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나 Dec 05. 2019

유난히 행복하게

과거에 한 말들이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누구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 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만큼은 '아무 의미 있는 일'을 글로 담아둡니다. 이렇게 해야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니까.



"집에 올래? 와서 밥 한 번 먹게."

부모님 안 본지가 한 한 달 즈음됐나 싶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보고 싶다는 표현의 하나라는 것을 알기에, 신랑에게 얘기하여 저녁만 먹고 오자고 하였다.


우선은, 엄마 가게로 먼저 향하였다.

엄마는 우리의 차가 오는 것을 보고는 가게 정리를 하다 말고 밖으로 나오신다.


"(두 팔 벌려 꼭 안아주며) 김서방!! 왔는가~?"
"(이어 나에게도 꼭 안아주며) 우리 딸~~ 왔어~?”


엄마는 최근에 핸드폰을 바꿨다며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조작법을 물어보셨다.

벨소리, 링투유 설정하는 법, 엄마 가게 물류 주문하는 홈페이지 북마크 설정법 등 알고 싶은 것을 차근차근 물어보셨다. 나는 엄마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주면서.. 순간, '내가 여기에 올 때까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 있었으면,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아빠는 김서방 온다고 오래간만에 머리 손질해야겠다며 미용실 가셔서 염색까지 하고 오신다고 했다.



엄마는 시어머님께 드리라며,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감을 또 챙겨주신다.

항상, 우리가 올 때마다 이렇게 챙겨주신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신 건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우리. 엄마는 김서방 좋아하는 향어회 먹으러 가자하셨다.


향어회 식당에 도착.

웬만해서는 가족끼리 식사할 때 엄마는 술을 잘 마시지 않으시는데, 오늘은 술이 드시고 싶다며 소주를 시키셨다.


우리는 서로 챙겨주며 소주도 따라주고 건배도 하고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 이야기, 야구 이야기, 동창회 이야기, 우리 동생 이야기 등등.

그렇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소주병이 4병이 비어있었다.

나와 신랑은 안 먹었으니, 아빠와 엄마 두 분이서 그렇게 드셨던 것이다.

얼굴이 살짝 빨개진 아빠는 화장실 다녀와야겠다며 자리를 일어나서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가셨다.




"김서방.  소주    따라주겠나.  장인어른 오기 전에 내가 마무리해야겠다."


아빠가 자리 비우자, 엄마는 바로 김서방에게 자신의 술잔을 채워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채워진 술잔을 홀짝 마시더니 또다시, 김서방을 부른다.


 "김서방, 나는 내 딸이 너무 감동적이었던 게... 대학 때 기숙사에 짐 내려주고 집으로 가려는데, 이 애가 갑자기 엄마 건강해야 한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뜬금없이 왜 그러냐고 하니까. 엄마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엄마가 건강해야 함께하지 않겠냐고. 그러는 거야. 그때 그 말이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 근데, 내가 많이 못해줬지.")
 "아니, 그래도 그런 말을 나는 해준다는 게 너무 고마웠어. 딸. 그런 표현을 못하는 딸들도 많다고 하더라."


"김서방, 나는 내 딸이 정말 '복덩이'라고 생각하는 게. 딸 고등학생 때, 어묵, 튀김도 팔고 햄버거도 파는 그런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얼추 일을 배우고 나니까 이제 내가 직접 장사를 해봐야겠더라고. 나는 이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를 하고 싶었는데,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지. 답답해서 애한테 엄마 무슨 장사해야 되겠냐 물어봤다네. 나는 이 애가 내 말을 그냥 한 귀로 흘러들은 줄 알았더니... 그다음 날에 나한테 '엄마, 00 토스트 들어봤어?'라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나는 처음 듣는다 했지. 아니, 이 애가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가 장사를 하려 하는데, 무슨 장사를 하면 좋을지 물어봤다는 거야. 그래서 그 당시, 딸 친구들이 '지금 00 토스트가 인기가 많다.'라고 말했다는 거야. 그래서 바로, 그때 인터넷으로 나랑 딸이랑 막 알아봤지. 각 지역에 몇 개의 지점이 있는지, 토스트 메뉴는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딱 그걸 본 순간, 이거다 싶어서 다음날 바로 본사에 내가 전화를 해서 (....) 딸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장사를 오래 할 수 있
었을까 싶어. 자기 친구한테 물어보고 같이 알아봐 주고.."


"김서방, 내 딸이 원래는 결혼 안 할 거라고 그랬다네. 그런데, 김서방이랑 연애를 한 1년 넘게 했나. 그즈음에 내가 결혼할 거냐고 물어보니까 한다 그러데?! 이 애가 김서방이라면 결혼할 거 같다고. 너무 배려심도 깊고 잘 챙겨준다고. 이런 남자는 없을 것 같다고 말이야. 그래. 지금 둘이 지내는 모습 보니까 결혼 잘한 것 같아. 내 새끼들."



그 당시, 내가 엄마한테 했던 이 이야기들은 엄마에게 큰 감동을 주기 위해, 어떠한 기쁨을 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 아니다. 그저, 그 순간순간마다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한 것뿐이었다.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엄마가 지금에 와서까지 기억하며 얘기를 꺼내시는 것 보니, 사람의 기억도 참 주관적이구나 싶었다. 엄마에겐 그 말들이 개인적으로 좋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말들이었던 것이니까.



'지금 그 순간, 누구를 생각하며 했던 말들과 행동은 그 사람의 마음을 두고두고 다독일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 한 말들이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일 수 있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자주 표현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고 행복하게 말을 이어가시는 엄마.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 가족이 된 '김서방'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신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엄마가 딸에 대해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사위에게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뭉클했다.

엄마가 하는 말 하나하나, 나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아서.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함께 마주 보며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헤어지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신나게 이야기했던 그 이야기들이 계속 맴돌아 눈물이 차올랐다가 들어가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 것 같다.


사소한 나의 말과 행동이 엄마에게 그렇게 큰 감동과 기쁨을 줬구나.

그런데, 나는 엄마한테 너무 많이 못해준 것 같은데.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아마, 여태까지 살면서 무수한 말들을 하였을 건데...
내가 내뱉은 무수한 말들 중에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말보다는 행복함을 선사해준 말이 많았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