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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11. 2022

너의 자의식이 쓸데없이 비대하구나(역행자)

메타인지로 뼈 때리기

거래처 직원 A와 감정적으로 계속 부딪쳤던 일을 회고하며 2주 전에 '어디서 갑질이야'라는 글을 올렸었다. 


어디서 갑질이야? (대화의 실패) (brunch.co.kr)


어제 업체와의 최종 거래 결정을 확정 짓기 위한 미팅을 가졌는데, A가 약속시간 5분 전에야 30분 이상 늦는다는 연락을 문자로 보내오자 화를 주체하기 힘들어졌다. 저 늦을 것 같은데 그 시간도 괜찮으시냐는 문맥이 아니고, '늦겠습니다'라는 문자 연락이었기에. 이번 미팅까지 3번째로 나는 5분 전 미팅 연기 '통보'를 받고 있었으므로.


게다가 나와 팀장님은 10분 전부터 약속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굳이 사무실로 가 있다가 다시 이들을 만나러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40분쯤 늦는다는 A에게 굳이 전화해서 '그쪽 업체와 미팅 3번 했는데 모두 다 제가 기다리게 되네요'라고 기분 상함을 전달했지만 그도 기분이 상했는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난 업체는 나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A뿐만 아니라 대표까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마주했다. 우리는 그 업체의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업체는 갑자기 마음을 바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 된다고 하니' 그냥 우리가 제안했던 안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 미팅에서 결론을 내야 했기에, 팀장님까지 참석했지만 크게 협의할 일도 없이 미팅은 10분 만에 종료되었다.



직원이 못 하는 일을 하러 제가 나온 거죠

임차 계약이 개시되는 날은 임차물건에 대한 사용권한이 생기는 날로, 이사나 공사 모두 계약 개시일로부터 가능하다. 업체는 이 부분에서 은근히 협의를 또 하기 시작했는데, 대화는 이렇게 흘러갔다.



업체 대표 : 저희 짐 좀 여기 미리 가져다 놔도 될까요?
팀장님 : 네, 그러시죠.
업체 대표 : 팀장님 엄청 화끈하시네요!
팀장님 : 직원이 못 하는 일을 하러 제가 나온 거죠~



팀장님의 말 한마디에 나는 '일처리를 잘 못해서 팀장까지 불러 나오게 한' 한심한 직원이 되었다. 업체와 미팅하면서 기분이 상한 것보다, 이 순간 자존심이 정말 상하고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일은 깔끔히 처리한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실상 팀장님은 이번 일 처리를 보면서 나에게 실망하셨던 건가 싶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곱씹어보니, 사실문제의 발단은 나의 업무 처리 실수에서 기인했다. 업체에서 기존에 임차하기로 했던 호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호실로 임차 변경을 희망했었다. 가능 여부를 물었는데, 나는 그 호실을 임차하기로 한 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가능하다고 답변을 주어 업체에서는 변경된 호실로 임차를 희망한다는 공문까지 새로 보내온 상황이었다.  


이 업체는 먼 지방에서부터 인천으로 이전을 하는 업체라서 사무실을 자주 와 볼 수가 없었다. 업체에서 공실을 보러 온 날, 나에게 호실 변경 가능 여부를 물은 후 확답을 받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 상황이었는데, 다음 날 내가 '죄송한데 제가 안내를 잘못했다. 회사의 이러이러한 이유로 그 호실은 사실 불가능하니 다른 호실을 알아보셔야 한다'라고 답변을 주어 입장을 번복한 상황이었다. 다시 또 인천까지 직원과 대표가 올라와 상황을 재조율 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많이 짜증이 났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A는, 담당자의 실수로 호실 안내를 잘못 받았으니 업체의 입장을 고려해서 안 되는 호실도 맞춰달라는 요구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너의 자의식이 쓸데 없이 비대하는구나

저녁에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데, 책 속에 '자의식 과잉'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바로 지금 '너'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열등감이 발동되었을 때 스스로의 못남을 인정하고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 멍청하다는 걸 인정하자. 스스로 못났다는 걸 인정하자. 그다음에 발전이 있다. 자의식으로 자아의 상처를 피해서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자의식이 굳어진 이들을 '자의식 좀비'라고 부른다.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 꼰대가 되어버리고, 자위만 하며 모든 정보를 튕겨내 버린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남 탓', 사회 탓', '잘난 사람 깎아내리기' 밖에 없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아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메타인지를 설명할 때 '내가 뭔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생각하는 메타인지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역행자>



나는 처음부터 내가 호실 안내를 잘못한 것이 큰 결례고 실수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일이 틀어지게 된 것이 내 실수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멍청하고 못났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주야장천  A의 태도를 들먹거리며 모든 불협화음이 그의 탓인 마냥 굴고 있었던 것이다.


아... 메타인지가 강력해진다는 것은 뼈 때리는 고통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내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면서, 본인은 엄청나게 업무처리가 완벽하다고 여기고 뻗대는 것에서부터가 문제다. 남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자아를 인식하는 정도의 갭이 벌어지면서 '자의식 과잉'  문제가 심각해진다. 


생각해보니 이 업무를 맡은 작년 이 즈음부터 나는 문제가 될 만한 실수를 벌써 3번 정도 했다. 다행히 잘 해결은 되었지만, 팀장님에게 보고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업체의 민원이었는데, 내 업무처리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렇다. 통렬히 다시 자각한다.

나는 사실 그저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업체가 지각한 일도, 팀장님과 내가 받아들이는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팀장님은, "신뢰할 수 없는 업체네"

나는, "소통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에요"


이 미팅은 업체와 우리 회사 거래의 문제이지,  A와 나 사이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다. 팀장님은 상황을 보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렸고,  나는 일을 굉장히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업체와의 불화를 키우고 있었다.


나의 자만과 부족함에 대해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도 편한 얼굴로 마주하고,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드린 나의 부족한 업무처리에 대해서도 깊이 사과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무례하거나 나의 기분을 상할 만한 행동을 할 때, 

 1. 내 문제로부터 그게 시작되었다는 생각

 2. 그 사람도 나처럼 자의식 과잉 등의 문제로 잘못된 의사 결정과 태도를 보인다는 생각


이 두 가지를 먼저 염두에 두고 대화를 해 나가면 감정적으로 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낮은 지능과 열등감, 안 좋은 환경, 공격성 같은 게 합쳐져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자유의지 없이 열등한 유전자 때문에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리는구나. 참 안타깝다. 결국 타고난 대로 순리자로 살다 말겠구나'하고 생각한다.
<역행자>


나의 실수와는 별개로 그의 태도 문제는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에게만 악감정이 있어 그렇다기보다, 그건 그가 사는 방식의 문제이니 안타깝게 여기고 말면 그뿐인 것이다. 



역행자에서는,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게 독서'라고 한다. 인생 선배들로부터 손쉽게 방구석에서 조언을 듣고 깨달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직은 조금 더 뼈를 맞아야 한다고 내 영혼이 말하는 것만 같다. 메타인지가 1% 정도 된 느낌이랄까. 시댁에서 살게 되어 의도치 않게 더욱 생산적인 생활이 된 요즘, 독서로 나를 더 알아가야겠다,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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