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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든 Oct 29. 2019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괜찮아요.

프로 퇴사러가 되어 느낀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일상을 동경했습니다. 취업이 딱히 어렵지 않은 전문직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고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방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매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인생을 전부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일, 종일 해도 질리지 않고 가슴이 벅찬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들의 간절한 열정을 볼 때마다 나도 진정 원하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것저것 해보아도 내가 원하는 멋진 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딱히 한쪽의 재능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덕질하는 분야도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나는 관심 있는 분야에 금방 빠지지만, 또 금방 질려버리는 유형이었습니다. 취미를 계속 바꿀 수는 있지만, 취미를 직업으로 삼기엔 맞지 않는 성격이었죠. 현실적으로 계속 직업을 바꿀 수는 없거니와 그렇게 한 취미에 오래 빠져있는 성격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먹고살려면 돈은 벌어야 하겠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은 벌고 싶고, 그러려면 한 분야에 베테랑이 되어야 하는데 성격상 힘들고, 참 길고 긴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나마 꾸준히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사업도 벌여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았지만 금방 그 분야에 실망만 하고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결국,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이가 더 든 채로 처음에 몸담았던 전문직으로 돌아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또래보다 경력이 없어 적은 월급을 받고 후배들 밑에서 배우며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재미가 없어져 역시 원하는 일을 찾아야겠다며 그만두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20대 때부터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또래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되려 더 높은 자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내가 보낸 세월이 너무도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딱히 재산이나 직함으로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절대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늙기 전에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나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니까요.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는 나의 내면,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떨 때 슬프고 화가 나는지, 행복하고 기쁜지, 그리고 수많은 감정의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직업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으며 좋아하는 일을 직업에 국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보다 외근이 많은 일이 좋다.

나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것이 좋다.

나는 집에서 일하고 싶다.

나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싫어한다.

전화를 많이 받는 일은 안 하고 싶다.

나는 작은 규모의 회사가 좋지만 사무실 및 화장실 청소는 하기 싫다.

나에겐 연봉보다 칼퇴가 더 중요하다.



근무환경에 대한 사소한 호불호가 나에겐 직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직업도 이런 사소한 취향이 맞지 않으면 금세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이 직업 그 자체보다 직업 환경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전공한 분야에서도 내가 싫어하는 근무 환경을 배제한 일자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 열정을 쏟는 운명과도 같은 직업은 찾기에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장래 희망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게다가 나조차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성급하게 설정하는 기분이 든 달까요. 장래 희망을 묻는 대신에 '넌 무엇을 좋아하니? 무엇을 할 때 행복해? 무엇을 싫어하니?'라고 물어봅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 그 사람을 단정 짓지 않아서 좋고 그 사람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대명사로 정의하기 전에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은 무엇인지, 왜 그러한지, 지금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지, 지금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내면을 잘 들여다봅니다. 나라는 우주를 자세히 공부하는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원하는 일은 어쩌면 생각보다 사소하고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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