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마크 로고가 아쉬운 이유
스위스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인 파텍 필립의 상징은 ‘칼라트라바 십자가’입니다. 12세기 스페인 기사단의 명칭으로, 용기와 예의를 상징한다고 하죠. 한편 프랑스의 하이엔드 럭셔리인 에르메스의 상징은 ‘뒤끄’라 불리는 사륜 마차입니다. 말 앞에 서 있는 마부는 고객을 기다리는 에르메스를 형상화하였습니다.
한편 2010년대 이후, 수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기존의 로고를 걷어내고 산셰리프(Sans-serif) 워드마크 기반의 디자인으로 리브랜딩을 단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생로랑, 페라가모, 발망 등이 있죠. 굵고 직선적이고, 단순하며 기능적입니다.
특히 버버리의 경우에는 상징을 버렸죠. ’전진‘을 의미하는 라틴어 'Prosum'이 적힌 깃발을 들고 힘차게 나아가는 움직임을 나타내는데요, 2018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에 의해 버버리 로고에서 기마상은 사라졌습니다. (후술하겠지만 버버리는 최근 한번 더 로고를 변경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이유로 업계에서는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 된 디자인’을 꼽지만, 단순히 UI 차원의 이유는 아닙니다.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숨어있죠. 바로 럭셔리에 대한 시대적 개념 변화 입니다.
전통적으로 럭셔리는 폐쇄성을 띱니다. 한정판, 초대장 기반 구매, 회원 전용 서비스 등 소수만의 접근 가능성이 곧 브랜드의 가치였죠. 그러나 이 시대의 럭셔리 브랜드는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를 시도합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브랜드와 급진적인 콜라보레이션, 스니커즈와 같은 캐주얼 상품군으로의 적극 확대, 팝업스토어 및 디지털 채널로의 침투 등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죠.
특히 구찌와 루이비통은 가장 눈에 띄는 사례를 만들어냈습니다. 구찌는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시대(2015~2022) 동안 젠더, 나이, 인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캠페인과 젠더리스 컬렉션을 선보이며, 포용적 감수성을 럭셔리 코드로 끌어올렸죠.
한편 루이비통은 2023년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를 영입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포용성을 강화했습니다. 세계적 뮤지션이자 흑인 아티스트인 퍼렐을 기용한 것은 럭셔리의 전통적 엘리트성을 넘어, 문화적 다양성과 스트리트 감성을 루이비통 남성 라인의 중심에 세운 전략적 선언이었습니다.
퍼렐 윌리엄스의 두 번째 루이비통 쇼, 파리 퐁네프 다리 위에서 있었죠. 이 쇼를 인상깊게 본 저로서는(물론 유튜브로 말이죠) 이러한 포용성으로의 변화가 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브랜드 로고 측면에서는 부정적 압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럭셔리의 본질, 배타성에 있죠.
배타성은 언뜻 나쁜 개념 같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배타성은 해당 커뮤니티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식이 되어줍니다. 그 커뮤니티 안에서만 통하는 언어가 있죠. 그리고 그 언어 사용자 사이에 발생하는 유대와 정서가 있습니다. 원의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신비로움에 대한 인식은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고유한 특질입니다.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은 대상을 인식할 때 그 대상 너머의 상징을 읽을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이처럼 배타성은 신비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포용성은 어떨까요? 포용은 항상 긍정적인 개념일까요?
포용성은 흔히 긍정적인 가치로만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긴장된 상태를 요구합니다. 포용적이 되기 위해서는 ‘숨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열어 두어야 합니다. 닫힘의 권리, 움츠림의 자유조차 내려놓아야 합니다. 포용은 커튼 뒤에 숨은 채 두근거리는 아이처럼 머뭇거릴 수 있는 여지를 허락하지 않죠. 거기에는 언제든 몸을 숨길 수 있는 ‘닫힘’ 버튼이 없습니다. 선을 긋거나 울타리를 세워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림 없이, 적나라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게 포용은 경계를 녹이고, 선을 지우고, 원의 형태마저 허물어 버립니다. 모든 경계는 흐릿해지고, 모든 만남은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냅니다. 신비로움은 사라집니다.
이러한 럭셔리의 포용성 가속화는 ‘벌거벗은 럭셔리(Naked Luxury)’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럭셔리 브랜드 로고가 산셰리프의 워드마크로 변하고 있는 것이죠. 워드마크는 바로 읽히기에 신비롭지 않습니다. 이제 로고는 벌거벗었습니다. 프라다는 프라다이고 발렌시아가는 발렌시아가입니다. 워드마크의 범람은 현대인이 비일상으로 통하는 상징의 문을 닫고 있는 장면입니다.
또한 디지털 경험 확대는 ‘Naked Luxury’를 더 가속화합니다. 단순히 산셰리프 로고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럭셔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은 검색 > 클릭 > 경험의 디지털 루트가 중심입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자사홈, 리셀 플랫폼 곳곳에서 럭셔리를 우리를 환대합니다. 두 팔 벌려 '보여짐', '열림' 상태입니다. 럭셔리 브랜드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를 넘어섰습니다.(Bain&Company, 2022) 디지털 환경은 럭셔리의 신비로움을 제거하고 벌거벗게하는데 일조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서, 럭셔리에 다시 옷을 입히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면, 버버리와 같이 다시 상징을 부활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심리학자 알랜 파비오(Allan Paivio)의 이중 부호화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정보를 언어(텍스트)와 시각적(이미지/상징)으로 동시에 처리할 때 더 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즉, 단어보다 이미지가 기억에 더 오래 남고, 단어+상징이 결합되었을 때 기억 유지율이 높아집니다. 특히 최근 산셰리프 계열 워드마크는 브랜드 간 시각적 유사성이 높아지게 하는데요, 이로 인해 소비자는 ‘다 똑같이 느껴지는 브랜드들’ 사이에서 방황할 수 있죠. 이 가운데서 상징은 브랜드의 고유한 감정 언어로 작동하며, 소비자가 브랜드를 느끼는 정체성 구축과 기억에 결정적 기여를 합니다.
브랜드의 상징은 브랜드의 역사, 철학, 창립자 정신, 핵심 가치를 시각화한 결과물입니다. 이를 포기하는 순간 브랜드는 매번 설명해야 하는 피로감을 가집니다. 반면 상징은 비언어적 스토리텔링의 매개체가 되어,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를 의례와 정체성의 경험으로 고양시킵니다. 즉 신비로움이 묻어나는 경험으로 변모하죠. 반클리프의 클로버처럼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감정과 문화를 품은 기호들이 브랜드의 영혼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소울마크(Soulmark)'이죠.
브랜드가 ‘존재’로 기억되려면,
읽히는 이름만으론 부족합니다.
소비자에게 그 브랜드가 단지 이름이 아니라
‘느낌’, ‘의미’, ‘감정’의 서사로 남게 하는 것,
그것이 상징의 역할입니다.
상징은 브랜드에 혼을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징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