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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l 03. 2022

너는 이제부터 테레사야

이 글은 절교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하게 되면서 30대 후반의 두 친구가 함께 다녀온 제주여행 이야기를 엮은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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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교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오다

2. 제주도에서 알게 된 맛집의 의미

3. 결혼은 관계의 무덤인가



아늑한 호텔 소파에 기대 싱싱한 회에 와인을 마시자니, 몇 시간을 얘기해도 피곤한 줄 모르고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친구 : 나 요즘 남편하고 너무 자주 싸워.
나 : 둘째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시기일 거야.
친구 : 그렇긴 한데... 내가 너랑 이번에 여행 온 게 정말 오랜만에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 거거든. 애 때문에 바빠서 전날 저녁에 캐리어도 못 쌌는데, 그거 다 알면서 남편이 나 여행 가는 날 아침에 배려를 안 해 주는 거야. 오랜만에 아내가 여행 가는데 편하게 다녀올 수 있게 아침에 자기가 애들 좀 챙기면 안 돼?
나 : 아침에 너 짐도 싸고 애들도 챙기느라 엄청 바빴겠네.
친구 : 응.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하잖아. 그런데 나는 안 행복하거든? 내가 남편한테도 물어봤어. 본인도 안 행복하대.



행복이란 뭘까.



주기적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회사 언니 세 명이 있다. 행복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녀들은 으레 이렇게 얘기한다.



언니 : "여행 가면 행복해. 그런데 일 년에 여행을 몇 번 밖에 못 가니까 안타깝지."

나 : "여행 갈 때만 행복하면 평소는요?"

언니 : "불행하지. 신날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다면 행복은 설레고 흥분되고 가슴 뛰는 감정일까.

그녀가 말하는 행복의 감정은, 매일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과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의무를 온전히 벗어나서, 누리기만 하면 되는 그 시간의 달콤함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누리기만 할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참 제한적이다. 돈을 쓰기만 하는 여행이 존재하려면, 돈을 열심히 버는 일상이 있어야만 한다. 행복이 모든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에 행복은 찰나적일 수밖에 없다.


행복은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예상 못한 보너스가 나올 때, 기대 안 했던 종목의 주가가 갑자기 오를 때, 많이 아팠던 아이가 다 나을 때, 동양화처럼 멋진 풍경을 볼 때, 그리고 내 친구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등등.


그렇다면 행복은 나를 둘러싼 외부 환경의 긍정적인 변화가 주어질 때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행복은 우연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된 '나의 해방일지'에서 행복은 '가슴 뛰는 벅찬 감정'이 아니라, '심장이 느리게 뛸 만큼 편안한 감정'이라고 얘기한다. 이 드라마에서 그 평온함은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짐과 동시에 나에게 악의를 품은 누군가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의 인생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자아의 단단함에서 나온다.


이 드라마를 쓴 작가의 전작 '나의 아저씨'의 주제를 품는 대사, '지안, 평안에 이르렀나'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작년 가을부터 예상치 못한 인생의 문제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으며 내가 내리게 된 행복의 정의도 이와 가깝다.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근 2년은 모든 예배를 유튜브로 드리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주말에 시간이 넘치게 되었다. 전보다 여행도 조금 더 가고, 캠핑도 가서 울창한 숲에서 경치를 보며 맛있는 것도 먹었다. 이전보다 두 배는 넓은 새 집으로 이사를 갔고, 남편은 본인의 사업체를 꾸리게 되었고 나는 승진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무언가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막연히 퇴사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느끼며 자기 연민으로 깊은 우울감에서 허덕일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나름의 해답을 얻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게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작년부터 인생의 내리막길 같은 사건을 겪으며 나는 남편에 대한 기대-내 바람대로 남편이 해 주길 바라는 마음-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도 내려놓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인정하고 통제권을 포기하니,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했다. 내 지금 상황은 그 누가 보기에도 안타깝기 그지없이 동정을 이는 상황인데도. 외부의 자극이 계속 오고 있지만 나는 느리게 뛰는 심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행복(평안)은 이럴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주도할 수 없는 인생의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통제권을 내려놓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를 위해 가치 있게 시간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내 영역에 들어오도록 초대하고
 그들의 빛을 바라봐주는 것.




다시 친구와의 대화로 돌아가서, 내 친구는 남편과 서로 준 만큼 받으려는 이성적인 관계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테고, 그 어느 때보다 서로의 배려가 필요한 날들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내가 가정을 위해 들인 노력에 대해 인정받고, 그 인정을 상대의 노력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자신의 '공로'를 우선하여 대화하니 서로의 애씀에 대한 고마움은 다 사라져 버리고, 서운함만 남게 되는 것 같았다.


자로 잰 듯 가정을 위한 서로의 노력이 공평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내가 바라는 대로 상대가 움직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마음으로 인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상대가 아닌 나를 변화해야만 한다고 한다. 내려놓으라고 말해야 할 상대는 자신뿐이라고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


모든 것은 '통제'라는 한 단어 안에 들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을 찾으며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하며 한 발 내디딜 때 인생에 '정제된 형태의 행복'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 같다.


친구에게 통제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너는 이제부터 테레사야."



이름 난 성자랑의 비교라니. 가당치 않지만 남이 보기에도 내가 무언가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보다.


조금 더 내려놓아 그 행복의 순간이 매일 조금씩 더 늘어나기를, 어제보다 오늘 더 감사할 수 있기를, 그래서 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 의미 있는 순간이 존재하기를 바라본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을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자신을 원래보다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 필요 또한 없지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목을 옥죄며 살 것입니까, 아니면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포용하며 살 것입니까?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까지 불안해하는 대신, 결국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사는 데 익숙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자유와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래를 통제하고 예견하려는 헛된 시도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럴 용기가 있다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평온은 폭넓은 지혜를 담은 감정입니다. 흔히 알아차림이 부르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으로, 부드럽고 총명하며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데블란드)>
만족과 성취, 행복이 있는 삶의 비결은 '남들을 위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를 중심으로 삶을 꾸리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이나 영혼에 있는 블랙홀을 메워보려는 무의미한 시도로 시간을 낭비하다가, 당신의 어려움에 관해 불평을 늘어놓을 작은 집단을 찾아내서 와인 한 잔을 함께 나누고 헤어지면, 모두가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만 아무도 바뀌지 않는 그런 삶 대신 말이다.
<나는 인생의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개리 비숍)>

삶의 질은 인간관계의 질에 달려있다.
<내가 만난 1%의 사람들(아담 J. 잭슨)>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한 헌신적인 행동에서 나옵니다.
<헬렌 켈러>

"행복은 기본적으로 전심전력을 다해서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도 없이 오로지 한 곳만을 향해서 가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이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어떤 대상에 온전히 몰두해 헌신하는 것이다. '
<두 번째 산(데이비드 브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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