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씨아저씨 Jan 16. 2024

나도 한때 내 방이 있었다

2024.1.16

잘 알려진 대로 종이책 구매는 부동산 문제다. 종이책은 물건이어서 놓을 자리가 있어야 하고 놓을 자리는 집의 크기와 직결된다. 누울 자리만 간신히 확보된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이 책을 사들이기는 어렵고, 그보다 넓은 집이라고 해도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한다면 책을 사는 부담은 가중된다. 책은 어찌나 물건인지 책이 늘어날수록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이 정직하게 줄어든다.  <책의 말들, 김겨울>



우리 집은 방이 세 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결혼 이후 줄곧 방이 세 개인 집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침실+옷방 하나는 옷방+창고 그리고 하나는 내방+옷방이었다. 어디에나 옷은 빠질 수 없다. 옷을 사랑하는 아내랑 살고 있는 덕분이다. 환장하게 행복할 뿐이다. 그 와중에도 내 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십여 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도 아니고 책을 좋아한다고 할 만한 사람도 아니지만 사진을 전공해서인지 유독 사진집에는 욕심이 있었다. 그것도 한국어 없는 외국 사진집 말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예술가들이 사는 공간에 사진집이나 도록으로 꽉 채워진 서재를 볼 때면 언제나 부러웠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사진집은 비싸다. 더군다나 20여 년 전만 해도 외국 서적을 지금처럼 편하게 구하기가 어려웠다. 전문서는 더더욱. 수집상들이 판매하는 책은 종류도 제한적이었고 더 비쌌다. 아마존에 책 하나 주문하면서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진짜로 이 책이 한국에 올 수 있을지 의심을 할 만큼 해외직구가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당근 시간도 오래 걸리던 시절이었다.


첫째가 태어났다. 옷방 하나가 아이의 방이 되었다. 그 옷방에 있던 옷들이 전부 내방으로 오게 되었다. 덕분에 내 공간도 줄어들었다. 3년 뒤 둘째도 태어났다. 젠더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생물학적 성별이 같았던 두 녀석은 다행히 한방을 썼다. 내방은 생존했다.


그러나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둘의 방을 분리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중2병은 변이가 다양해 중1병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삼가 내 방의 명복을 빕니다.) 쓰고 있던 책상은 오래돼서 버리는데 주저함이 없었지만 문제는 책꽂이였다. 집 어느 곳에도 책을 보관할만한 공간이 없었다.


때마침 당시 내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던 공유오피스에서 작은 벼룩시장이 열렸다. 나는 책꽂이에 있던 책을 가지고 셀러로 참여하기로 했다. 무엇하나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 않은 책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아놓고 보니 구입가 기준으로 200만 원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이때가 내 인생도 한번 정리를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책은 무조건 천 원에 팔기로 했다. 안 팔려서 집으로 들고 가 봤자 놓을 곳도 없었고 당시 사용하던 공유오피스에는 책의 가치를 알고 잘 활용해 줄 것 같은 입주사들이 많았기에 조금은 덜 억울했다. 가끔 생각나는 책들도 있지만 무엇인가를 싹 비우고 나니 미련도 욕심도 동시에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최근의 책들


이후로는 책을 잘 사지 않는다. 사봤자 놓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거실 책장에는 최근에 구입한 책 몇 권만 있다. 도서관에 책을 신청해서 도착하기까지 기다리기 힘들어서 구입한 책 몇 권. 그리고 출판사 혹은 저자를 살리기 위해 구입했던 책 몇 권이 지금 책장에 남아있는 책의 전부다.


지금은 책은 무조건 도서관에서 빌린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을 타이핑을 해서 저장을 해놓는 습관이 생겼다. 타이핑을 해서 기록을 해놓으면 기록하는 과정에서 문장을 한 번 더 곱씹게 되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정리한 내용들을 하나의 파일로 다시 한번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한번 더 읽게 되는 장점이 있다. 책의 내용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책의 기록



지금도 그때 그 집에 살고 있고 당연히 내방은 없다. 아무것도 없기에 떠날 때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나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가볍다. 집에서 일은 해야 하기에 가벼운 책상 2개를 거실에 놓고 사무실 겸 내방으로 쓰고 있다. 하나는 아내의 책상이다. (다행히 옷은 거실로 안 가지고 나오셨다.)


지금의 내 방이라고 우기는 거실


가끔 방문을 닫고 홀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그 시절 내 방이 그립기도 한데 거실을 통으로 내방으로 쓰고 있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 야구동영상을 보는 것도 아닌데 가끔 넷플릭스 19금 드라마를 볼 때 아이들이 거실에 나오면 왠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 때만 빼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영석의 방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