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기담은 철학 Nov 19. 2023

서른한번째 길. 기어코 일어나는 일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에서 유령 같은 원격 작용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실재를 표현해야만 하오
- 아인슈타인 -


우리가 알고 있는 전자는 음의 전하를 가지고 있고, 이 밖에도 스핀이나 질량 같은 다른 내용들을 같이 가지고 있다. 각각 음의 전하를 가지고 있는 전자들은 서로 전기적인 힘에 의해 밀어내게 되는데, 만약 두 개의 전자가 같은 자리에 있게 되는 상황이 되면 스핀이 서로 반대되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스핀이 반대인 관계가 생긴 두 전자가 다시 떨어지게 되었을 때에도, 각각 스핀에 영향을 받는 일이 다시 생기기 전까지는 반대인 관계가 유지된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은 일의 진행이다. 문제는 양자역학에 의하면 스핀이 반대인 것은 결정되어 있지만, 각 전자의 스핀이 어떤 방향을 향하는지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동료인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은 양자역학에서 주장하듯이 확률적이고 비결정적인 상태가 즉각적으로 연관되어 결정된다면, 서로 까마득히 멀어진 두 소립자의 상태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서로 연관되어 결정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다고 논문으로 지적하였다.  

상식적인 면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말도 안되는 유령 같은 일이 훗날의 실험(실험은 빛의 편광을 활용하였다)에 의해 확인되었다. 위에서 예를 든 두 전자에서 스핀이 서로 반대인 관계는 서로 가까이 있을때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멀리 떨어지더라도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 이런 현상을 양자들의 얽힘이라고 한다.


이 두 전자에게 일어난 일들을 일과 내용의 발생과 진행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따라가 보자. 사실 아무리 단순해 보이는 일이라도 그 세세한 요소들을 모두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덜 헤매기 위해서는 먼저 시도와 결과의 리듬, 일들의 모임, 일의 내용을 구분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배운 일반적인 '전자'는 내용들의 단짝이다. 전자는 단순한 소립자이지만 여러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내용들이 짝을 이루는 효과'도 각각의 내용과는 다른 새롭게 발생한 내용이 된다. 그래서 이 특징적인 내용들이 뭉쳐서 다니기 때문에 '전자'라는 이름을 붙여서 배우게 되었다.


일반적인 전자 말고 어떤 구체적인 전자를 말한다면, 전자라는 내용의 짝을 기준으로 본 일의 순차적인 모임이다. 전자는 다른 소립자들과 만나며 여러 일들을 겪지만 내용의 짝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유지되는 전자를 일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전자를 유지하는 시도 이외에 다른 시도들을 같이 하고 있지만, 전자라는 내용의 결과는 되풀이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시도와 결과라는 일의 리듬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자라는 일의 모임을 전자라는 고유한 내용의 짝과 동일시하기 쉽다. 그래서 전자라는 유지되는 명사가 겪는 동사로서의 일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자는 어느 순간에도 명사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짝짓기를 시도한다.


일의 모임은 내용의 기준에 따라 다르게 묶인다. 위에서 예를 든 두 개의 전자는 '서로 반대의 스핀을 갖는 두 전자'라는 모임의 구성원이 된다. 이 모임은 두 전자가 같이 짝이 되는 일을 시도하면서 새롭게 발생한 내용에 따라 형성되었다. 이 내용이 다음 일을 시도하며 쓰일 때까지 모임은 계속된다.

두 전자는 같은 자리에서 스핀의 방향을 다양하게 시도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시도된다. 두 전자가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결과를 맺더라도, 같이 시도되던 스핀의 방향은 아직 결과를 맺지 않고 계속 연관되어 시도되는 상태에 있다. 그러다 스핀의 방향이 쓰이게 되는 순간이 오면 뚜렷한 결과를 나타낸다. 이 결과 이후에는 반대 스핀이라는 내용은 쓰여 없어지고 모임은 끝난다.  

 

두 전자의 스핀 얽힘은 유지되는 전자라는 긴 여정에 비하면 잠시 스치며 발생한 내용이다. 그것은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라는 영혼없는 약속처럼 잊힐 만도 한데, 아무도 모르게 남아서 기어코 결과를 남기고 있었다. 사실 전자라는 내용도 원래부터 있었던 내용들이 아니다. 전자는 일에서 발생한 내용들이 단짝을 이뤄 반복해서 남게 된 것이다. 원자들도 그렇고 사물들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반복되는 내용들 말고도 일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내용들이 만들어지고 다음 일에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일의 진행이 시공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은 일이 시공간이라는 배경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일들의 진행이 시공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주술적 힘"과 "유령 같은 상호작용"을 비웃었다... "나는 결코 신이 주사위를 던지거나 텔레파시적 장치를 사용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보른에게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에서 유령 같은 원격 작용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실재를 표현해야만 하오"라고 말했다.

EPR(공동 저자인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의 앞자를 따서) 논문은 양자이론의 코펜하겐 해석(보어, 보른, 하이젠베르크의 입장)과 객관적인 실재의 가능성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밝힌 것이었다. 보어는 "양자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양자역학의 설명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입자들은 독립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관찰되지 않을 때에는 물리량도 가지지 않는다.*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옮김, <양자 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 353~354쪽, 까치, 2014.

 (괄호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함)

작가의 이전글 서른번째 길. 미제 사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