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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30. 2022

결혼은 관계의 무덤인가

그랜드조선호텔 제주

이 글은 절교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하게 되면서 30대 후반의 두 친구가 함께 다녀온 제주여행 이야기를 엮은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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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교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오다

2. 제주도에서 알게 된 맛집의 의미




친구가 예약한 그랜드조선 호텔은 제주 중문에서 지은 지 2년밖에 안 된 호텔로, 호텔 앞바다 뷰는 없지만 제주 내 5성급 호텔 중 시설이 제일 훌륭한 느낌이었다.



점심때 갈매기살 3인분을 혼자 해치운 내 친구는 저녁 먹기가 버거운 상태였으므로, 우리는 호텔에서 가볍게(?) 회를 시켜먹기로 했다.


2인분 양의 회에 8만 원 정도 되는 가격이라 가성비가 좋은 회는 아니었지만, 성게, 전복, 딱새우 등 싱싱한 해산물과 여러 종류 회(심지어 고등어까지)를 몇 점씩 맛볼 수 있는 세트 구성이었다. 한 마디로 내 친구 취향 저격!



사실 나도 해산물보다는 고기 파고, 배달 회라 별 기대를 안 했었다.

그런데... 딱새우에서 이렇게 단 맛이 난다고??

성게 비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다향만 난다고??

아니 전복이랑 고등어회는 왜 이렇게 감칠맛이 나고??


메뉴 구성도 좋았는데 엄청 싱싱한 회를 파는 곳이었다.


음식이 맛있으니 역시나 또 우리의 음식 얘기는 계속되었고.





친구 : 나는 맛있는 거 먹는 게 낙인데, 결혼하고 남편하고 그런 행복을 즐겨본 적이 없어. 결혼하면 남편 하고 치맥 같은 거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신혼 때,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하고 남편한테 물으면, 시켜먹는 음식 이제 질린다고 질색을 해서 한 번도 같이 배달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 결혼한 지 13년이 됐는데 한 번도.
친구 : 우리 남편은 어릴 때부터 집밥을 못 먹는 환경에서 자라서, 집밥에 대한 애착이 강해. 우리 엄마가 낮에 오셔서 애 봐주면서 찌개 같은 거 하나 끓여놓으면 저녁에 그걸로 혼자 밥 차려먹고, 나는 당연한 듯이 배달앱에서 엽떡 주문해서 각자 밥 먹어.
나 : 우리 시댁도 남편 어릴 때 슈퍼를 운영하셔서 그런지 남편이 냉동식품을 엄청 먹고 자랐다고 하더라고. 내가 간단하게 국 하나만 끓여도 뭐 시켜 먹은 것보다 100배는 좋아해. 그런데 너희 부부는 밥을 그렇게 따로 차려서 먹으면 언제 대화해?
친구 : 그래서 우리 제대로 된 대화를 안 해.




친구와 남편은 함께 회사를 운영 중이다. 연애할 때부터 시작한 것이 결혼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함께 운영해서 현재는 연매출 150억의 회사를 일궈내었다. 부부가 사업 파트너로서도 함께 하니 좋을 것 같지만, 집 말고 회사에서까지 함께 해야 하는 일상은 친구에게 '징글징글함'만 남게 하는 듯했다.




친구 : 우리 부부는 정말 온종일 붙어 있는 거거든. 신비감이 없어. 회사에서도 그렇게 봤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보면 할 말이 없어. 일에만 몰두했다 보니까 둘 다 관계도 넓지 않고.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도 좀 만나면서 자극도 얻고 싶고 남편하고 음식 성향도 안 맞으니까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데, 남편은 다른 사람 만날 필요성을 못 느껴.
나 : 인간관계의 질이 삶의 질이라고 하더라고. 너하고 내가 친구라서 이런 얘기가 가능한 것처럼, 인생에도 다양한 관계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구 : 맞아. 사람을 만나야 성장도 하잖아. 나는 결혼하고 어느 시점부터 성장이 멈춘 느낌이야. 하루 종일 부부끼리 서로만 보고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금요일마다 사람 만나는 날로 정하고 약속 잡고 있어. 남편한테도 누구든 만나라고 했는데 죽을상 얼굴을 하고 나 들어올 때만 기다려.
나 : 큰 아들이잖아.
친구 : 내 말이.




사실 우리 부부의 인간관계도 폐쇄적인 타입이었다. 나를 향한 남편의 큰 소유욕이 한몫했는데, 결혼 후 2년 정도는 친구와 통화하는 것도 눈치 보일 정도로 함께 있는 시간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는 친한 친구들과 관계가 다 끊어지는 줄 알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었다.


결혼 후 만 5년쯤 지나자 남편은 내 주변 사람들도 편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친구와 외박만은 안된다고 했었는데, 본인도 해외에 나가 있고 이제는 정말 나를 향한 신뢰가 쌓인 건지 처음으로 친구와의 여행을 허락(?)해 준 것이었다.


서로에게 조금 더 많은 관계를 허락한 결과는 어떠한가. 나는 이번 여행에서 친구와 정말 다양한 주제로 생각을 나누고,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고찰해 보게 되었다.








친구 : 나는 우리 부부가 '따로 또 같이'를 했으면 좋겠어. 서로 안 맞는 부분은 그냥 인정하고 각자 하고, 함께 할 부분은 함께 하고. 그래서 밥도 각자 먹는 거고. 각자 원하는 사람 있으면 편하게 만나고, 집에 오면 또 같이 하고.
나 : 원하는 사람의 의미가 너무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친구 : 맞아. 얼마 전에는 나도 잘 아는 어떤 여성분이 남편한테 주식을 따로 좀 알려달라고 했더라고. 그 얘기를 남편이 나한테 와서 전하는 거야. 만나도 되냐고 물어보는 건지, 긴장하라고 자랑하는 건지. 촉이라는 게 있어서 쌔한 느낌이 조금 오긴 했어. 그런데 행여나 이상하게 관계가 전개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서로 살면서 어쩔 수 없는 그런 새로운 인연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배우자의 모든 만남을 간섭하고 훼방 놓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여자 만나서 알려주라고 했어.
나 : 너 진짜 쿨하다. 저 세상 쿨함이다.




인간적 성장은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룰 수 있지만, 진짜 살아있는 성장은 친구의 말처럼 사람 사이의 만남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똑같은 얘기를 책을 통해 읽는 것과 직접 겪은 사람으로부터 듣는 것은 천지 차이다. 말을 전달할 때의 그 사람의 비언어적 이야기-생동감 넘치는 눈빛, 확신에 찬 몸짓, 감정에 찬 어조 등-로부터 우리의 감정이 동요되고 그로 인해 뇌에 인식되는 영역도 달라진다. 책은 단순히 '글자'만을 전달한다.


각자 다른 통찰력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의 세계관이 넓어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삶을, 자기 자신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건설적인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또한 대화는 반드시 질문을 통해 소통이 이어지는데, '고수의 질문법'이라는 책에서는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질문의 질(質)은 두 개의 도끼 근(斤)과 조개 패(貝)가 합쳐진 글자이고, 물을 문(問)은 문 문(門)에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로, 남의 문 앞에서 조개(돈)를 도끼로 다듬는다는 의미다.

대문 앞에서 서로에 대해 묻다 보면 서로를 알게 되고, 친해지면 돈도 생긴다는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닌 게, 진짜 고급 정보는 사람을 통해서 얻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결혼해서 배우자끼리 서로에게 헌신하기로 다짐한 사이가 된 이후에도, 우리의 삶과 뇌, 감정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또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성 사이의 관계는 늘 예측이 불가능하고, 인간은 다짐만큼 행동이 확고하지 못하다. 그래서 이 사이의 적정한 밸런스를 찾는 것이 어렵다.


내 남편은 그 적정선을 믿을 수가 없어서 아내의 사적 만남을 제한했던 것이고, 내 친구는 그 적정선을 찾다가 아무 관계도 맺을 수 없을 것 같아 자신도, 남편도 모든 만남에 프리패스를 준 것이다.






그렇다면 내 친구는 배우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통제하지 않는 것인가, '통제'라는 행위 자체를 간섭이라 보고 그의 사적 만남을 방치하는 것인가?

 * 통제 : 일정한 방침이나 목적에 따라 행위를 제한하거나 제약함

 * 간섭 : 직접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부당하게 참견함



부부간 각자 인간관계의 적정선은 무엇일까?


'서로의 성장을 지지하는 태도로, 상호 간 신뢰를 기반으로 만남을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적정선이 아닐까. 


신뢰가 없다는 건 상대의 잘못된 행동과 생활방식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애정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신뢰가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내 친구 부부 사이에 아직 신뢰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만큼 결혼생활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친구가 저렇게 쿨하게 말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마치 서로 사이에 사랑은 분명히 있지만, 돌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나는 내가 정의한 적정선을 따라 내 남편을 어떤 만남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만약 갑자기 등산을 하고 싶다고 등산 동호회에 참석한다는데 남녀 비율이 5:5일 때, 신뢰를 기반으로 쿨하게 그를 보내줄 수 있을까?



느낀다. 가치관대로 살기는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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