는 걸까?


인문학과 보편적 교육

인문학에 속하는 학문을 분류해보면, 자연과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문이 인문학에 속해 있다. 역사학, 종교학, 철학, 문학, 그리고 언어학이 모두 인문학에 속하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인문학을 알려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 서적 몇 권을 던져주거나, 인문학 강의 캠프 등에 참가시키기에는 그 범위와 내용이 너무 방대하기도 하려니와 각 학문의 세부적인 분류로 들어가면 배워야 할 학문이 더욱 복잡해져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문학에 속하는 학문의 종류를 가만히 보면, 대부분이 우리가 초중고를 거치며 모두 배우는 내용이거나,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 속에 속해 있는 것들이다.

역사학은 역사와 세계사를 통해 배우게 되고, 철학은 윤리 과목을 통해, 문학은 국어, 언어학은 영어와 다른 외국어를 통해 다양한 인문학의 세계를 접하고 있었다. 종교는 자신이 종교를 가지고 있건, 아니건, 부처님 오신 날이거나, 크리스마스를 통해 전혀 생소한 분야가 아니라 각종 정보를 얻어 내고 있다.

이런 보편적 교육을 받고 있는 한국의 아이들이 또다시 인문학이라는 강의를 듣고, 책을 보아야만 할까?

사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인문학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은 한국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치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이곳 외국에서 전혀 다른 교육과정을 거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교육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그런 인문학 붐에 비해, 우리 아이들은 특별히 인문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나 또한 의도적으로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주입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는 이곳에서 이미 확실한 인문학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언어학과 외국어

우선, 갑작스럽게 중국에서 살고있는 우리집 아이들은 중국어라는 외국어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어 과목 성적을 잘 받아 내신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도 아닌, 스펙을 높여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서도 아닌, 그저 생존하기 위해 중국어를 해야만 한다.

중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중국어라는 언어의 구조를 알아야 하고,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의 문화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 사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과 언어학이라는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조금은 다른 점이 있다. 언어학이라는 것은 언어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구성원의 문화가 어떻게 녹여있는지, 어떻게 하면 의사소통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단지 책상에 앉아 외국어를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작은 아들이 5학년 때에 배운, 친구들이 자주 하는 중국어 표현이 7학년이 되자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단어로 표현 되는 것을 보고, 연령별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듯이, 우리집 아이들은 몸으로 언어의 시간적, 문화적 변화를 체감하며 배우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중국어를 배우며 한 가지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는데,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쓰던 한국어가 중국어와 비교의 대상이 되면서 한국어가 가진 각각의 쓰임새에 대해, 그리고 한국어의 변화에 대해 더욱 깊은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상구(非常口)를 응급대피 출입문이라고만 알고 있던 아이가, 비상(非常)이라는 말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임을 알고 나자, 그리고, 중국어에서 비상(非常)이라는 것은 '아주, 매우'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나자, 한국과 중국에서의 비상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저녁 산책길에 이 비상(非常)이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작은 아들 누리와 나는 궁금증이 폭발했다.

한국은 왜 비상이라는 말을 비상사태, 비상구 등의 응급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고, 중국은 왜 비상호(非常好:아주 좋다), 비상대(非常大:아주 크다)등의 아주 또는 매우라는 의미로 사용될까?

물론 더 오래전 역사를 살펴보면 두 나라의 단어가 비슷하게 쓰여졌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각각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게 된것이다.

나는 쓰임새가 달라진 이 비상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얼마 전 누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하던 고구려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고구려라는 한 왕조가 시작되고 망하기까지 9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중국은 진시황제의 진나라를 시작으로 전한, 후한, 그리고 유비와 조조가 나오는 삼국시대를 거쳐, 5호 16국, 위진남북조시대, 수나라, 당나라까지 1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반복했다.(물론 이런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지만 긴 시간동안 연속해 왔슴은 사실이다.)

그만큼, 전쟁이 많아 불안정한 문화를 가진 중국에 비하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왕조에서 국민들이 생활을 하다 보니, 두 나라가 가지는 일상(日常)에서 상(常)의 의미가 다르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어 보았다.

안정적인 왕조의 연속성에서 볼때 한국에서는 전쟁과 같은 응급상황이 바로 비일상적(非日常), 즉 비상(非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이었다.

물론, 역사적, 문화적인 근거는 전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추론일 뿐이지만, 이렇게 한 가지의 단어로 양국의 역사와 문화를 생각해보는 것이 언어의 변화와 발전을 연구하는 언어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언어학이라는 학문은 단지 외국어를 하나 배운다는 것을 떠나, 그 외국어에 담긴 문화와 역사, 환경을 이해하고 습득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진행하게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언어학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외국어로서의 중국어가 아니라 언어학적인 측면의 중국어로 인문학의 한 부분인 언어학을 배우고 있었다.


(다음 회에서는, 인문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학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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