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씨아저씨 Jan 06. 2024

2024 조복(鳥福)의 시작

2024. 1. 6

약간 쌀쌀하지만 춥지 않은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다. 오후의 뒷산은 비교적 고요하다.


바닥이 낙엽으로 덮여 있는 겨울철은 노랑지빠귀들이 바닥을 총총걸음으로 걸어 다니며 나뭇잎 사이에서 먹이를 찾고 있으면 보호색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난 산책길로 그냥 가고 있을 뿐인데 내가 지나가는 소리에 놀라서 특유의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말이다. 


지빠귀 녀석들은 무척 예민하다. 내가 미리 발견했더라면 돌아가거나 조심스럽게 갔을 텐데 내 실수다.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녀석은 이미 저 멀리 떠나고 난 뒤다. 오늘도 노랑지빠귀 2마리를 날려버리고야 말았다. 탐조를 한 이후에 산을 걸을 때는 조금 더 조용히, 조심히 걸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가끔은 본의 아닌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곳은 원래 그들의 땅이고 쉼터이다. 물론 우리 인간도 함께 사는 지구이기에 그곳을 이용할 충분한 권리는 있다. 다만 공유해야 할 숲을 호모사피엔스는 늘 소유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숲 속에서 요가하고 숲체험한다고 한참 시끄럽게 공사한 이후에 쓸데없이 만들어놓은 스폿에서 뒷산에서는 자주 보이지는 않은 아물쇠딱다구리가 나타나주었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물쇠딱다구리


아물쇠딱다구리는 쇠딱다구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쇠딱다구리보다 몹집이 크고 등의 무늬가 확연히 다르다. 쇠딱다구리가 초등학교 1학년 느낌이라면 아물쇠딱다구리는 5, 6학년 정도의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좀 될지 모르겠다.  


오늘은 산 정상을 넘어가서 뒷마을까지 넘어갔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곤줄박이는 우리 집 쪽 산책코스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 산 넘어 뒤쪽으로 가야 자주 보인다. 곤줄박이라는 이름은 언제 들어도 귀가 말랑해지는 좋은 이름이다. 땅콩이라도 가져왔으면 녀석을 불러보는 건데 오늘도 글렀다.


곤줄박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앞에서 새 한 마리가 휙 하고 내 눈앞에서 지나가더니 옆에 있는 나무에 앉았다. 상모솔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육안으로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이마의 노란 무늬. 상모솔새의 트레이드 마크다. 상모솔새는 우리나라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 중에 크기가 제일 작은 새로 알려져 있다. 10cm 정도인데 쇠박새보다도 더 작아서 크기만 봐도 대략 짐작이 가는 새다.


소나무를 좋아해서 대부분 소나무에서만 관찰했던 녀석이다. 늘 고개를 한참 들고 쌍안경으로 봐야 되는 녀석인데 아주 가끔 녀석이 먹이를 찾으러 바닥이나 바닥 근처까지 낮게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크기도 작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이라 휴대폰 카메라와 쌍안경 조합으로 찍기 너무 어려운 녀석인데 오늘은 어쩌다 바로 코앞까지 와주셨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휴대폰으로 담아보는 것도 처음이다. 딱 7초이지만 7분처럼 느껴질 만큼 황홀한 시간이었다. 2024년의 조복은 이렇게 시작된다.  


상모솔새
상모솔새
매거진의 이전글 동역사에서 D.O를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