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그렇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술집을 간다. 그것도 매주 한 번은 정기적으로 함께 가는 편이다.
사실 내가 아이들과 가는 술집은 수제 맥주와 수제 햄버거를 파는 곳이다.
이제부터 나와 아이들이 술집에 다니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상하이에는 제법 많은 수의 수제 맥주집이 각양각색의 맥주를 준비해 두고 현지인과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10여 년 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을 무렵, 나는 걸어서 20여분을 더 가야 하는 카페를 다녔다. 이사를 오기 전 살던 곳이 안푸루( 安福路) 라는 프랑스조계지역 근처라 유럽에서 유명한 코스타 커피가 있었기에 거의 매일 찾아 다녔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 이사를 갔던 타이안루(泰安路)와 씽구어루(興國路)에는 지금과는 달리 적당한 커피 가게도 없는 주거지역에 불과했기 때문에 조금 멀기는 했지만 습관적으로 코스타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도 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2분 거리에 다가(DAGA)라고 하는 카페가 생겼고, 일리(illy) 커피콩을 사용하는데도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패달을 몇 번만 저어도 도착하는 곳이라 나는 그곳의 단골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동북 출신의 그곳 주인과도 친하게 어울리게 되었다.
사업적인 수완이 대단하고 야망이 큰 그와 나는 성향이 완전히 달랐지만 나이도 비슷하고 누리와 비슷한 나이의 딸도 있었기에 우리는 상당히 가깝게 지내었다.
그러던 그가 아무것도 없던 타이안루(泰安路)에 자신이 운영하는 커피점을 접고 같은 이름을 사용하여 다가(DAGA)라는 맥주집을 내게 되었고, 나는 당연히 카페에서 맥주집으로 자전거 핸들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에 지쳐 버린 나는 어느새 혼자서 마시는 술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집 바로 앞에 있고, 사장은 물론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과도 상당히 가까웠기 때문에 설령 내가 술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걱정이 없었다. 내가 자전거를 그 앞에 세워두고 다른 일을 보러 가는 날에는 직원들이 알아서 자전거를 봐주었고, 행여 밤이 늦도록 자전거를 가져가지 않으면 자전거를 가게 안으로 옮겨 넣어주기까지 했었다.
나는 거의 매일 밤 그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혼자서 말이다.
수제 맥주집에 흔히 걸려 있는 대형 스크린에는 유럽의 축구 경기가 항상 틀어져 있었지만, 간혹 경기가 없는 날에는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는데, 혼술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크린에 흘러 나오는 영화에 정신이 팔릴 때가 있었다. 물론 음성은 소거되어 화면만 나올 뿐이었지만, 한잔 두 잔 맥주의 파인트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집중을 하다 보면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았고, 어떨 때는 눈물을 흘리며 본 적도 있었다.
그러다, 나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살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이 혼술을 즐기는 것을 알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인식했다. 물론, 혼술의 기쁨이 어떤지 서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합석을 하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저 눈인사를 나누고, 가게 밖에서 담배를 피울 때 한 두 번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곳에는 혼술을 즐기는 사람만 오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5~6살 되는 딸과 함께 와서 아빠는 술을 마시며 정신없이 가게 안을 뛰어다니는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고,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인이 느긋하게 술을 즐기며 유모차 속의 작은 아기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기도 했다.
그들에게 술집은 은밀하고 퇴폐적인 곳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하루의 긴장을 푸는 곳이었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술과 술집에 대한 그들 나름의 정의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물론 가게의 직원들이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말리거나, 그것을 귀찮게 보는 손님들도 없었다. 간혹, 심할 정도로 정신없는 아이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지만,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리는 손님들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가족 단위의 모임도 간혹 보였는데, 그럴 때면 술집이 마치 유치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난장판이 되곤 했다. 게다가, 이곳에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많은 이유로, 개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크고 작은 개들이 구석구석 앉아 있는 펍은 아마도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부모들의 가치관이 모여있는 곳이었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주며 자신이 존중받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상하이로 오기 전, 내가 걱정이 되었던 것은 중국어를 못하는 아이들이 길을 잃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외출은 나와 함께 할 것이지만, 나름 일을 해야 했던 내가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었기에, 가까운 거리의 카페라든지 도서관은 아이들끼리 보내기도 해야 했다. 나는 그 해답을 맥주집에서 찾아내었다.
아이들이 상하이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은 화요일, 나는 바로 아이들과 함께 다가라는 맥주집으로 갔다. 다가의 사장에게 아이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켜주기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매주 화요일 다가에서는 수제버거 하나를 시키면 수제 맥주 한잔이 공짜인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혹시나 길을 잃으면 택시를 타건 걸어서 오든 이곳만 찾아서 오라고 했다. 이곳에만 오면 맥주집의 주인이나 직원들이 분명히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맥도널드나 롯데리아 같은 햄버거만 먹어본 아이들에게 수제 버거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좋아 하자 나는 매주 화요일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고, 그것은 암묵적인 가족의 모임이 되었다.
길을 잃었을 때 찾아가는 곳. 이른 아침 야외 테라스에서 오렌지 주스를 시켜놓고 중국어 숙제를 하는 곳, 매주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곳.
아이들은 술집이라는 장소의 정의를 그렇게 내렸다.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가능하면 심각한 주제는 피하려고 했다.
가치관을 가지고 있니, 꿈이 뭐니, 삶에 대한 너의 관점이 뭘까, 등의 주제는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었지만,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은 아빠와 이야기한다는 것에 피로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 술집에서의 모임이라는 기회를 이용했다. 수제 햄버거를 미끼로 사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맥주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햄버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있다 보면, 주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나, 혼술을 하며 알게 된 외국인들과 빈번하게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과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아니면, 나와 대화를 하는 동안 조용히 지켜보며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도 했다.
처음 큰 아들 벼리가 나와 함께 맥주집을 왔을 때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함께 술을 마시지는 못했다. 누리는 말할 것도 없이 주스 아니면 콜라였다.
큰아들 벼리가 18세가 되자, 나는 내가 즐겨 마시는 술을 소개해주고 다양하게 맛도 보게 했다. 어차피 대학을 다니며 친구들과 마실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미리 벼리에게 술에 대해 알려주고 준비를 하게 하고 싶었다. 사실 제일 중요한 이유를 뽑자면 나의 술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반기를 드는 적이 없이 항상 수긍을 하던 벼리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술집에서의 모임에서는 따박따박 자신의 논리를 들어가며 나에게 반기를 들곤 했다.
자신의 고집과 생각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반가웠다.
반론이 있다는 것은 어른에게 대들며 말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고, 나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아이가 가진 생각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었다.
물론, 어리둥절하게 앉아만 있어야 하는 누리에게는 그럴 때가 항상 고역의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다릴 줄 안다는 것도 중요하기에 나는 그 시간을 아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 번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가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기성세대보다는 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나의 짐작과는 달리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에 대해 페이스북이나 SNS의 가짜 뉴스를 접해온 아이들로서는 그 개념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힘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대화였다.
특히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생각해야 되는 이러한 상황은 막 가치관을 형성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정확한 판단을 하기에는 힘이 드는 주제였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음성을 높이기도 하고, 인상을 쓰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술과 음료가 담긴 잔을 부딪치고 테이블에 놓인 햄버거와 소시지를 먹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나의 아이들이 (특히 사내아이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가벼운 이야기를 술안주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줄도 알고, 대화가 끝난 후에는 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대립된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훈련을 매주, 수제 햄버거와 맥주를 마시면서 술집에서 하고 있었다. 때로는 비가 오는 야외에서 덜덜 떨며 빗물인지 술인지 모르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조용히 이야기하러 왔다가 축구 관람을 위해 단체로 몰려온 외국인들 틈에 섞여 누구 편인지도 모른 채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지금 호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는 큰 아들 벼리가 나의 바람대로 하고 있는지, 작은 아들 누리가 나중에 커서 나의 생각대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술을 즐기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런 문화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술집은, 나에게 있어서는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긴장을 풀 수 있는 장소였고,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심각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펍이라는 공간을 어른들만의 공간으로 규정하거나, 그들만의 환경으로 만들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가치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