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7
김은정은 장애가 반드시 '치유해야'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함께 공존하기보다 '개조'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정상성'의 미래를 위해 장애가 있는 '현재'는 오직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서 '치유폭력'이 자행되어 왔다고 분석했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부재한 사회에서 장애는 규범적인 몸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강요당하고, '장애 없는 사회'를 위해서 장애를 부정하는 폭력이 행해져 왔다는 것이다.
진은선은 나이가 어리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보호의 대상으로 호명하면서도, 막상 차별받는 구조로부터 떠날 수는 없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보호받는 존재들이 아니라 보호자들을 위한 사회라고 지적한다. 결국, 시설을 유지하는 힘은 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닌 '불쌍한'사람으로 재현하는 데 있으며 그러한 낙인효과는 시설화를 정당화하는 사회복지의 논리로도 동원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김순남, 오월의 봄>
마지막 최종 결과의 방향이 조금 수정되긴 했지만 D.O(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생물학적 아들)가 2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의 첫 출발점과 그 중심에는 농인(청각장애인)이 있었다. 녀석의 프로젝트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실 D.O 덕분에 청각장애인에 대해서 그나마 제대로 알게 되어서 지금도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D.O가 나의 선생님이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인공와우 수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사업 중 하나인데 얼핏 들으면 괜찮은 사업 같다. 그러나 그 출발점부터가 잘못되었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모든 지원사업의 맹점이지만 병원에서 인공와우수술을 적극 권하는 원인은 당연히 돈이다.
청각장애인들이 청인처럼 잘 듣고 싶어 할 거라는 사고자체가 '치유폭력'이었다. 와우 수술을 한다고 해도 비장애인처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듣는 소리가 굉장히 고통스러운 소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농인은 듣기보다는 그들의 고유언어인 수어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머리를 한대 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수어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대체 언어가 아닌 정말 아름다운 하나의 독립 언어이자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 (넷플릭스 다큐 데프유를 추천드린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인공와우수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수어통역서비스와 문자통역서비스 같은 것들이다. 대형 종합병원 같은 생존의 영역에서조차 수어통역 서비스는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있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법적인 혈연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성소수자 동성동거인, 사실혼관계의 동거인 등 사회에서 정상시민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기막힌 현실에 대해 나는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국내에서는 티빙을 통해서 볼 수 있는데 '어큐즈드(Accused)' 2화를 보면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인공와우수술을 놓고 수술을 강행하려는 청인 부모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유괴를 감행한 농인 보모의 이야기를 다룬다. 혹시 티빙에 가입되어 있으신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에피소드다.
심너울 작가의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정적'편에서 수어를 배우던 주인공의 모습도 스처간다. 꽤나 흥미로운 단편 소설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찌릿한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은 '정상'이라는 말이 주는 언어폭력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