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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이 Feb 25. 2024

5년 후의 나

상상 속의 내가 5년 뒤에 있다


am 7:10

앞자리가 바뀐 지도 이미 몇 년이 지났건만 적응될 만도 한데 적응되지 않는 매일을 맞이하는 거 같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인지 밤새 머릿속에 떠 다니는 글들을 잡으러 다니느라 그런 건지 온몸이 찌뿌둥하고 머리도 개운치 않다. 아마도 갱년기 증상이 더해서리라. 육체의 늙어짐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날들이지만 나잇값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이쁜지 모르겠다.

5년 전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던가. 디지털 노마드로 살며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들이 혼재되어 있고,

일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삶, 느긋한 여행 속에서도 일과 휴식을 함께 누리며 사는 지금의 삶을 꿈꿨는데... 지금 이렇게 살 수 있음에, 이런 삶을 허락하신 분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창문 앞으로 와이키키 해변이 보인다. 하와이에 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지만 날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 광경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따가운 햇빛과 습하지 않은 바람들,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와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적당한 소음들이 자연의 소리들과 어우러져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만든다. 아침으로 먹을 아보카드가 곁들인 샐러드와 올리브와 치즈가 어우러진 파니니 샌드위치를 짝꿍에게 부탁했다. 거기에 더해질 시원한 하와이 라이언 커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빨리 짝꿍이 오면 좋으련만. 향긋한 커피 향이 그리운 아침이다.


am 11:40

아침일을 어지간히 끝냈다. 출판사에서 부탁한 원고 일부분을 수정해서 보냈고 밤새 달린 sns댓글에 마음을 다해 댓글도 달았고,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글도 어지간히 마무리했으니 가뿐한 마음으로 엉덩이를 흔들러 가도 될 듯하다. 오전 내내 눈과 손가락을 혹사시켰으니 이젠 몸을 움직일 차례다. 하와이 오기 전부터 알아본 훌라춤 스튜디오를 오늘 날짜로 예약해 두었다. 숙소에서 차로 30분 거리. 어제 봐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움직이면 늦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pm 5:00

처음 배운 동작들이 많아선지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눈으로만 보았던 훌라는 팔과 골반을 아름답게 돌리는듯했지만, 스쾃이라는 기본자세를 하니 이건 내가 상상하던 훌라가 아니다. 내 허벅지들이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걸 겨우 말렸다. 그래도 이쁜 하와이 전통 치마인 파우를 입고 머리에 향기로운 플루메리아도 달아보니 내가 있는 곳이 하와이인 것이 실감 난다. 이틀뒤엔 조금 더 멋진 자세로 훌라춤을 춰 볼 수 있으리라 마음먹고 신랑에게로 달려간다.


pm7:00

파도소리와 붉은 석양에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더해지니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훌라춤 이야기와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아줌마 이야기로 내 입이 쉴 새 없이 바쁘다. 맥주가 식을 시간도 없이 맥주들이 알알이 내 목으로 스며들어간다. 처음 배운 서핑으로 계속된 파도와 바람의 공격에 연속적인 참패를 당한 짝꿍. 강렬한 하와이의 햇빛 때문인지, 참패의 흔적 때문인지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 속에 빨갛고 붉은 색깔들이 자꾸만 퍼져간다.



pm 10:58

창가에 머물러도 춥지 않은 이곳. 그래서인지 자꾸만 테라스로 나가고만 싶어 진다. 좋아하는 소설이 몇 장 남지 않아 목요일까지 아끼면서 읽어보려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어느덧 마지막 장이 코앞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그것도 잠시 오른손을 뻗어 새 책을 잡아당기니 눈은 이미 프롤로그를 넘어간다. 이러다 테라스에 앉아 아침 해를 보겠구나 싶어 책을 겨우 덮는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열어 내일의 일을 확인하고 머릿속으로 일정을 재확인한다. 내일은 조용한 곳에 앉아 일들을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조금은 복잡한 일들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요일에만 연다는 동네 책방을 알아두었다. 집중하기 위한 나만의 장치라고 할까. 부디 내일 일들이 원활히 마무리할 수 있길 바라며 바스락 거리는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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