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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이 Dec 17. 2022

하프(harp) 동행기

팅 자리에 나가면 생기는 일들


하프 덕분에 겪는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대학생이 되고 갖게 된 미팅과 소개팅 자리에서 겪은 일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프가 주는 다양한 선입견과 편견들을.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자리에선 교과서같이 물어보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호구조사이다.

첫 번째는 몇 학번이냐 즉 상대방의 나이가 궁금하고, 두 번째는 학생의 신분으로 서로 만났으니 어떤 전공을 하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이 끝나면 언제나 내 앞에선 웃픈 상황이 펼쳐졌다.


학생끼리 만나 무슨 공부를 전공하는지 물어보는 상황은 하나도 어색한 게 없지만 나에겐 고민과 갈등의 순간이었다. 이유는 상대방이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의 전공 분야가 궁금한 게 아니라 하프가 갖고 있는 선입견과 이미지를 나에게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비단 이런 자리에서만 생기는 특별한 일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의 전공을 묻거나 직업을 묻게 되는 자리에선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팅과 소개팅 과팅과 번개팅까지 정말 많은 팅(?)의 경험이 있다 보니 그로 인해 생긴 해프닝이 적지 않았다. 하프 덕분(?)에 겪게 된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얘기해 보겠다.


5:5 미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지없이 똑같은 질문들이 오고 가며 전공이 뭔지 물어보는 순서가 되었다. 같이 나간 친구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전공을 얘기하자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다음 내 순서가 되어 전공을 얘기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당황한 듯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기… 그러면 뭐 드세요? 분식은 먹어봤어요?” 난 너무 어이가 없어 “네?”라는 외마디를 질렀다. 그랬더니 순대는 먹어봤느냐며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 순진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은 황당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전 순대 내장을 더 좋아하는데요.. 특히 간이랑 오소리감투요. 근데 허파는 별로더라고요” 처음 보는 남자에게 이렇게까지 나의 취향을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땐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이런 자리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대화로 풀어보겠다. 이성과의 만남이니 이해가 쉽게 대상을 남자로, 나는 여자로 지칭하겠다. 약간의 어색함이 사라지고 난 뒤 이어지는 대화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만난 지 10분 정도가 지나면 나오기 시작한다.


남: 전공이 뭐예요?

여: (머뭇거리며)… 하프예요.


남: 하프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연주하는 건가?

 (말로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꼭 양팔을 사용해서 다양한 동작들을 보여준다. 굳이 나에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당시에 하프를 볼일도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도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에게만 슬프게 느껴지는 일이다.)


여:… 하 하 하…(민망할까 봐 웃어준다.)


남: 그거 천사들이 연주하잖아요. 그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그거...

      (이 놈의 잭과 콩나무는 잊을만하면 꼭 등장한다.)

여: 네… 맞아요… 하 하 하(내가 민망해서 웃는다.)

       천사가 나왔어야 하는데… 죄송하네요… 하 하 하

      

남: 그거 비싸지 않아요? 악기만 사면 대학 간다고 하던데…

여: (기분이 별로다)……흠.. 지금까지 하프 사서 대학 간 사람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남: (아랑곳하지 않고 연이어 나온다. 무지 궁금한가 보다.) 그래요?? 그거 1억 도 넘는다고 하던데…

여:...


남: (겸연쩍어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근데 그거 크지 않아요?  어떻게 들고 다녀요?

여:  들고 다니지는 않아요… 피아노를 들고 다니지는 않잖아요… 하 하 하


남: 아… 그럼 어떻게 해요?

여: 특별할 때만 옮기는데 옮겨주시는 아저씨가 있어요.

     필요할 때 불러요.


남: 옮겨주시는 아저씨요?? (엄청 놀람)

여: 직업으로 하프를 옮기시는 일을 하시는 분이 계세요.


남: 아~~

여:  …


남: 근데 어디 사세요?

여: …(꼭 물어본다. 왜???)


전공을 묻고 나면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 이 질문인데 나는 매번 참 이상하고 어색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어 자신의 집과 가까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딱히 할 말이 없으니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살면 초중고를 어디 나왔는지가 파악이 되니 대화의 소재를 찾고 싶은 걸까? 그런 의도라면 학교를 물어보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하프를 하면 이럴 것이다’라는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편견이 있어서가 아닐까.


 사실 나는 매번 물어보고 싶었다. 물어보는 그들의 의중을. 하지만 한 번도 되물어본 적은 없다. 사실 나라고 왜 그 의도를 모르겠는가.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상대방의 전공을 물어보는 게 당연하지 않냐라고. 맞다.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물어보는지는 질문을 하는 상대도 그 질문을 듣는 대상도 분명히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이 질문을 듣고 답해야 하는 나에겐 피하고 싶은 질문이 될 수밖에.



이미지 출처: http://brunch.co.kr/@8fi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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