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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19. 2022

Matcher에서 Giver로

인생은 경제논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얼마 전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두 시간 가까이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였다. 친구의 공무원 시험 준비로 가끔 연락하던 차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필기시험을 합격하여 면접을 앞둔 친구의 목소리는 모처럼 아주 밝았다. 그녀와 주변인들 안부 소식을 나누던 차에, 함께 아는 다른 친구 A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친구 : "A가 그러는데, 너가 자기 결혼식에 올 줄은 몰랐대. 너는 좀 약간... 뭐라 그래야 될까 뭔가 좀 다가가기 어렵달까? 그리고 친한 사람들하고만 친하고 그래서 너한테 청첩장 주는 것도 망설였었대. 너가 과연 올까 하고. 그런데 너가 결혼식에 와서 엄청 감동받고 좋았대."



사실 A는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앞선 나의 결혼식에도 와준 고마운 친구였다. 솔직히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A의 결혼식을 갈지 말지. 개인적 친분은 별로 없으나 사실 순전히 나의 결혼식에 와 주었기 때문에 갔던 것이다.






세상은 'Givers'와  'Takers' , 그 중간 단계인 'Matchers'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받는 만큼만 베푸는 경제논리에 충실한 사람이 Matchers에 속한다. 나는 받은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는 편이지만, 먼저 나서서 베푸는 경우는 드물다.

A의 결혼식의 경우를 보면, 심지어 받은 것을 알면서도 갈까 말까를 고민했던 takers의 면모도 보인다.

'내가 정말 계산적이고 인색한 사람이었구나.'



많은 책에서 'Givers'가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하는 부류라고 한다. 베풀기만 하면 손해 볼 것 같지만, 베풀면서 주고받는 친절과 감동으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Givers가 사회적으로 가장 하층에 분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세 부류를 살펴보았지만, 나는 행복의 기준으로도 저 잣대가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풀어야 풍성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쌓이며, 사랑을 먼저 줄 때 또한 돌아오는 사랑으로 자아가 단단해지리라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관계가 곧 삶의 질로 연결된 확률이 높다.


하루를 걸작으로  만들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 서로 시선이 마주칠 때 뭔가 성공적인 것들이 태어난다.  타인의 시선을 외면하거나 피하는 사람은 이어짐이 주는 엄청난 기회를 얻지 못한다. <책 마흔이 되기 전에>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잃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삶의 질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질이다. <책 내가 만난 1%의 사람들>



내가 베푼 시간, 열정, 돈이 나에게 다시 되돌아오기를 기대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베풀 때, 우리는 상대방 안에 있는 '어떤 빛'을 바라봐주는 것이다. 상대방 안에 있는 '그 빛'을 바라봐주어 상대방이 반짝 빛날 수 있을 때 그와 마음이 이어지는 것이다.






생활비도 빠듯하고, 외국 나가 있는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이미 마이너스지만 나도 'Givers'가 되어 보자는 생각으로 직장 동료에게 작은 베풂을 실천해 보았다.


인사팀으로 얼마 전 자리를 옮긴 그는, 처음 경험해보는 내부 민원(직원)성 업무들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보였다. 물어볼 게 있어 찾아간 그의 사무실에서 그가 통화를 끝마치기만을 기다리는데, 무려 10분 넘게 직원을 응대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릴 수 없어 내 사무실로 돌아오니 그에게 연락이 와서 카톡을 하는데 심신이 지쳐 보이는 그는 말투마저도 건조했다.



나는 먼저 친절을 베풀어보기로 했다.



나: "우연히 통화내용 들어보니 엄청 고충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번에 저희 밥 먹기로 하고 못 먹었는데,
언제 한 번 시간 잡을까요?"
동료 : "죄송하지만 저희 딸이 두 돌이 돼서 다음 주 가족여행 계획 중이라 조금 미뤄도 될까요~?"
나 : "아~  그렇구나! 미리 축하드려요^^"
동료 : "감사합니다 ^^"



대화 후 나는 24개월 여자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골라 카톡 선물을 보냈다.


"나중에 까먹을까 봐 미리 보내요~ 딸이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헐! 대박!! 감사해요.. 이런 거 생각하고 얘기한 건 아니었는데...^^;; 7월 초에 제대로 모실게요. 감사합니다^^"



이후에 온 그의 이모티콘엔 "언제나 꽃길만 걸으세요"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마음이 참, 따뜻했다.



그날 나는 정말 나 같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give 한 것을 살펴보니 이렇다.



1. 상대방과 특별한 친분이 있지도 않은데 밥을 먹자고 한 것(시간)
2. 상대방이 친절하지도 않은데 내가 친절하기로 선택하고 호의를 베푼 것(호의)
3. 상대방이 기뻐하는 일에 함께 기뻐하며 정성을 보내준 것(돈)



결론은?? 딱딱했던 그의 말투가 금방 온화하게 변할 뿐 아니라 서로의 마음도 따뜻해진 것이 느껴졌다.



베푼다는 것은 손해 보는 삶이 아니라, 더해지는 삶이구나.  
누군가의 하루 중 행복한 잠깐을 선물할 수 있으면 내 삶은 의미 있겠구나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손석구에게 김지원이 이렇게 말한다.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누군가 때문에 몇 초 설레곤 하는데, 이런 일들로 하루 5분을 채워보라고. 나는 그렇게 하루를 버틴다고.



누군가의 행복한 5분을 만들어가는 삶, 그를 통해 일상이 아름다운 예술이 되길.


예술은, 적어도 내가 정의한 예술은, 자신의 인간성을 활용해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싶어 하며 누군가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정령은 훌륭한 생각, 혁신적인 통찰, 너그러움, 사랑, 관계, 다정함의 원천이다.
<책 린치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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