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재 Aug 03. 2021

'더 좋은 협력'을 고민하는 기술과 디자인 엿보기

<제품의 언어>, 존 마에다

과거에는 문제의 답을 정확히 알고, '해결했습니다'라고 말하곤 사라지는 사람을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한 제품을 갖기보다는 제품을 완벽히 이해하기를 바란다. 단거리보다는 마라톤을 뛰는 사람처럼 기꺼이 조정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결국에는 실제로 시간을 초월한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184)



현재내가 일하고 있는  안에서는 사용자의 퍼소나를 유지/보수하고, 정기적으로 사용자의 보이스를 수집하며 수집된 정보를 지표 별로 쪼개보면서 개선이 필요한 지점을 찾아내는 작업 하고 있다회사가 당면한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보이스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확인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사용자 조사'라는 것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일반적인 브랜드 인지/선호도를 조사하는 마케팅 조사를 넘어 '고객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이해하여 그들에게 극도의 편의를 제공하도록 (디지털) 제품을 강화하는 정보 수집( 마에다  표현)' 관점에서 여러 개념을 더 알아가려 하고 있다.


관련 책이나 자료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디자인 영역에 존재하는 UX 개념은 컴퓨터가 디지털 상호 작용의 주요 형태였던 시대에 고안됨에 따라 디지털 프로덕트 상호작용에 제한하여 쓰이는 경우가 많은  같다물론 더 넓은 의미에서 'Customer Experience'를 고민하는 팀들도 있고, 동시에 같은 'CX'라는 개념을 기존의 CS의 진화된 버전처럼 쓰기도 하는 등 용례가 굉장히 다양한 것 같기는 한데. 그러나 어떤 식으로 활용이 되든, 사용자 경험을 이름에 달고 있는 팀의 미션은 사용자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서비스가 사용자의 만족과 편의에 100% 헌신할  있도록 개선하고 혁신시키는 이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용자와 회사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체적인 상호작용을 살펴보고, 평생 관계의 관점에서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은 비단 디지털 프로덕트에서의 상호작용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넓은 대상에 적용 가능하고,  사용자 중심 사고를 위해  스스로 부단히 훈련해야 하는, 반드시 필요한 관점이니까. 생각과 흥미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혼자서 기존 디자인 영역의 UX 개념과 CX(Customer Experience) 개념을 기웃거리며 공부하고는 있지만, 내가 속한 팀은 유형의 디지털 프로덕트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보니, 존재하는 다양한 방법론이나 레퍼런스를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디지털 프로덕트 안에서의 경험 설계를 위해 어떠한 식의 조사-도출-적용-개선 등이 이루어지는지를 엿보면 엿볼 수록, 오프라인 경험 혹은 무형의 서비스 내에서도 얼마든지 해당 개념을 접목시켜 우리 팀만의 '경험 개선 프로세스'를 만들고, 애자일하게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은 생겼다.


그런 점에서 기대를 갖고 읽은  마에다 <제품의 언어 - 디지털 세상을 위한 디자인의 법칙> 디지털 세계 자체를 굉장히 당연하게만 받아들였던 세대로서 컴퓨터 세계에서의 성장이나 디지털 제품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근본적인 변화의 지점에 대해 낯설게 보는 경험을   있게 해준 책이었다. 소화를 하려면 몇 번 더 발췌독을 해봐야 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읽으며 직관적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몇 개 옮겨적어본다.


클라우드 모델은 모든 원자재가 무형이고 가상적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사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복잡할 뿐이다. 배워서 알면 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서로에게 더 좋은 협력자가 되어주기 위해, 모든 종류의 기계를 제공하는 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증을 지녀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내가 남은 삶동안 팀워크를 키우고 동료들과 협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 먹게 했다. 우리 컴퓨터 형제님들이 우리를 기하급수적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p.112)
예술은 뭔가 난해하고 소외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컴퓨팅 세계와 완벽하게 화합되는 예술의 한 특성을 찾아냈다. 예술은 그저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숨겨진 모든 것을 발견해내면서 세상 모든 것의 핵심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어도 즉시 알 수는 없는 중요한 사실을 예술가들은 안다. (중략) 우리는 예술가들이 그저 자유롭게 상상한 세상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생각의 평면 첫 장에 전경과 배경을 동시에 그리는 예술가의 능력은 내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기술이다. (p.135~137)
인생은 우리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정의된다. (p.144)
그날 저녁 에나미 씨는 내게 컨퍼런스 뒤풀이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했다. 나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 내 컴퓨터로 작성하던 코드나 마저 작성하고 싶다고, 뒤풀이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마에다 씨,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소프트웨어나 디자인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답니다." (p.147)


여러 구절 중에서도 특히 아래 '말하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협업 속에서 창출될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나는 스스로 '작은 두개골만한 왕국'에서 벗어나,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만드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과 협업하면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말하는 사람들은 그냥 서로 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고객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에 의한 연결 작업은 만들기 작업 자체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며, 만드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대단한 청중이 따라올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p.148)


현장에서 (위 표현에 따르면) '말하는 사람'은 '만드는 사람'에 나름의 선망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고, '만드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을 당혹감과 불편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위 대목은, 만드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잘 협업했을 때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시너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상기시켜준다.


만드는 사람보다는 말하는 사람에 조금 더 가까운 나로서는, 심도 깊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이런 시간들을 통해, 그들과 더 잘 협력하고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을 내 안에 많이 길러놓고 싶다. (사족이지만, 스타트업 씬에서 '메이커'라는 말들을 많이 쓰는데, 잠재 고객을 이끌어 오고 그들의 목소리로부터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이들을 부르는 멋진 말도 하나 생기면 좋겠다.)


더불어, 호기심과 배움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나에게) 무척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고 있는 요즘, '우리 자신이 서로에게 더 좋은 협력자가 되어주기 위해, 모든 종류의 기계를 제공하는 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일종의 책임처럼 언급했던 존 마에다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개발자와 더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선 코딩을 배우지 말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갖추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 역시 디자인을 배우고 디자인 스킬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디자인적 사고와 언어를 갖추는 훈련을 해나가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해야겠다. 많이 배우고 깨져야지.

작가의 이전글 다가올 날을 헤아릴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