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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Feb 01. 2024

서른여섯번째 길. 말하는 이야기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 김소연 <마음사전>*-



나와 세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 같은 것이 있다. 어떤 때는 그 벽 뒤에 안전하게 숨어 있음에 안도하고, 어떤 때는 넘을 수 없는 벽에 갇힌 듯한 고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어떤 때는 물아일체나 우리라는 공동체가 된 느낌에 취하고, 어떤 때는 피하지 못하고 찔린 상처에 고톻받는다.

이 유리벽을 깰 수도 없고, 안 깰 수도 없는 것이 철학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통해 있으면서도 완전히 통해서는 안되는 그런 관계가 나와 세계, 나와 너, 정신과 물질, 마음과 몸 사이에 있다. 


우리는 그동안 나, 세계, 정신, 물질, 마음, 몸이 있고 그 사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이를 만드는 일들이 모여서 이런 구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다짜고짜 대책없이 유리벽을 깨버린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사이에 나라는 한 사람과, 연결된 타인들과, 피할 수 없는 세계가 생기는지 아직 해명하지 못했다.


이어지고 달라지는 일에서 이어짐은 서로를 관통하는 사이를 만들고, 달라짐은 그 일만의 정체성이라는 벽을 세운다. 이어짐과 달라짐의 리듬이 계속 교차함은 정체성의 벽이 단단히 고정된 벽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 물질과 정신 사이의 유리벽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차이가 뚜렷하게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가상의 유리벽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줄곧 제시해온 구체적인 일들과 가상의 이야기라는 구도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해명하기 위해서 더 상세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이 어려운 질문을 따라 나설 실마리로 이야기가 말 없는 이야기와 말하는 이야기로 나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려 한다. 물질적인 일에서도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하나의 세포에서도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들린다.   

 



어느날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를 본 일이 있다.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등짝만을 보아왔는데, 유리에 달라붙으니 전혀 볼 수 없었던 매미의 배를 보았다. 징그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마음을 존중하는 종자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매미와 나 사이에서 유리는, 매미를 나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나를 매미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굳게 닫힌 유리창이 없었더라면 커다란 곤충을 가까이하기 두려운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의 배를 한참동안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미 또한 나에게 배를 보여주며 그렇게 집념에 차서 울고 있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허무는 것, 그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유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단순하게 안과 밖 혹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것들로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유리는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김소연, <마음사전> 21~22쪽, 마음산책,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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