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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Feb 05. 2024

서른일곱번째 길. 생명의 이야기

생명은 선택하는 물질이다
- 새뮤얼 버틀러 -



이야기는 일의 진행 과정과 평가로서의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일을 통해 A와 B가 만나서 A'와 B'가 되었을 때, 이 일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지 않다면 이 일은 다음 일에 지난 경험으로 쓰일 수 없다. 생명체는 필요한 정보들을 자체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하면서 생겨나고 살아왔다. 그러나 생명체가 물질에서 태어나려면 물질도 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질적인 일들에서도 이야기는 생성되어 작동하지만 너무나 규칙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에너지의 엄청난 활동성으로 봤을 때, 에너지가 소립자나 원자로 모여 있는 것을 그저 원인과 결과의 단편적인 연쇄로 볼 수 있을까? 일정한 에너지의 형식을 갖는 소립자들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이야기를 남긴다. 요동치는 에너지의 일들이 소립자와 원자 같은 반복되는 형식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지난 일들의 정보가 작용하는 것일 수 있다.


이야기는 일의 구체성에서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추상되면서 가상의 성격을 띄게 된다. 이렇게 분리된 이야기가 다시 구체적으로 쓰이려면 관련된 일과의 내용상의 공통점을 있어야 한다. 이 공통점이 이야기가 다시 구체화되어 쓰이는 조건이 된다.

일이라는 실상과 이야기라는 가상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 나눠지면서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함께 일한다. 이야기가 구체화되는 조건이 있기에 정신은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일을 안내하는 것이고, 물질들은 맹목적으로 일하지 않고 지난 일들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원시 지구 환경에서는 물에 떠다니는 다양한 분자들이 만나고 결합하면서 좀 더 특수한 일들과 이야기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특수한 물질들의 일과 이야기는 점차 일률적인 보편성에서 벗어나 자체적이고 특수한 순환 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특수한 환경 덕분에 생명체 탄생을 위한 기초가 마련될 수 있었다.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체는 특수한 이야기들이 그 특수한 사용 조건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 쓰이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점점 쌓여가는 상황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특수한 조건은 생명의 진화와 뚜렷한 개체성의 이유도 된다. 같은 종이라도 각각의 생명체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일을 겪으며 다른 이야기들을 수집하게 된다. 이렇게 지구는 생명을 물질들 사이에서 발생시키고 다양한 생명체와 개성 있는 개체들을 만들어 왔다.


생명체의 정신성은 이야기의 자체적인 결합이 유지되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 구체적인 일이든 가상의 이야기든 일의 결과는 다음 일의 전개를 시도한다. 이야기는 구체적인 일에 다시 쓰여 돌아가는 것을 시도하는 동시에, 다른 이야기들과의 결합을 시도할 수 있다. 이야기가 특수할수록 다른 일에 쓰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생명체의 많은 이야기들은 개체적인 결합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가상의 이야기들의 개체적인 결합, 이것이 바로 생명 정신의 기원이다. 하지만 생명체에서 물질과 정신의 분리와 결합은 일과 이야기가 분리되고 결합하는 성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일이 불확실한 시도와 뚜렷한 결과의 리듬으로 진행된다는 성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주에 물질적인 일들과 펼쳐진 이야기 사이의 상호 작용이 있다면, 생명체에는 물질과 정신의 상호 작용이 있게 된다. 펼쳐진 이야기의 보편적인 형성과 활동이 숨겨져 있듯이 생명의 정신 또한 몸에 숨겨져 있다. 이런 면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우주적인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주적 정신은 특별한 개체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정신이 아니라 보편적인 내용과 방식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정신이라기보다는 활동하는 보편 법칙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하다. 생명체에서는 보편 법칙으로서의 이야기에 개체의 선택적 반응이라는 이야기를 더한다.


이렇게 넓은 의미에서의 정신성은 단세포생물이나 식물에도 있고 심지어 물질에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고등 동물의 마음은 단순한 정신성보다 더 복잡한 활동을 하면서 물질로부터 멀어진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마음을 좁은 의미의 신성으로 볼 수 있겠는데, 생명체의 정신에서 동물의 마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의 문제는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생명은 선택하는 물질이라고 한 버틀러의 말에 우리는 동의한다. 새뮤얼 버틀러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에 반응하며 일생 동안 줄곧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물이 변화를 가져오는 효율은 높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포유류의 머릿속 전구에 불이 번쩍 들어와서 인간이 되고자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점진적으로 조금씩, 살아 있는 시스템은 음식물, 물, 에너지가 부득이하게 필요해서 교묘하고도 영속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신학자들이 설계라고 부르며 천상 세계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 버틀러에게는 지구에 뿌리를 둔 생각하는 물질이 가져온 결과였다. 이것을 작가에 비유해보자. 그는 무엇을 써야 할지 막연한 생각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법과 철자법 문장론에 따라 단어를 하나씩 보태다 보면 의미 있는 무엇인가가 나온다. 작가가 쓴 결과물은 완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언어의 규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생명은 물리나 화학, 열역학의 어떤 법칙도 무시하지 않는다. 작가의 선택이 어휘 세계 속에 있듯이 생명의 선택은 물질 세계 속에 있다.*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김영 옮김, <생명이란  무엇인가> 308쪽, 리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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