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낳은 정과 기른 정
수많은 불면의 밤을 거치고 전우애가 완성된다
16개월이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돌치레를 하고
돌발진을 마감하니
콧물과 중이염
그리고 지금은 구내염과 수족구를 겪고 있다.
찡얼찡얼 밥도 거부하는 녀석 비위맞추느라
엄마랑 아빠는 잠을 포기했다.
복직 때문에 이제 13개월이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었을때
어느 예언자께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시었다.
“앞으로 이 아기는 병원에 계속 출입할 것이다”
“앞으로 이 아기는 콧물을 계속 흘리고 다닐 것이다”
“앞으로 이 아기는...”
“젠장. 그만하세요.
애 아프길 바라는 부모가 어딨습니까.
형편이 그러하니 맡기지요.
아기가 엄마의 사랑과 애정만 먹고 살지는 않잖아요.
공과금도 내야하고 떡뻥이랑 요미요미도 사줘야한단 말이에요“
애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거라며
해열제를 먹이기 주저하는 남편과 싸우고 설득하고
울고불고 계속 안아달라 업어달라
잠도 잊고 밥도 잊은 아기에게 화내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거다.
밤새 못 잔 피로를
점심시간, 고카페인 커피 한 사발로 이겨내 본다.
참 햇살 좋은 날이다.
저 멀리 유모차를 끌고 한 어머니가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3개월 전 내 모습이다. 가슴이 시리다.
난 육아휴직 하면서 가리워진 진실을 알게되었다.
길거리에서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엄마들
그리고 유모차 안에 천사같이 잠든 아기들.
여러분 그거 다 그짓말인거 아시죠?
“엄마는 밖에 안 나오면 집안에서 미쳐요.
그래서 애 자는 시간에 어떻게든 맞춰서 나옵니다.
나와야 공기도 쐬고 커피 한 사발이라도 먹고,
요기가 되게 떡이라도 먹죠.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애 분유 흘린 거, 콧물 묻힌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나가면 더 우울하거든요
해서, 30분 잠깐
슈퍼에 장보러 가는 데도
몸에도 맞지도 않는 옷 어떻게든 다려입고 나옵니다.
애 깨기 전에 다녀와야하니
어쩔 수 없이 냅다 도도한 파워워킹 되는 겁니다.
10분전까진 싱크대 옆에 서서
우겨넣은 밥이
파워워킹 덕에 겨우 소화가 되는 기분이에요.“
그나마 유모차를 거부하지 않는 아기라면 다행이다.
유모차 타자마자 눈을 버언쩍 뜨는 아기를 둔 엄마는
주위에 또 얼마나 많은지..
언젠가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를 찾고 일어나는 일을 다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남편과 같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당신은 낳은 정이야? 기른 정이야?
만약에 우리 애기가 병원에서 바뀌었다면,
바꾸러 갈거야?
이제 16개월이니까 저 영화처럼 7년씩 키운 것도 아니고.
막 바꿀 수 있겠어?“
왠일로
남편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고생고생 길렀는데..
절대로 못 보낸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다.”
그렇게 힘들어도
이상하게 힘들지 않은 밤.
싱크대에 서서 밥을 밀어 넣던 밤.
우는 아이를 달래며 눈물을 삼키던 밤.
로맨틱하진 않지만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던 날들이
우리에게 어떤 전우애를 심어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