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조선호텔 제주
이 글은 절교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하게 되면서 30대 후반의 두 친구가 함께 다녀온 제주여행 이야기를 엮은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친구 : 나는 맛있는 거 먹는 게 낙인데, 결혼하고 남편하고 그런 행복을 즐겨본 적이 없어. 결혼하면 남편 하고 치맥 같은 거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신혼 때,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하고 남편한테 물으면, 시켜먹는 음식 이제 질린다고 질색을 해서 한 번도 같이 배달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 결혼한 지 13년이 됐는데 한 번도.
친구 : 우리 남편은 어릴 때부터 집밥을 못 먹는 환경에서 자라서, 집밥에 대한 애착이 강해. 우리 엄마가 낮에 오셔서 애 봐주면서 찌개 같은 거 하나 끓여놓으면 저녁에 그걸로 혼자 밥 차려먹고, 나는 당연한 듯이 배달앱에서 엽떡 주문해서 각자 밥 먹어.
나 : 우리 시댁도 남편 어릴 때 슈퍼를 운영하셔서 그런지 남편이 냉동식품을 엄청 먹고 자랐다고 하더라고. 내가 간단하게 국 하나만 끓여도 뭐 시켜 먹은 것보다 100배는 좋아해. 그런데 너희 부부는 밥을 그렇게 따로 차려서 먹으면 언제 대화해?
친구 : 그래서 우리 제대로 된 대화를 안 해.
친구 : 우리 부부는 정말 온종일 붙어 있는 거거든. 신비감이 없어. 회사에서도 그렇게 봤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보면 할 말이 없어. 일에만 몰두했다 보니까 둘 다 관계도 넓지 않고.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도 좀 만나면서 자극도 얻고 싶고 남편하고 음식 성향도 안 맞으니까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데, 남편은 다른 사람 만날 필요성을 못 느껴.
나 : 인간관계의 질이 삶의 질이라고 하더라고. 너하고 내가 친구라서 이런 얘기가 가능한 것처럼, 인생에도 다양한 관계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구 : 맞아. 사람을 만나야 성장도 하잖아. 나는 결혼하고 어느 시점부터 성장이 멈춘 느낌이야. 하루 종일 부부끼리 서로만 보고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금요일마다 사람 만나는 날로 정하고 약속 잡고 있어. 남편한테도 누구든 만나라고 했는데 죽을상 얼굴을 하고 나 들어올 때만 기다려.
나 : 큰 아들이잖아.
친구 : 내 말이.
친구 : 나는 우리 부부가 '따로 또 같이'를 했으면 좋겠어. 서로 안 맞는 부분은 그냥 인정하고 각자 하고, 함께 할 부분은 함께 하고. 그래서 밥도 각자 먹는 거고. 각자 원하는 사람 있으면 편하게 만나고, 집에 오면 또 같이 하고.
나 : 원하는 사람의 의미가 너무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친구 : 맞아. 얼마 전에는 나도 잘 아는 어떤 여성분이 남편한테 주식을 따로 좀 알려달라고 했더라고. 그 얘기를 남편이 나한테 와서 전하는 거야. 만나도 되냐고 물어보는 건지, 긴장하라고 자랑하는 건지. 촉이라는 게 있어서 쌔한 느낌이 조금 오긴 했어. 그런데 행여나 이상하게 관계가 전개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서로 살면서 어쩔 수 없는 그런 새로운 인연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배우자의 모든 만남을 간섭하고 훼방 놓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여자 만나서 알려주라고 했어.
나 : 너 진짜 쿨하다. 저 세상 쿨함이다.
질문의 질(質)은 두 개의 도끼 근(斤)과 조개 패(貝)가 합쳐진 글자이고, 물을 문(問)은 문 문(門)에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로, 남의 문 앞에서 조개(돈)를 도끼로 다듬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