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그녀는 수업 후 쉬는 시간 10분 동안 매점 왕복 및 우동 먹방을 찍는 엄청난 먹성으로 나와 매점을 드나들며 급속도로 친해진 친구였다. 둘 다 수업 시간에 엄청 존다는 공통점도 우리를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그랬던 그녀가 7년 전 내 결혼식 이후 갑자기 소식이 뚝 끊겼다.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내 카톡은 읽지도 않고 전화, 문자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1년이 넘게 지속되자, 나는 이 친구가 나를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확신이 들어 카카오톡 차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작년에 그녀의 이름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로 전화인가 그 의중을 짐작해보던 사이 전화는 끊겼고, 나는 친구 애가 전화기 버튼을 잘못 눌렀나 보다 싶었다. 전화번호는 안 지웠나 보네 하며.
일주일쯤 지났을까 다시금 그녀의 이름으로 전화가 걸려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회사 운영과 육아를 병행하게 된 그녀가 방전이 되어서 모든 연락을 몇 년간 다 끊었다고 했다. 감정을 가득 실어 나를 반기는 친구의 목소리와는 달리 내 목소리는 차분해져 있었다. 몇 년간 나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가 여유가 생기니 나를 다시 찾는다는 게 내심 괘씸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얼마나 힘들었으면 모든 관계를 쉬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에 안쓰러움이 들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는 내가 사는 지역까지 찾아와 긴 식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준비 없이 첫째 아이를 갖게 되었고, 주변에 그 어떤 친구도 출산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물어볼 이 하나 없이 육아를 감당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때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녀는 엄청나게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이었다. 아이의 엄마로서 보다는 본인 이름을 건 무언가에서만 성취를 느끼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육아를 하며 산후우울증을 겪는 도중, 운영하던 회사는 성장이 필요한 시기가 되어 CEO의 엄청난 몰입이 필요했다. 사업전략을 고민하는 것, 거래처를 관리하는 것만도 머리가 아픈데 회사가 커지는 시점이 되니 늘어난 직원 관리가 새로운 문제로 다가왔다.
직원 관리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인간관계가 저변에 깔려 있는 중요한 인적자원의 관리이기 때문에 친구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완전히 넉다운이 된 듯했다.
그러면서 일이 아닌 다른 영역의 인간관계는 잠시 스위치를 꺼둔 것이다. 상대에게 고지라도 하고 off를 눌렀으면 좋았으련만 친구는 그럴 여유도 없었던 모양이다.
식사를 하는 내내 쉴 새 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친구의 모습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상대에게 거부당하는 느낌을 더 이상 가지기 싫어 나는 친구의 카톡까지 차단했지만, 친구를 다시 만나니 사실은 나도 참 반가웠다. 그러나 한편으론 몇 년을 의식적으로 상대를 지운 시점에서 그 친구에 대해 가졌던 애틋함이 이전처럼 바로 회복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 내게 연락을 하고 카톡이 되지 않자 수차례 전화를 걸며 애쓴 친구의 노력을 생각하여, 계속 토라지고 싶은 내 마음 한 구석의 고집불통 어린애를 잠재우고, 친구와 소소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