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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Nov 14. 2018

12. 중국어 책을 덮어 놓고.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12

사실, 나는 중국어를 배울 때에 초중고급의 구분을 나누어 배우는 편은 아니다.

물론 내가 중국어를 처음 배울 때 본의 아니게 초급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 채 바로 중급으로 들어간 이유도 있지만, 실제 생활하는 데에 중국인들이 초급 중급 고급에 맞게 말을 해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는 초급 중급 고급의 구분보다는 전문적인 언어와 일반적인 언어로 나누는 것이 어찌 보면 더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을 만나 이야기할 때를 떠 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데, 한국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을 배려하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방법은 이 사람이 초급 한국어를 쓰는지 아니면 중급 한국어를 쓰는지를 고려하고 말을 하는 것보다, 그저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가능하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그 단어를 풀어서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단어를 풀어서 말해준다 한들, 그것 역시 한국어 이기 때문에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치, 영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영영사전을 보다가 그 풀이에 해당하는 또 다른 단어를 찾아봐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정은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다 똑같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베이징에 도착한 후 중국어를 듣고, 단어를 외우고 HSK 시험을 치기까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동안 단어를 외우느라 도서관에만 있던 나는 이제는 과감히 책을 덮어 두기로 결정했다.

6개월간 배운 중국어를 내 입에서 뱉어 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호텔에서 환전을 하면서 그곳에 관련된 사람들과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301구 책에서 나오는 모든 대화와 말을 다 외웠고 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대화의 상황에 맞게 풀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그 정도로 술술 중국어가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급한 마음이 앞서 나는 그저 그동안 외웠던 단어만 줄줄 읽어 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소통은 가능했다. 그렇게, 길을 건너다 만난 교통순경에게도, 시장에서 한 두어 번 마주친 쌀가게 청년에게도 만나기만 하면 배운 것을 말로 해 보려고 했다. 물론,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사람이 친절하게 나의 무작정 들이밀어보는 태도에 관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항상 머리에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는 외국인이다.'라는 사실이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은 절대로 창피한 것이 아니었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만 하다가는 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중국어를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없었고, 외국인이라는 나의 신분이 언어를 못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 든든한 보호막이 되자, 나는 거침없이 사람들과 말을 하고 다녔다. 그들이 못 알아 들으면 못 알아듣는대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딱 그 수준이었다. 301구 속에 있는 말 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실력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면서 나의 중국어 학습법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것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북경을 찾아온 몇몇의 외국인을 알게 된 것이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느 날 나는, 노력해도 늘지 않는 중국어에 대한 불안감과 갑자기 물밀듯 찾아온 향수병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울적해져 있었다. 그 당시 살고 있던 지하 초대소(여관과 비슷한 곳.)는 눅눅한 습기 때문에, 방 안에서 누워 있다 보면 사람이 더 우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날은 건조한 북경의 날씨 답지 않게 방 전체에 축축한 기운이 넘쳐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방을 나와 지하 초대소 입구에 있는 작은 매점에서 1원을 주고 옌징 맥주(그 당시 베이징의 대표적 맥주가, 옌찡과 베이징 맥주였다.) 한 병을 샀다. 맥주를 사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면 병값 1원을 더 줘야 했는데, 매점 한쪽에 마련된 작은 소파에 앉아서 마시면 병을 바로 돌려줄 수 있어 병값을 따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술을 들고 아무도 없는 소파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두어 모금 마셨을까 데이브라고 하는 미국인(그때는 이름도 국적도 몰랐었다.)도 매점에서 맥주를 사고 어슬렁 거리며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데이브는 내가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망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이내 소리 없이 내 옆으로 조용히 앉은 후 홀짝 거리며 자신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마도 그 역시 눅눅한 방안이 싫었거나, 아니면 나처럼 고향 생각에 마음이 울적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가진 혼자 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듯이 그가 누려야 할 침묵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후릅거리며 맥주를 마시는 소리만 들리는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를 즈음, 복도 끝에서 부터 슬리퍼를 끌며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키가 훤칠한 동양인이 병맥주를 손에 든 채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소파에 두 명의 남자가 데면데면하게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멈칫거리며 주저하다 이내 빈 소파 자리를 찾아 소리 없이 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홀짝 거리며 자신의 맥주를 마시며 한 시간 정도를 앉아 있다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고, 매일 밤 그 자리에 앉아 소리 없이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침묵의 모임이 지속되자, 어느덧 그런 어색함이 익숙해졌고, 누구 하나라도 나오지 않는 날에는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슬슬 궁금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하나의 참가자가 생겼고, 암묵적으로 유지해 오던 침묵의 규칙이 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날도 우리는 조용히 각자의 술만 마시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에는 이 사람이 과연 중국어를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 오늘은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하는 표정이 가득해 보였다. 그때 얼큰하게 술이 취한 채 중국어를 떠들어 대며 두 명의 남자가 초대소로 들어왔다. 중국어의 발음을 봐서는 한 명은 외국인이 분명했고, 다른 한 명은 중국인이었다.

그들은 조용하게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마치 죽마고우를 만난 듯 술이 취한 채 인사를 했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침묵을 깨뜨리며 합석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자신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침묵으로 이어져 오던 묵언의 멤버들은 비로소 서로의 신분을 알게 되었다. 새롭게 참가한 외국인은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대사관 업무를 위해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었고, 함께 들어온 중국인은 인민 해방군 장교라고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때 군인이 하는 중국어를 처음 들어 보았고, 또렷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중국어에 슬슬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또는 테이프로 들었던 그런 중국어가 아니었다.

항상 자신의 술을 들고 슬리퍼를 끌며 침묵의 모임에 나왔던 키가 훤칠한 동양인은 홍콩에서 온 켄이라는 사람이었고, 국적은 영국이었다. 중국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러 왔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새벽이 될 때까지 맥주를 마시며 중국어로 대화를 하던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고, 그날 밤 이후로 침묵의 모임은 수다스러운 외국인의 밤이 되었다.

우리는 인민 해방군과 중국어로 이야기해본 참신한 경험으로 앞으로 자신의 중국 친구 한 명을 각자 매일 번갈아 가며 모임에 참석시키자고 했다. 조건은 단 하나, 무조건 중국어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시장에서 쌀을 파는 청년을 데리고 갔고, 다음 날 데이브는 자신의 중국어 과외 선생인 대학생을 데리고 왔었다. 홍콩에서 온 켄은 자신의 사업 파트너인 어느 기업의 오너를 데리고 왔다.

그렇게 매일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중국어를 들으며 모임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초대소 관리인으로부터 야간에는 소란을 떨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고, 데이브와 켄이 다른 곳으로 숙소를 옮기면서 우리의 모임이 사실상 해체가 되어버렸다.

한 달 정도 지속되었던, 의도치 않았던 야간 중국어 수업은 나의 중국어 실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익숙한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언어도 익숙한 언어만 하게 되어 언어의 표현이 풍부해질 수가 없었는데, 매일 밤 각기 다른 분야의 다른 생활습관을 가진 중국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딱딱한 중국어가 아닌 부드럽고 실용적인 중국어를 구사하는데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다.


중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 학교나 학원을 다니는 것은 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중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학교나 학원은 일방적인 학습의 방식이다. 즉, 상대방이 나에게 단일 방향으로 전달해주고 알려주는 학습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게 된다.

마치, 수학 학원에서 유명한 수학 강사에게 수업을 들어보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게 마치 자신이 그 문제들을 다 풀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지만, 거기서 조금만 응용이 되기만 하면 내가 손을 댈 수도 없는 수학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언어는 쌍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의도한 방법으로, 교재의 진도에 맞게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의도치 않은 주제와 만나고, 내 머리를 통해서, 내 입을 통해서 그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어를 교재 속의 활자로 적혀 있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언어로 배우는 데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큰 아들 벼리는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하루에 최소 2시간 이상은 집 주변의 카페에서 공부를 했다.

그날도 벼리는 카페 구석에서 검정고시 책을 펼쳐 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한 번은 그 카페에서 자주 보았던 한 노부인이 자기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고 했다.

자기가 쓰는 컴퓨터의 어떤 기능을 잘 모르겠는데, 젊은 사람이니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벼리는 어렵게 대화를 하며 노부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간단한 대화가 이어졌는데, 알고 보니, 그 노부인은 중국 경극의 어느 한 분야의 대가로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재급 인사였던 것이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면 무형문화재급으로 소개도 번듯하게 나와 있었다.

벼리는 그 노부인과 사진도 함께 찍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노부인도 벼리에게 이것저것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뒤로, 벼리는 카페의 직원들과도 친해져 뜻하지 않은 중국어 과외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듣기 공부만 하던 벼리에게 이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자신이 하는 중국어에 대해 활기를 넣어 주었다.

벼리와 나는 여행에 관련된 컬러 잡지를 구매해 작은 분량의 섹션을 골라 읽고 번역하는 것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몇 줄 안 되는 내용이었음에도 벼리가 그것을 해석하고 읽어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한 꼭지 분량의 작은 기사를 번역하여 읽는 데에만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새로운 단어를 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번역하고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는 단계까지만 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잡지를 통한 중국어 공부가 아니었다. 그저 잡지의 기사가 전달하려는 내용과 정보에만 치중했다. 모르는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 문장의 뜻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단어를 따로 외우게 된다면, 잡지는 또 다른 하나의 중국어 교재가 될 뿐이었다.

내가 벼리에게 잡지를 보게 한 것은 잡지를 통한 정보의 습득으로 중국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에 좋은 소재로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중국어를 잘한다 해도, 대화의 소재가 없다면, 매번 하는 이야기는 같은 주제에서 떠나지를 못하게 된다. 그냥, 안녕, 밥 먹었어? 오늘 날씨 좋네. 요즘 어때? 나는 좋아. 이런 이야기만 끊임없이 하기 때문에, 대화를 통한 중국어의 발전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어로 잘 못하더라도, 대화의 소재가 충분하고, 이야기가 재미있어진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몇 시간씩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실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잡지, 중국 드라마, 중국 음악을 듣고 보고 읽어야 한다고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항상 말을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중국 잡지나, 드라마를 보면서 단어장을 만들고, 문법 구조를 확인하고 하는 중국어 공부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중국 잡지를 보면서 가십거리를 찾으면 되고,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공부라고 생각하는 그 즉시, 언어는 죽어 버린다. 더 이상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라 죽어버린 활자화된 언어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배운 중국어는 당연히 생기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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