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짠 Jul 02. 2019

11. 유언장은 없다

내가 말했잖아 슬플 땐 울어버리라고

미리 유언장을 써본 적이 있다.

지금은 한 장도 없지만..


첫 번째 유언장은

출산 후 60일도 넘어서 적었다.


새벽에 굉장한 하혈을 했었다.

8주 정도면 끝난다는 오로

(아기 낳기 전에는 진짜 듣도 보도 못한 단어다)인데,

60일도 지나서 이렇게나 많이 하혈을 하다니

오로 같지 않았다.

말 그대로 피바다였다.


일반 패드로는 수습불가라,

아기 기저귀 빌려쓰며

새벽에 화장실에 앉아

119를 불러야 하나

어지럽진 않은데 곧 괜찮아지려나

이참에 죽으면 푹 잘 수 있겠구나

별 잡생각을 다 하다

유언장다운 유언장를 써봤다.


보험금은 누구에게 주고

어쩌구저쩌구..


아침에 들른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바로 소파수술을 하는 것으로

내 첫번째 유언장은 효력을 상실했다


두 번째 유언장은

빨래방에서 적었다.

출산 후 2개월이 넘어가는데

몸도 마음도 갈 수록 힘들고

삶의 질은 마이너스로 향해갈 때였다.

고향을 떠나 남편직장 근처에서 살던

낯설고 힘든 시절이었다.


그것도 몰라주는

남편도 밉고 아기도 밉고 다 미웠다.


친정엄마가 잠시 몸조리를 해주러 온 그 날,

나는 낯선도시,  무턱대빨래방을 찾아나섰다.


빨래 돌아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핸드폰으로 유언장을 썼다.


그 빨래방에는 여사장님이 상주하며

동전도 바꿔주고 빨래방 질서를 잡고 있었는데

문득 내 옆으로 와서 이것저것 말을 거는 것이다


귀찮게스리..


사장님하는 말 듣다가, 한참 듣기만하다가

나도 모르게

밑도 끝도 없는, 하소연을 했다.


방언 터진 것처럼 막을 수가 없었다.


아줌마가 갑자기 자기 차 타고 어딜 함께 가잔다.

어디로 가냐고 묻지도 따지지 않고

작은 차에 무턱대로 올라탔다.

조금 달려 도착한 곳은

그 동네에 유명 빵집이었다.


“힘들 땐 탄수화물 먹어야돼.

먹는 놈한텐 못 당해.

모유수유는 잠시 잊고

이것저것 좀 내키는대로 먹어봐”


그렇게

한아름 사온 빵을 다시  빨래방에 풀어놓고

끝도없이 떠들었다.


“여긴 동네 우물터 같은 거야.

옛날부터 우리민족은 이런데서 속 풀었어.

애기엄마 많이 먹어.

 속 풀리면 그때 집에 가도 돼“


그렇게 빨래방에서 4시간을 떠들다가

해질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기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번째 유언장은 삭제했다.


세 번 째 유언장은 그해 여름에 썼다.

남편과 크게 싸우고

억울하게 분하고 원통해서 밤새 잠을 못이루다가

잠시 졸다 깨어보니

방에는 5개월된 아이와 나만 있었다.


‘남편이 집을 나갔구나. 이 나쁜놈’

생각에 서글퍼지며

오른손엔 하기스 기저귀, 위드맘 분유한통

왼손엔 내 짐을 들고 아이를 업고 길을 나섰다.


서울로 갔다.

사람이 아주아주 많은 도시에 가서 막 섞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기띠를 꽉 잡고

서울역에 내려서

어디로 갈지 몰라서 잠시 주춤거리며 헤매다가

배고파서 우는 애기 달래며

공공 주차장 전세버스 뒤편 벤치에 앉아서

아기 분유 타서 먹였다.

역에서 산 카카오프렌즈 빵을 나도 좀 먹고.


웅크리고 있는 우리 모자를 본

버스 기사님께서 피우던 담배를 황급히 끄고

저기 그늘에 가서 애기 우유 먹이라고 안내를 해주신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때 유언장을 썼다.


원망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조금 후련해졌다.


다 쓰고 나니

남편 전화가 왔다.


자기는 집 나간게 아니라,

작은 방에서 따로 자고 있었다고.

가 착각한거라고.

너는 어디에 있냐.

뭐? 서울?  왜?


난.. 그냥 미안하다는,

힘들었겠구나.. 한마디

듣고 싶었는데..

갑자기

가슴속이 시커먼 원망으로 급속충전되며

극단적인 말이 쏟아졌다


전화를 끊고

유언장에 이것저것 말을 씹어 넣었다.


오후까지 그렇게 애기 안고 이곳저곳 헤매다가

친구네 집에 찾아갔다.


그리고 그 작은 방에서

아기와 친구와 내가 며칠을 살았다.


밤에 잠이 안오면

핸드폰 메모장에 유언장을 추가해서 썼다.

유언장은 점점 두서없이

길어져만 갔다.


그렇게 친구에게 민폐만 끼치다

분유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에

몇 번의 안 좋은 일이 있고

한차례 수술해야했다.

며칠간은 한 노래에 꽂혀서

노래만 줄창 불렀다.


간호하러 온 동생이

미친년같으니 제발 그 노래 그만 해라 애원했지만

노래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노래를 안할때는 네 번째 유언장도 써보았다


그러다 일주일만에 혼자 집 밖에 나가서

핫도그 하나 사 먹었다.

주문을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아줌마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바쁘면 다 잊어. 새댁, 바쁘게 살어봐.

난 아픈 시부모님 모시고 애들 키우면서 살았는데

너무 바빠서 슬플 힘도 없었어“


지금도

바빠서

진짜 너무 힘든데

왜 낯선사람에게 오지랖인신가 싶었다

근데

이상하게 설탕묻힌 핫도그 씹으니

눈물이 나더라..

다 미안하더라..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알던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랑 같은 시기에 아기를 낳았는데

다 놔두고 혼자 갔단다.


아..

한 대 맞은 것처럼 기분이 멍했다.

내 일인 것처럼 많이 울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부부싸움 한 것도

가출한 것도

일주일 내내 노래 한곡만 부른 것도..

잊혀지고 무뎌져서

그 모든 일이 남 일처럼 느껴질 때쯤

복직을 했다.


컴퓨터를 켜니

그 때 돌아가신 분의 이름의 폴더가 있었다.

나의 전전임자였다.


그 사람이 남긴 업무 자료를 쭈욱 읽다가

화장실에 가서 변기 뚜껑 내리고 앉아

조용히 울었다.

여태까지 저장하고 있던

세 번째 네 번째 유언장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유언장에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역설적이게도

고맙다 사랑한다였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는 사람이

죽긴 왜 죽어


모르는 사람한테 빵 사주고 얘기들어준 빨래방 사장님

싫다소리 안하고 나 챙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준 친구

청춘핫도그 사장님

그리고 우리 엄마

내 동생

밉지만 그래도 가끔은 좋을 때도 있는 남편

우리 아기....


유언장을 다 삭제하고

화장실 물을 내리고

자리로 돌아와

나는

2019년 내 이름 폴더를 만들고 업무를 시작했다.



  * 입에 붙 안 떨어지고 무한반복으로 계속 불렀던 노래는 요조의 <내가 말했잖아>다.

지금도 동생은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올 때면 흠칫 놀라 꺼버리고 욕을 한다고 한다.

비루한 노래실력으로

동생을 오싹하게 만들었어도 난 그 노래로 치유받았다.. 


**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그 시간, 그 몸, 그 기분, 그 공간, 그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거다.

억지로 비틀고 애쓰지 않고

그저 묵묵히 엎드려

시간이 내 몸을 통과하도록 순순히 인정했다면

조금 더 쉽게 그 시간을 살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12. 직장 내 피곤한 인간관계(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