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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Nov 03. 2023

서른번째 길. 미제 사건들

<주역> 미제괘未濟卦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은 양자가 이미 분리된 상태로, 물은 물대로 불은 불대로 따로 놀아 서로 교류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니, 지혜로운 자는 사물의 속성을 잘 살펴 무언가를 이루는 방향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일의 모임은 중요한 내용의 발생과 전개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갑작스러운 어떤 교통사고라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자. 자동차들은 부서지고 탑승자들도 피해를 입는다.

당사자, 보험사 직원, 카메라, 목격자, 경찰이 동원되어 사건을 재구성한다.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차를 고치고 다친 부위를 치료받는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면서 교통사고라는 일의 모임으로서의 성격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그런데 뺑소니 사고에서 일은 어떻게 진행될까? 교통사고 이후의 진행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과실비율은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일까?


일의 내용이라는 것은 일에서 자리 이외의 구분되는 요소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고를 자연재해가 아닌 '교통'사고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수록 자연에는 책임을 물어야할 내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과실비율에는 자동차가 왜 그렇게 움직이게 되었는가에 관한 구분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은 세세한 내용(사람이 의도하고 실행하는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와 같은 과학적으로 복잡한 내용)을 분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엄연히 발생한 일의 내용이다.   


 분자라는 내용들의 짝도 그 안에 어떤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고 모르고에 상관없이 작동한다.

전자나 쿼크 같은 소립자들, 그 안의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초끈이론이 사실이라고 해도 진동하는 초끈은 또 왜 그렇게 되었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내용들의 짝과 그 효과, 내용들의 상호작용 또한 또다른 내용이다. 두 개의 수소와 하나의 산소가 하나의 물 분자로 '짝을 이뤘다'는 것도 각각의 원자들과는 다른 새로운 내용으로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학과 생물학에는 물리학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뺑소니 사고에서 느껴지는 우리의 답답함은 단지 의식적인 재구성이 막히는 답답함만이 아니다. 그것은 뚜렷하게 발생한 교통사고와 과실이라는 내용이 그에 따라 다음 내용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다. 일의 실제적인 진행이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가로막혀 보인다.

 

분자들의 충돌 사건은 운동 방향의 변화를 바로 일으킨다. 자동차의 충돌은 분자들의 결합 형태를 변형시킨다.  물질들에서 발생하는 내용은 다음 일의 진행에 바로바로 쓰이기 때문에 답답함이 덜하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세세한 내용들이 변화하는 진행을 더 자세하게 이해하게 되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교통사고 처리에서 자동차의 손상에서 일어나는 소립자들 상태 변화를 일일이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일과 이야기의 차이는 이전 내용이 바로바로 쓰이는가(해결) 아니면 즉각적으로 쓰이지 못해서 남게 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영원한 미세사건은 없다. 단지 사건 해결의 지연이 있다.

그런 면에서 물질들은 주로 즉각적인 연쇄사건들이고, 생명체는 연쇄사건들과 지연된 사건들이 뒤섞인 사건들이다. 그리고 생명체 외부에도 관련자들을 따라다니며 해결을 시도하는 지연되고 얽혀 있는 사건들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미제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라기 보다는 해결과정을 확인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본능이나 습관의 형성과 작동을 확인하기 어렵듯이 지연된 사건들은 진행과정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구체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방향에 영향을 주며 쓰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 뺑소니 교통사고와 관련된 일들을 모두 알 수 있다면 '마침내, 그렇게 되었네' 싶을 때까지 뺑소니 교통사고라는 일의 모임은 계속 관련된 일을 시도할 것이다. 

 

뺑소니 사건을 보면서 가해자의 양심을 기대하는 것에 무력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내용의 존재와 작동 여부가 결정되지 않는다.  과실이라는 내용은 과실에 대한 책임이든 괴로움이든 그 어떤 내용으로든 간에 변형을 시도하고 결과를 맺어가며 해소된다.

양심은 순수한 도덕성의 드러남 아니라 일과 이야기의 내용이 일으키는 즉각적이고 민감한 하나의 진행 경로이다. 이 경로가 차단되었을 때 얽혀 있는 다른 경로들이 활성화된다.




생명은 불과 몇 가지 종류의 원자로 만들어진 거대 분자(탄수화물, 지질, 단백질, DNA 등) 사이에 일어나는 복잡한 화학 반응의 집합체다. 하지만 단백질을 아무리 들여다본들 그 단백질을 가진 생물이 어떤 행동 특성을 가졌는지 추측하기는 힘들다. 인슐린을 들여다본들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의 특성을 알 수는 없다. 생물은 수많은 분자의 집합체지만 개별 분자들을 안다고 생물을 이해할 수 없다. 단어 몇 개의 뜻을 안다고 수많은 단어가 모여 만들어진 책의 주제를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물은 개별 분자들의 특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 신원봉 옮김, <주역> 64번째 미제괘 해설 중에서, 올재, 2019. 

**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391쪽, 바다출판사, 2023.

***대문사진 :  영화 <헤어질 결심> 공식 예고편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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