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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이 Feb 25. 2024

관계

본캐와 부캐사이

 부캐가 한참 유행이던 시절 누군가는 자신의 부캐가 몇 개이고 지금은 어떤 부캐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tv속 연예인들과 유명 유튜버들은 앞 다퉈 자신의 부캐를 소개하고 그 모습들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 대신 다른 사람인 것처럼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캐릭터화하기 위해 목소리와 옷차림뿐 아니라 행동까지도 바꾸는 모든 것들이 어색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역할 놀이도 아닌 것이 페르소나를 공공연히 갈아 끼우는 이상한 유행인 건지 별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본캐도 부캐도 그냥 그런 단어로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새해가 되면 새롭게 하려 한 몇 가지 일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혼자서 좋구나만 하지 말고 가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가치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 공간 속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sns계정을 만들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한 가지 모습만을 보여줘야 했다. 이런 것이 부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셈일 거라 짐작하며 sns세상 속을 헤매고 다녔다.  '인친'이라는 어감이 그럴싸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에게 다가와 친구로 지내자 하겠는가. 아무리 사회 관계망 안에만 존재하는 관계이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아무도 나에게 먼저 관심을 주지 않기에 가만히 있으면 누구 하고도 관계 맺을 수 없었다.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를 맺기 위해선 먼저 나의 패를 까야만 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매력을 가진 사람인지 그리고 조금이라도 너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렇게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밤낮으로 관심을 쏟았다.

1,2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 시간들이 흐르다 보니 본업(본캐)에 자꾸만 소홀해지는 나를 보게 되었다. 대체 뭘 한다고 일도 제대로 신경 못쓰고 이렇게 허둥지둥 사는 건지 삶의 우선순위를 혼동하거나 잃어버린 게 아닌지 의심이 쌓여갔다.


그날도 몸은 바쁘고 마음은 분주했다. 해야 할 많은 것 중 먼저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과 바쁜 몸을 재촉하며 걸어가다 문득 나에게 물었다. 이래도 좋은지, 괜찮은지를. 바쁘게 걸어가는 나는 싱긋 웃음이 났다.

“근데… 그래도 좋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본캐에게는 올해 계획했던 일들이 부캐 때문에 자꾸 미뤄져 미안한 마음이 잔뜩이지만 본캐는 분명 이해해 주고 기다려 줄 것이다. 부캐도 지금의 피곤함과 미흡함, 서툰 모든 것들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다독여 주고 싶다. 그렇기에 본캐와 부캐가 잘 버무려져 사이좋게 갈 날이 금방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본캐와 부캐 관계는 서로 양보해 주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참 잘했어요.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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