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래볼까요
우리는 브랜딩 강의 시간에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죠,
“브랜딩이란 다 버리고 본질만을 남기는거에요."
브랜딩을 하는 사람에게 본질에 대한 추구는 필수 자격 요건이 맞습니다.
모든 곁가지를 쳐내고 가장 핵심만 남기는 것. 브랜드를 사람처럼 생각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일관되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
브랜드 컨설턴트인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삐뚠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퇴근 길에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하다 말이죠.
8월 말 저녁의 습한 기운을 가득 안은 퇴근 길이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아니면 브랜딩은 본질에 집중하라는 말이 나에게 ’한도초과‘ 된 것일까요?
기왕 삐뚠 마음이 든 김에 거꾸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본질은 버리고 나머지는 다 남기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속으로 하는 순간, 미소가 조금 지어졌어요.
“재미있네”
진지하게 본질을 버리고 나머지는 다 남기는 삶을 상상해봤어요.
깨끗하게 상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꽤나 다채로운 색깔들이 물든 삶이 상상되었어요.
물론 그 색깔들이 어떤 조화를 이루는 모양은 아니었어요. 중구난방의 색깔들이었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보다는 ‘남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곧 브랜드가 되야지’ 보다는 ‘남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들로 나를 채워야지'.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가끔 필요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본질만 남기려다가 본질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본질만 남기는 이유는 ‘나‘라는 브랜드를 가볍게 하기 위함인데, 때로는 본질만 남겼음에도, 또는 남기려 했음에도 그 본질의 무게에 삶의 그물이 찢어지려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만 주야창천 생각하는 철학자들의 삶의 무게가 더 무거운 걸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본질만 버리고 다 가진 사람들이 깃털처럼 가벼울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삶의 무게를 다양한 타인과 브랜드에 분산시켜, 그 영혼은 오히려 가장 가벼운 상태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맥락에서, 나의 경우에도 가끔은 본질을 버리고 다 남겨볼 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로의 시선을 거두고, 타인과 사물과 세상의 브랜드에 시선을 충실하게 두어보는 일.
그것이 결국 거짓 없이 거울 속의 나로 드러나게 하는 일일 수 있겠다 -
본질만 남기는게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본질만 버리는게 가장 인간다운 것일 수 있다는걸요.
정답에서 오는 해답이 아닌, 오답에서 이르는 해답.
그것이 오히려 본질로 이르는 더 빠른 길일 수 도 있겠다는걸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만큼은
본질을 버려볼까요.
P.S. 저와 느낀표 컨설턴트는 매주 월요일 ‘브랜드 컨설턴트의 생각’ 매거진을 연재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