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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May 09. 2024

쉰번째 길. 소동에서 진동으로

음악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능력이 있다.
- 예후디 메뉴인 -*


그 옛날 땅이 공처럼 둥글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공처럼 둥글다면 땅은 어디에 기대어 있는 거지?", "땅이 허공에 떠 있다고?"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이야기의 토대는 그리 탄탄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이야기의 토대는 원래 빈약한 것이었다. 이야기는 확대해석 되기도 쉽고, 전해 들어도 내것이 될 수 있다. 

확고한 기반을 찾아나선다면 어디까지 가야 할까? 생명은 언제든 죽어 없어질 수 있고, 땅을 이루는 물질은 거의 비어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일종의 파동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땅을 딛고 다니며 살아간다는 것이 놀랍다.


확률적인 파동으로 된 물질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우리 방식 대로 다시 묻는다면, 물질은 어떤 일들로 이루어지고 어떤 일을 하는가? 일은 먼저 있었던 다른 일에 영향을 받아서 일어나고 앞으로 일어날 다른 일들에 영향을 주며 쓰이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고처럼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은 일의 특징을 유지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소동을 일으키며 사라지기 쉽다. 그런 면에서 물질은 기초적인 일이 아니라 특이한 일이다. 물질은 많은 경우에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특징을 유지하면서 일한다. 


어떤 물질 안에서는 여러 내용들이 같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A, B, C라는 내용으로 다음 일이 시도되는데 A와 B는 같이 AB라는 결과가 될 수 있는데 AC나 BC라는 결과는 나올 수 없다면, AB는 더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같이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의 시도는 지난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기 때문에 A, B, C라는 각각의 내용은 일의 진행 속에서 다른 내용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A와 B는 AB라는 짝으로 같이 일하면서 A, B라는 내용의 특징을 유지하는 동시에 AB라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 추가된 AB가 다음 일에 쓰이기를 시도하기 때문에 A와 B는 AB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AB는 그 특징을 유지하며 같이 다닐 수 있지만 그대로 유지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AB도 지난 결과를 바탕으로 다른 일들과 만나면서 다음 일을 시도한다.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하기 때문에 A는 A대로, B는 B대로, AB는 AB대로, 자리와 내용에서 번져나가면서 다른 일들과 만난다.

이런 시도의 번짐은 오래 가기 어려운데, 새로운 만남의 대부분은 같이 결과를 내기 어려운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D와의 만남에서 같이 시도하는 영향은 주고 받았지만 같이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면 다시 AB로 돌아오고 D는 따로 일을 시도할 것이다. 


결국 AB는 수많은 일의 시도에서 AB라는 결과로 되돌아오는(진동하는) 물질이라는 일의 모임이 되고, 주위와 상호작용한 소동의 파편들이 번져나가면서 물리적인 장(field)을 형성한다. 확률파동으로서의 물질은 불확실하게 번져나가는 시도이고, 입자로서의 물질은 A, B, AB로 돌아오는 결과다.

A와 B는 서로 어울려서 AB라는 새로운 내용을 확고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다양함과 확고함이라는 일의 가치를 함께 실현하고 있다. 그 일의 결과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태롭지만, 다음 일을 위한 반복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베이스캠프가 된다. 

     



끈이론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이유는 음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우주는 미시적 규모나 거시적 규모에서 음악과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음악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능력이 있다. 리듬은 다양한 대상에 일치감을 부여하며, 멜로디는 불연속적인 대상에 연속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화성은 판이하게 다른 것들 속에서 화합을 이끌어낸다."*



* 미치오 카쿠, 박병철 옮김, <평행우주> 316쪽, 김영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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