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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Nov 26. 2018

13. 카페라는 공간. 그리고 중국어.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카페라는 공간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찾아오는 공간이다.

관광지에 있는 카페에 비해 동네 카페에는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내면과 사생활에는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사람들이 카페로 모여 든다.




두 아들이 상하이로 온 뒤, 나는 무료해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카페에 가라고 하루에 25원(한국돈으로 4000원 정도 된다.)정도의 돈을 쥐어 주었다.

25원으로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느끼고 오라고 했다. 상하이에는 조금만 발품을 팔아보면 꽤 괜찮은 카페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이곳 브런치에 올라와 있는 여러 상하이에 관련된 글에는 상하이의 카페에 관한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신천지라는 곳의 샌드위치 전문점.
상하이에 있는 뚜레** 빵집 겸 카페..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카페는 커피나 차를 즐기는 곳이지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보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코피스족(coffee+office)이니, 카공족이니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카페의 의미는 단순히 음료만 마시는 곳으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하루 온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민폐를 끼치는 일에 대해 말이 많고, 그런 일이 많아지면서 카공족과 코피스족에 대해 출입을 금하는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커피를 마시러 와서 공부를 하건, 일을 하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능하면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혼자 온 다른 손님과 자리를 공유할 수 있게, 테이블 위의 공간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5시간 6시간 앉아 있는 것도, 카페를 운영하는 운영자 입장에서는 회전율이 좋지 않아 뜻하지 않은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을 명심한다면 카공족이던, 코피스족이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가난에 시달리던 작가 지망생에서 해리포터라는 소설 하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JK 롤링도 카페에서 글을 썼고,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의 명작을 남긴 헤밍웨이 역시 소문난 카페 죽돌이였다.

만약, 이들을 카공족이니 코피스족이니 해서 카페의 출입을 막았더라면, 우리는 호그와트라는 명문 사립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신비한 동물사전을 쓴 뉴트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노인이 바다에서 한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을 가거나, 수업을 듣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중국어 수준 평가 시험인 HSK를 준비하기 위해, 문제집을 보고, 단어를 외우는 것도 좋지만, 그 시험의 이름 그대로 본래의 목적인 중국어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책과 단어를 파고드는 것보다, 길거리에 무심히 서있는 길 안내판에 눈길을 한번 더 주고, 코 흘리게 아이들이 하는 중국어에 귀 기울여 보는 게 더 효과적 일수 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시절, 잉글리시 얼라이브라는 영어 교재가 히트를 친 적이 있었는데,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대화의 배경이 전부 실재 생활에서 일어나는 장소의 소음이 가득한 것이었다.

버스 속에서 일어나는 대화, 선술집에서 잔을 부딪히며 나누는 남녀 간의 이야기, 밤늦도록 이어지는 이웃집의 파티 소리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 까지 모든 것이 내가 그 상황에 있는 것을 가장하여 만든 아주 고가의 영어 회화 교재였다.

또렷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 주는 강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현장의 생생한 살아있는 언어는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어떻게 바뀔 수 있으며, 어떤 리듬으로 말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상하이라는 도시에 직접 와 있는 사람이, 그런 교재를 들으며 그런 상황을 연출한 대화에 집중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 카페에 가서 주문을 해보고, 선술집에서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가득한데도, 굳이 도서관이나 책상에 앉아 책과 씨름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몇 십만원에서 몇 백만원까지 하는 중국어 교재보다는 25원이라는 커피값 하나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카페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고, 다양한 친구와 인연들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러 사람을 찾아서 말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그런 환경에 가져다 놓기만 해도 그런 기회는 얼마든지 생길 수가 있다.


며칠 전 집안에 일이 생겨서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겼었다.

멜버른에 있는 큰 아들 벼리를 부르고, 나와 작은 아들 누리도 급히 준비하여 한국으로 모두 모이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들에 대해 이야기도 하게 되었는데, 역시 가장 큰 주제는 경제적 여건이었다.

아이들을 카페에 보내고,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앞으로 나올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이 아이들에게 좋기는 하지만, 그건 경제적 여건이 풍족할 때나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집안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틈틈이 그런 의견을 제시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한 달에 아이들의 교육비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되느냐고. 두 아이를 키우며 들어가는 각종 학원비와 수강료 등의 교육비를 과감히 포기할 수 만 있다면, 그 돈으로 얼마든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아이들에게 조금 더 큰 세상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의 아이들이 학원이나 다른 교육기관에서 더욱 많은 지식을 얻는 기회를 포기한 대신에, 다른 방법을 모색했을 뿐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틈틈이 아이들을 각종 학원에 보내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가 있다.

하지만, 여타 다른 부모들과 같이, 경제적 여건에 부딪혀 그것을 줄이거나 포기해야만 했다. 내가 만일 한국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고, 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면, 아마도 나의 팔랑귀는 다른 부모들의 이야기에 팔랑거리며 각종 학원의 안내 데스크를 기웃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지금 이곳에서는 나에게 그런 유혹을 주는 사람이 없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이 이상한 교육환경을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쓴다는 것은 학교와 학원이라는 교육기관에 아이들을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녀의 교육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여 아이들과 함께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두 손을 가지고 있고, 그 손에 하나씩 물건을 쥘 수 있다. 하지만, 손에 쥐어진 것 보다 더 좋은 것을 쥐기 위해서는 먼저 손을 풀고 손에 있던 것을 놓아야 한다. 놓을 수 없다면 원하는 더 좋은 것을 다시 쥘 수도 없으며, 그런 손은 이미 손의 기능을 잃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놓아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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