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 이야기
집필 기간은 6개월이었고 총 30꼭지 분량의 글을 써야 했다. 이미 브런치북에 연재했던 글이 10개였지만 많이 다듬어야 했기에 한 꼭지당 할애하는 시간을 동일하게 잡고 집필 일정을 계획했다. 학생 때 했던 MBTI에서는 '계획형'이 아닌 '탐색형'이 나왔는데, 최근에 한 버전을 보니 나는 완전히 '계획형' 인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약 24주간의 집필 기간에 30꼭지의 글을 써야 했으므로, 일주일에 1꼭지 내지 1꼭지 반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내 책을 쓰는 일이지만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른한 기분으로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쉬고 싶은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미 계약금을 받았고 마감일도 정해진 상태이기에 마냥 핑계를 대며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그래도 처음 써놓은 목차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글의 주제와 흐름을 머릿속에 그려 놓은 후이기에 미션을 클리어하듯 각 꼭지에 맞는 글을 차근차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집필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자료 수집을 위해 도서관에서 미리 검색해 온 책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근처에 꽂혀 있던 <환경문제와 윤리>라는 책을 훑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다른 환경 책들과는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환경 관련 책들이 환경에 우호적인 자료만을 소개한다면, 이 책은 여러 가지 환경 문제를 상반되는 논문이나 서적을 제시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더구나 결론으로 가면 갈수록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글을 써 내려 갈수록 환경 문제의 답은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여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는데, 바로 이 책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고 있었다. 즉시 책을 대출하여 꼼꼼히 읽어보았지만 2주간의 대출 기간은 너무 짧았고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이 쏟아져 나왔기에 이 책을 구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매하는 족족 환불되었다. 재고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니 더 갖고 싶었다. 출판사에 직접 연락하기로 마음먹고 출판사를 찾아보았는데 바로 내가 사는 제주도의 제주대학교출판부에서 출판한 책이었다. 그 당시 제주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터라 제주대학교까지의 거리는 차로 약 10분 거리였다. 즉시 제주대학교 출판부에 연락하여 책을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퇴근 10분 후에 드디어 <환경문제와 윤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지 않았더라도 택배로 책을 받아 볼 수 있었겠지만, 왠지 로컬 마켓에서 로컬 식자재를 손쉽고 저렴하게 구매한 것처럼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환경문제와 윤리> 외에도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저자인 조천호 박사님도 제주도 서귀포시에 살고 계시기에 혼자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처럼 재생지로 만든 책이라 더 애착이 간다.
집필 중간에 출판사와 한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책이 진짜 나올 수 있을까 막연하게 불안했던 때도 있었지만, 미리 정한 페이스대로 계획에 맞춰 하나둘씩 원고가 마무리되어 갔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유독 비가 많이 와서 습했던 8월 무렵 초고가 완성되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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